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속에 감춰져 있는 욕망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속에 감춰져 있는 욕망

G 선녀와나후끈 1 4,953 2020.10.2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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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숲 속에서 도망치는 사슴을 만났는데, 이 사슴이 사냥꾼이 쫓아오고 있으니 자신을 숨겨달라고 말했습니다.


말하는 사슴을 신기하게 여긴 나무꾼이 사슴을 숨겨줬고, 뒤쫓아 온 사냥꾼을 다른 방향으로 보내서 구해주었습니다.

사슴은 은혜를 갚겠다고 하면서, 나무꾼에게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목욕하는 선녀탕이라는 샘과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오는 시기, 선녀의 옷을 훔쳐 그를 아내로 삼도록 하는 꾀를 나무꾼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슴은 '아이 셋 낳을 때까지는 결코 날개옷을 돌려주면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나무꾼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사슴이 가르쳐준 시기에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내려온다는 샘으로 찾아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렇게 잠시간 기다리자 과연,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날개옷을 벗고 선녀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꾼은 사슴이 가르쳐준 대로 날개옷을 하나 훔쳤습니다.

날개옷이 없어진 탓에 한 명의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으며 다른 선녀들은 날개옷이 없는 선녀를 내버려두고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나무꾼이 홀로 남은 선녀에게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하자,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된 선녀는 할 수 없이 나무꾼에게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선녀에게 자신의 옷을 빌려주고, 집으로 데려가 결혼을해 애 둘을 낳고 살던 중, 나무꾼의 어머니가 감춰둔 선녀의 옷을 발견하고 선녀에게 보여줘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바로 하늘로 올라가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냥 조금 서글픈 흔한 민담 중 하나로만 여기다가, 나중에 ‘어? 그런데, 이거 선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비참하잖아?’ 라며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곤 한다.

 

특히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이 민담을 여성혐오가 만연한 쓰레기 같은 현실을 반영한거라 개탄하기도 한다.

그런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히 해석할만한게 아니다. 사실 선녀와 나뭇꾼에서 남성과 여성은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여기서 등장인물의 성별 따위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무슨 성차별의 향연인양 해석하는건 좀 오버다. 그리고 만일 정녕 그랬다면, 그 결말에 비추어 볼 떄 오히려 권선징악인 셈이니 더더욱 장려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야기의 핵심은 다른데 있다. ‘하늘에 사는 사람과 땅에 사는 사람’, 즉 둘의 신분 관계다.

선녀는 천상의 존재

다른 많은 민담들과 마찬가지로 ‘선녀와 나뭇꾼’ 역시 다른 지역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몽골 지역의 호리 투메드 신화가 대표적이다.

 

바이칼호 주변에 살던 호리 투메드는 어느 날 호수 주변을 걷다가 아홉 마리의 백조가 날아와 호숫가에 앉는 것을 보았다. 백조는 호숫가에 앉아서 깃털을 벗는데, 놀랍게도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호수에서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장자였다면

‘저 양반의 본디 모습은 백조인가? 인간인가?’

를 고민하다가 만유인력이라도 (응?) 발견했을지 모르겠지만,

 

호리 투메드는 기개 높은 북방인 답게 백조들이 벗어 놓은 깃털 하나를 몰래 숨겨 놓았고, 그 때문에 다른 백조들은 다들 목욕이 끝난 다음에 하늘로 올라 갔지만, 호리 투메드가 옷을 숨긴 백조는 그만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그에게 걸려 같이 사는 운명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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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는 형제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가 크고 나니 웬 야수놈에게 ㅠㅠㅠ"

 

