6.25 참전 미국 소위의 한국전쟁 수기

6.25 참전 미국 소위의 한국전쟁 수기

29 꿀단지 0 71 10.17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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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7사단 본부중대 리차드 루이스 카펜터 소위의 한국전쟁 수기



우리는 1953년 5월 1일 김포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서독과 워싱턴 포트 루이스 기지를 거쳐 한국에 도착한 우리는 시차적응 문제로 생체리듬이 엉망이었다. 


미 7사단 본부에서 개인화기와 장비를 지급 받고 전선에 투입될 준비를 했다. 길은 좁고 굽이치는 흙길이었는데, 이 일대는 한국군 수도사단의 작전지역이었다.


당시 한국군 수도사단은 117번 도로를 장악하고 금화에서 금성까지 이어지는 3개 섹터로 나누어진 방어선으로 중공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한국군이 금성 돌출지역(분지)의 중공군을 압박하고 있는 형세였다.


전선에 막 투입된 우리들은 급한대로 한국군 방공포대에서 하프트럭 네 대를 받아 사용했는데 하프트럭을 내주는 한국군들의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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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하프트랙 보병전투차)


벙커에는 대부분이 한국군이었지만 미군도 있었고 방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풀이 좀 자라나면 관측에 방해되기 때문에 한국군 병사들이 모두 제거했다. 6월 10일 우리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로인해 미군과 한국군은 공군으로부터 건설용 철판을 빌려 벙커를 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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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개발한 ISU-152 자주포)

6월 20일, 중공군이 152밀리 자주포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군 벙커 관측소에도 포탄이 떨어졌고 한국군 하프트랙 승무원들도 40밀리 보포스로 대응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2명과 한국군 몇 명이 전사했다. 전사자의 시신은 벙커의 낮은쪽 방에 안치했다. 우리 레이더 한대도 피해를 입었다. 곧 이어 우리 1마일 앞 주전선에서도 관측장교들이 포격을 요청했고 한국군 26연대는 중공군의 공세를 잘 버텨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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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중공군 장교가 벙커에서 나왔다. 한국군 저격수는 쏘려고 했지만 유효사거리 밖이라 맞출 수가 없었고 상부에 관측보고만 했다. 벙커 밖으로 나왔던 미군들은 한국군 상병이 저격수용 스코프를 50구경 기관총에 장착해놓은 것을 보고 흥미로워했다.


다음날 아침 한국군 저격수는 중공군 장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중공군 장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각에 벙커에서 나왔고 이 때 한국군 상병 저격수가 쏜 총알이 그대로 적중했고 중공군 장교는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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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구경 기관총)


1953년 7월 13일, 중공군은 여름 공세를 시작하였다. 철의능선에 있던 한국군 수도사단 모든 벙커에 중공군의 포격이 밤새 쏟아져 내렸고 한국군 병사중 일부가 공포에 질려 도망가려 하자 한국군 부사관들이 이들을 제지했다. 아군 관측반도 대응포격을 요청했다.


중공군의 포격으로 한국군 벙커에 사상자가 늘어났고 영어가 가능했던 한국군 대대장 김중령은 우리 미군에게 와서 벙커에 투입할 병력을 급히 요청했다. 우리 미군들은 한국군 대대장이 지휘하는 벙커에 투입되었고 벙커에 있던 한국군들에게 미군들이 커피와 빵을 나눠주면서 벙커 내의 사기가 올랐다. 


적들은 우리가 포격에 겁먹고 이미 패주한걸로 생각했던 것 같다. 벙커를 점령하기 위해 접근하던 중공군을 향해 우리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모여드는 중공군들은 마치 개미떼 같았다. 전투는 4시간 동안 이어졌고 우리는 달려드는 중공군에 50구경 기관총을 마구 갈겼고 이로 인해 중공군은 와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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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15일 오전 9시, 중공군은 나팔과 함성을 지르며 동쪽 벙커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국군과 미군이 섞인 혼성부대는 중공군이 400야드까지 접근할때까지 그냥 놔뒀다가 유효사거리에 들어오자마자 기관총을 일제히 발포하였다. 기관총 총알 1발당 적 1명이 쓰러지는 정도였다. 중공군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도 계속 전진했다. 


