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약국 논란, 일본은 이미 지나온 길입니다

창고형 약국 논란, 일본은 이미 지나온 길입니다

G ㅇㅇ 1 19 01.22 14:57

 


한국에서 창고형 약국이 등장하자 약사 사회의 반발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약국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목소리부터 의약품 유통 질서가 무너진다는 주장까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일본은 이 과정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하는 점입니다.

일본에 다녀오신 분들은 이미 익숙하실 겁니다.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드럭스토어에서는 감기약과 진통제는 물론 화장품, 식료품, 생활용품까지 한 번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캐리어를 끌고 매장에 들어와 쓸어 담듯 쇼핑하는 풍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지금의 일본 드럭스토어는 단순한 약 판매점이 아니라 일상 소비의 중심 공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도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드럭스토어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초기에는 약사 사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다만 한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시장 구조였습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처방 조제와 일반 의약품 판매가 분리된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전통적인 약국은 처방 조제에 집중하고, 일반 의약품은 드럭스토어가 담당하는 구조가 일찍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은 오랜 기간 약국이 처방 조제와 일반 의약품 판매를 모두 담당해 왔습니다. 이 상태에서 창고형 약국이 갑자기 등장하니, 약사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일반 의약품 판매를 중심으로 한 대형 유통 채널이 이미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태였습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제도였습니다. 일본은 2008년 약사법 개정을 통해 등록 판매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약사가 아니어도 일정 자격을 갖춘 등록 판매자가 있으면 일반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 변화 이후 드럭스토어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대형 체인 중심의 시장 재편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약사만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던 독점 구조가 완화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사의 위상이 약해졌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일본 약사의 평균 소득은 한국보다 낮고, 약사를 목표로 하는 젊은 층도 크게 줄었습니다. 병원 현장에서는 약사 인력 부족 문제가 거론되기도 합니다. 드럭스토어 현장에서는 약사와 판매자가 같은 고용인으로 일하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분이 어려운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선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의료비 절감과 고령 사회 대응을 위해 셀프 메디케이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가벼운 증상은 병원 대신 드럭스토어에서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그 과정에 세제 혜택까지 연결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드럭스토어는 국가 보건 정책의 한 축이 되었고, 제약사와 유통사는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일본 약사 사회는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 판매자가 아니라 전문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입니다. 건강 상담, 혈압과 혈당 관리, 식생활 지도, 지역 밀착형 케어까지 약국의 기능을 확장하는 모델이 등장했습니다. 약국이 다시 지역 건강 거점으로 자리 잡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이제 시선을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면, 창고형 약국 논란은 단순히 가격 경쟁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구매 방식이 바뀌고 있고, 제약사와 유통 구조 역시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일본처럼 제도 변화가 뒤따를지, 아니면 한국식 절충 모델이 등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소비자의 선택은 이미 편의성과 가격, 접근성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약국이 사라질 것이냐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약사는 어떤 역할로 살아남을 것인가입니다. 일본의 사례는 불편하지만 분명한 힌트를 줍니다. 유통은 커질수록 약사의 전문성은 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의미를 잃습니다. 한국의 창고형 약국 논란은 결국 약국의 미래를 다시 정의하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Comments

일본에서 살다 보면 드럭스토어가 없으면 오히려 불편합니다. 한국도 결국 비슷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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