그렇게 둘이 함께 살며 아이를 무려 열 한명이나 낳은 뒤, 어느 날 구 백조 출신인 아내가 남편에게 옷 한번 잠깐 입어 보겠다 졸랐고, 별일 있겠어 라고 생각한 남편이 옷을 주자, 아내는 슝~~~ 하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남편은 하늘 멀리 날아가는 전 아내인 백조 복직자에게 아이들 이름을 지어 달라 외쳤고 아니 그럼 애를 열 한명이나 낳는 동안 이름도 안지어줬단 말인가. 아내는 날아가며 아이들 이름을 지어주며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씨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판본에서는 아이를 낳고 이래저래 살다가 선녀가 나름의 전략을 짜서 나무꾼에게서 옷을 탈환한 뒤,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후 어째어째 나무꾼도 두레박을 타고 선녀가 사는 하늘로 올라가지만, 엄마 생각 간절해 천마 타고 땅으로 내려 왔다가 엄마가 준 죽을 천마한테 쏟아, 아내와 아이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고 영영 슬퍼하며 살게 된다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문제는 신분인건가...

몽골에서는 부족 설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성격이 달라졌다.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 유사 이야기를 보아도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은 특이한 점이 보인다.

 

남자 주인공은 평범 흔남들의 대표직업인 나무꾼이 되었고, 여자 주인공은 도교 냄새 물씬 나는 선녀로 바뀌었다. 이야기를 좀 더 짜임새 있게 하기 위해 엑스트라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도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결말이 좀 더 비극적이다.

 

남주와 여주의 직업, 이야기 속에 흐르는 가족애 (선녀가 아이들 데리고 가고, 어쨌든 남편도 올라오게 하고, 남편은 엄마 만나러 가는 장면) 등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농경문화와 도교사상이 정착한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계급 사회의 모습 역시 뚜렷히 드러난다.

 

이야기의 여주인 선녀는 하늘에 사는 존재다. 지금도 우리는 한 분야에서 아주 뛰어난 면모를 보인 이들이들을 '천상계'에 속한다 표현한다.

 

전통시대는 더했다. 하늘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바벨탑이니 지구라트니 하는 구조물들도 그런 하늘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우리나라 건국 신화에서도 하늘에서 내려 와 나라를 세운 경우가 많다.

 

즉, 선녀는 하늘에 사는 고귀한 신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나무꾼은? 나무꾼은 땅에서 고된 노동을 통해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민담에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품성이 좋아 복을 받는' 캐릭터로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 선역으로 묘사되는 인물이지만, 땅에서 노동하는 낮은 신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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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도끼 크기만한 금,은덩어리만으로도 나무꾼이 감격할 정도다. 말 다했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신분이 다른 사람들끼리 마주칠 일이 적었다. 그래서 이 둘을 만나게 하려면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 매개체로 등장한게 사슴이다.

 

전통시절에 사슴은 영물스러운 이미지였다. 적당히 큰 체구에 맑은 눈망울, 그러면서 맹수는 아니기에 사람들 사이에 이미지가 좋았다. 도교에서도 사슴을 꽤나 좋게 보아 십장생 중 하나로 뽑아 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무꾼과 선녀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는 사슴이 딱이었다. 그리고 사슴이 이들을 연결해 주는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슴이 나무꾼에게 은혜를 입는 장면이 필요했고, 그를 위해서 사냥꾼이 사슴을 쫓는 장면이 또 필요했다.

즉, 사슴과 사냥꾼은 선녀와 나무꾼이 신분의 격차를 극복하고 만남을 가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빌드업 장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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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사슴아, 나랑 작품 하나 같이 찍자"

"비중 큼?"

 

여기에 낮은 신분과 높은 신분이 짝을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하늘로 날아가는 옷을 숨기는 행위다. 선녀의 옷은 둘 사이의 신분 차이를 보여주는 결정적 요소였고, 그를 잠시 감춤으로써 둘은 한동안 신분을 극복하고 결합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는 잠시 가려 두었을 뿐, 완전히 뿌리 뽑은게 아니다. 결국 선녀는 다시 그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후 나무꾼은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기회를 받았지만,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가 하늘에서 내린 금기를 어기고 다시는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즉, 선녀와 나무꾼은

'흙수저가 어쩌다가 금수저 무리에 낄 기회를 얻었으나 실패하는'

이야기다.