적이 약 100미터까지 근접하자 한국군 병사들의 개인화기도 불을 뿜기 시작했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중공군은 결국 퇴각하기 시작했다. 중공군 부상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아군 의무병들도 벙커를 돌아다니면서 한국군과 미군 부상자들을 돌봤다.


이날 전투가 끝나고 중공군의 산발적인 박격포 공격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1분대의 미군 분대장 한 명이 전사했다. 1분대는 결국 상병이 분대장직을 이어받았고 그 상병이 실질적인 선임하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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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끝나고 아무리 무전기 주파수를 돌려도 응답이 없자 통신망이 단절된걸 알게 됐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후방과 연락이 닿기위해 무전을 시도하였다.


밤이 되자 미군 부사관이 이끄는 정찰대가 정찰 도중 중공군의 선전용 대형 스피커를 발견하고 50갤런 가솔린통을 설치해 스피커를 폭파시켰다.


자정이 지나고 중공군은 우리가 건설중인 활주로를 통해서 건너오기 시작했다. 미군과 한국군은 벌판을 향해 기관총을 6정씩 배치하여 중공군에게 엄청난 총알을 퍼부었다. 탄벨트가 다음 탄벨트와 계속 이어지면서 한참을 쐈다. 


중공군은 자신들의 앞서가던 대열이 무너지면 뒤에 있던 후속 대열이 몰려오는 식으로 전진을 반복했다. 우린 기관총의 총열이 뜨겁게 과열되었고 식힐 틈조차도 없이 쏴재꼇다. 중공군은 아군 참호까지 들이닥쳤고 우리는 대검과 야전삽을 꺼내서 휘둘렀다. 


마침내 날이 어둑해진 가운데 중공군의 공세는 멈추었고 미군 의무병은 한국군 의무병과 함께 부상자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전사자의 시신은 벙커 지하의 한 구역에 따로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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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8인치 자주포)


다음날 아침 장교들과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중 중공군의 포탄이 지휘소에 떨어졌고 지휘소에 있던 미군과 한국군 몇명이 사망하였다. 아마 적은 우리의 대공포 총열을 보고 조준한 듯 하다.


곧바로 아군 8인치 자주포 대대의 대응포격이 시작되었다. 적의 거점으로 보이는 곳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군의 지원이 시작되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관측반의 무전기를 통해서 참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미8군 사령부에서 무전기를 통해 분대장을 이어받은 상병을 현지임관 시켜서 소위가 되었음을 알렸다. 관측반 선임하사와 김중령도 그를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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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저녁 레이더 소대가 약 600야드 거리 경사면에 중공군이 모이는 걸 포착했다. 관측반이 즉각 포격을 요청했고 맹렬한 포격에 당한 중공군은 흩어졌다. 


한 시간후에 중공군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조명탄이 터지면서 중공군의 위치가 확실해졌고 그러자 곧바로 관측장교가 고폭탄 효력사를 요청했다. 고폭탄을 얻어맞은 중공군들은 퇴각하기 시작했고 아군 포병대대는 퇴각하는 적을 따라 계속 포격했다.


중공군도 박격포를 쐈으나 정확도 문제로 짧게 떨어져 같은 중공군들까지 피해를 입은것으로 보인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통신이 두절되었고 관측반은 무전으로 근처에 아무 포병부대나 응답이 닿기를 바랬다. 아군 부상자들까지 총을들고 가담하여 참호를 지켰다.


열두 명 정도의 중공군이 아군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김중령도 권총을 꺼내 지휘벙커 근처까지 다가온 중공군 두명을 사살했다. 이후 몇 시간 동안 중공군 부상자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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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당한 중공군들)



17일 아침이 되자 널부러진 중공군 시체들을 모은 후 쌓아서 방어벽으로 사용했다. 


무전으로 날씨가 개면 곧바로 공중지원이 올거라는 보고를 받았다. 나와서 보니 벙커도 많이 부서져있고 밖에 세워둔 하프트랙도 중공군의 포탄을 맞아 박살이 났다. 레이더도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잘 돌아간다.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서로 수염이 길게 자라있고 녹초가 된 상태였다. 이제 물은 얼마 없고 씨레이션은 하루에 수통 반컵 정도를 분배해서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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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 항공기들이 지나갔다. 항공기에 그려진 하얀색 별(미 공군)을 보자 소리쳤다. “우리 거다!”


