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항쟁 당시 중국의 탱크맨

천안문 항쟁 당시 중국의 탱크맨

G 바리안의쌍검교실 1 5,653 2020.11.19 11:36




1989년 6월 3일 밤부터 6월 4일에 천안문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혈 진압이 마무리되고 

탱크가 천안문 광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다. 

이때 탱크는 시위중인 군중을 무인지경으로 지나갔기 때문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그나마 당시의 잔인함이 덜 나오는 사진이다. 

 

도망치는 시민들과 몰려오는 탱크들, 그리고 왼쪽에 희미하게 탱크맨의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시민들은 앞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두 손에 검은 비닐봉지와 옷가지를 든 

정체모를 사내가 갑자기 탱크 앞을 막아섰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노면에 뭔가 묻어있는 것처럼 보이는게 있을 것이다. 

이는 당시 탱크에 깔린 사체들의 살점과 피가 쓸린 것이다. 

 

 

갑자기 방향을 바꾼 전차. 사내는 팔을 휘두르며 항의의 표시를 취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탱크 조종수의 태도였다. 

위의 사실과도 같이 탱크들은 시민이 있건 말건 밀고 지나갔었다. 

따라서 갑자기 앞을 가로막은 사내 또한 밀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탱크는 잠깐 멈추더니 방향을 옆으로 바꾼다. 

 

 

사내는 탱크앞을 막은것도 모자라 탱크의 해치까지 올라서더니 

조종수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듯 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달려나와 사내를 붙들고 데려간다. 

 

당시 cctv는 탱크를 막은 사내를 비난하면서도 

'그대로 짓밟고 갈 수도 있었으나 정부의 자비심으로 목숨을 건졌다.'라고 발표했다.

cctv의 말처럼 만약 탱크가 사내를 밀고 지나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었을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해당 전차의 전차장과 지휘관의 판단은 참으로 훌륭했다고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를 촬영한 사진이 퓰리처상을 수상할 정도였던 것을 보면..

 

 

그렇다면 탱크를 막아선 용감한 이 사내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1990년 미국 abc 방송의 베테랑 앵커인 바바라 월터스가 장쩌민과 가진 단독 인터뷰를 보면 

탱크맨의 생사를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바바라: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혹시 그 뒤 체포되거나 처형되었나?

 

장쩌민: (중국어로)그 사실 여부엔 답을 해줄 수 없다.

 

바바라: 그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말인가?

 

장쩌민: (영어로) '하지만 내 생각엔.. 확실히 그는 죽지 않았다.

 

여기서 장쩌민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never를 사용했다. 

중국수반인 그가 강력하게 사망설을 그것도 영어에 능통했던 장쩌민이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장쩌민이 단언한 대로 탱크맨이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아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만에 망명해 있다는 소문이 틀린 것이다.


탱크맨은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본명은 장위민(張爲民)


하지만 구라질에 능통한 중국정부다 보니 그가 정말로 살아있는건지 장위민이 맞다고 해도 

그 탱크맨이 맞는지에 대해선여전히 의문부호가 달릴 수 밖에 없다.



Comments

G ㅇㅇ 2020.11.30 00:30
중국, 한국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니
유머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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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3.16 극한직업 일본 아동 상담사 G 베지밀   조회:225   추천:0   비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