 

신분상승의 꿈은 영원한가.

 

전통 사회에서 신분의 차이는 구조적인 문제다. 가린다 해서 가려지는게 아니고, 쉽사리 극복될거리가 아니라는게 중요 메세지인 셈이다.

 

또 하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신분의 굴레란게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일어나라!' 라는 주제를 담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신분의 벽에 좌절하게 되는 개연성을 이야기에 부여하기 위해 금기라는 요소를 넣었다,

이야기 전개 내내, 나무꾼에게는 많은 금기들이 부여된다. '아이가 셋이 되기 전까지 선녀 옷을 보여주지 마라', '천마가 세 번 울지 않게 하라' 같은. 이런 금기들을 곳곳에 넣고, 나뭇꾼이 이런 금기들을 어기면서 결국 선녀와의 행복한 삶을 사는데 실패하는 결론을 이끌어 내면서, 이야기 전개를 좀 더 그럴듯 하게 만들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신분 차이를 다루는 이야기도 점점 변했다. 춘향전처럼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류의 이야기들이 나왔고, 홍길동전처럼 신분 구조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내며 어느 정도는 신분 구조를 극복하며 상승을 이루는 작품도 나왔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대부분 그 신분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거나, 자수성가에 성공하여 신분 상승을 이루거나, 최소한 신분차이는 불합리하다는 점을 명확히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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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그 허상을 꼬집거나... 은수저들이 금수저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드라마.

그 만큼 사회가 변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나, 흙수저 성공기가 여전히 많이 나온다는 점을 보면 아직도 신분의 차이는 존재하고, 그 벽을 뛰어 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 역시 여전하다는걸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신분 상승에 대한 기득권 층들의 인식 내지 전략도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자신들 위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바꿨다. 전통사회에서는 본인들을 '하늘에서 내려 온 존재' 처럼 '감히 범접할 수 조차 없는 존재' 로 포지셔닝 했다면, 지금은 '노오오오력 하면 이를 수 있는 위치' 임을 강조한다.

 

흔한 자수성가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혹은 대리만족을 안겨줌과 동시에 기득권들에게도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 하는데도 도움이된다.


또 한 방면으로는 전통을 이어 받아 비기득권층에게 '자신의 위치에서 그냥 소확행을 즐겨라'는 프레임을 짜 두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이 꼭 되려 애쓰지 말고 그냥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선녀와 나무꾼이 현대화 된다면 아마도,

나무꾼이 노오오력 하며 마는 위성을 타고 천상의 세계로 가거나, 선녀에는 별 관심 없이 사슴한테 '난 선녀 그런거 모르겠고, 좋은 나무 많은데나 좀 알려줘' 라고 하며 이야기가 끝날지도 모른다.

 

선녀와 나무꾼은 노래로 나올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민담이다. 근래에는 나무꾼의 강제혼이라며, 여성혐오의 상징이라 지탄받고 있지만, 그건 너무 지엽적이고 편협한 해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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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든 자의 눈에는 못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 전체를 훑어보면, 신분상승을 이루려넌 꿈이 구조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끝내 좌절되는 내용이라 해석 할 수 있다.

 

시대가 흘렀어도 사람들이 신분상승을 꿈꾸는건 변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의 신분제는 제도 등을 통해 '넘보지 마라' 식의 구조적 문제였다면, 지금은 그런 제도가 없는 만큼, '내가 이런 위치에 있는건 당연하지' 내지 '그 위치에서 잘 만족하고 살아' 등의 프레임을 기득권층이 사회에 심는 식으로 변했다.



Comments

G ㅇㅇ 2020.10.26 19:09
어릴땐 몰랐는데 지금보니 완전 싸이코 동화였네 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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