한국군 병사들도 벙커에서 나와 기쁜 마음에 소리치고 아군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부사관이 무전기를 들고 나와 공군 조종사와 교신했고 우리 아군 벙커의 위치를 식별시켜 주고 적에게 공격을 유도했다.


공군이 투하한 네이팜탄이 중공군 진지에 터지면서 사람 머리칼 타는 냄새가 산들바람을 통해 맡아졌다. 계속해서 폭격이 이어졌다. 그날 하루 종일 미군 항공기가 하늘에서 맴돌며 우리를 구원했다. 


다시 밤이 되자 중공군 무리가 서쪽에 모이는걸 포착하였고 폭격을 요청해서 중공군 무리를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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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아침, 안개 속에서 중공군 소대급 정찰대가 이동하는걸 감지했고 50미터 거리까지 접근한 중공군의 대화소리까지 들렸다. 중공군이 가까워지자 우리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몇 초만에 중공군은 모두 쓰러졌다. 이후 아군 몇명이 계속 쐈고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안개로 인해 아군 항공기가 목표 식별을 어려워하자 우리 레이더 조작병이 때릴 만한 곳을 찍어주었고 그 결과 항공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동시에 폭탄을 투하해 엄청난 폭발이 동시에 일어났다.


19일은 조용했고 간간히 저격만 날아왔다. 중공군들이 북서쪽으로 이동하는게 잡혔다. 즉각 항공기와 포병에게 폭격을 유도했다. 무전기를 통해 다음 날 아군 증원병력이 도착한다고 통보받았다.


20일 새벽 5시 30분, 안개 속에서 미군 병사들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돕기 위해 보내졌고 한국군 6사단에 특별 배속된 미군중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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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당한 중공군들)


정오에 한국군이 중공군을 몰아내고 능선 북쪽을 점령했고 철의 능선은 아군의 손에 넘어왔다. 수 많은 중공군 시체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어서 시체를 밟고 다닐 지경이었다.


시체를 정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눅눅하고 더운 날씨라 중공군 시체에 파리떼가 꼬였다. 


중공군 시체를 한 군데 모아서 쌓아놓고 가솔린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인간의 지방과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사방에 풍겼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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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기지)



신임 소위는 이제 생존한 병력과 장비를 꾸려 이동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저녁이 되자 트럭과 지프가 도착했고 후방으로 이동했다. 


거의 3개월만에 처음으로 찬물로 첫 샤워를 했다. 찬물도 사치스러웠다. 면도도 하고 새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신선한 우유와 계란도 있었고 목구멍에 밀어넣으며 허겁지겁 먹으며 그 장면을 보고 선임하사도 웃었다.


다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탈이 났다. 


27일 휴전이 체결되었고 김포 비행장 옆의 주둔지에서 대기하면서 귀국할 항공편을 기다렸고 8월 첫 주에 미국 오클라호마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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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 소위와 독일인 아내)



카펜터 소위의 아들이 남긴 주석


아버지는 2차대전 마지막 해에 병사로 입대했었고 서독 점령군으로 근무했었다. 아버지는 독일인이었던 어머니와 만나 결혼했고 자녀는 일곱을 두었고 1965년 제대할 때 전투 부상으로 인한 일부 신체불구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가 속한 28명의 부대원 중 반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했고 모두 아버지의 친구들이었다.  


한국군 수도사단 26연대 2대대가 바로 아버지와 힘을 합쳐 전투를 치룬 부대였고 


아버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한국군 대대 김중령의 지휘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령은 수년간 전투경험이 많아 올바른 결정을 잘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있었던 본부중대 소속 레이더 소대는 신형 레이더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같은 부대 전사자 가족들은 전사했다는 소식만 듣고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한국에 같이 있었던 미군 동료들도 이후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John R. Carpenter , La Mesa, CA


April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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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14일 금성전투 전개도)



금성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합쳐서 2,000명에 달하는 전사자가 발생하였고, 중공군은 27,000명가량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며 중공군은 아군의 반격에 가로막혀 목표로 하던 화천까지의 진출에 실패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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