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려는 운동으로 시작됐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억압받던 여성들에게 많은 권리를 되찾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급진적 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남녀 간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부추기고,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단순히 여성들이 더 많은 권리를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가 여성들에게 더 큰 책임과 부담을 떠안게 만들었고, 남성들은 오히려 그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 편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자립을 강조했다.
듣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과거에는 남성이 주로 생계부양을 맡고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담당했다면, 이제는 여성이 직장에서의 경쟁뿐만 아니라 가사와 육아까지 모두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더 큰 문제는 결혼을 하는 일이 여성들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결혼 동기를 약화시켰다.
남성들은 이제 결혼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부담은 여전하고, 법적 리스크(이혼 시 재산분할, 양육비 등)가 커지면서 굳이 결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여성들은 여전히 결혼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압박을 받는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법적, 경제적으로 큰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으며, 사회적 시선 또한 부정적이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며, 결혼과 연애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이전에는 놀것 다 놀고 30살 넘어 결혼해야지~라고 말하던 여자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여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며 관계에서의 남성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이런 행동은 남성들로 하여금 연애와 결혼에서 물러서게 만들었다.
현대 남성들은 관계에 얽매이는 대신 독신으로 취미와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삶을 선호한다.
반면, 여성들은 여전히 연애와 결혼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남성들이 발을 빼면서 여성들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더 높은 거절의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여성들에게 심리적,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며, 오히려 페미니즘 운동이 강화될수록 여성들이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양육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여자가 임신한 경우 결혼하지 않고 양육비만 제공하겠다는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육아의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 정우성과 문가비 사례처럼 결혼을 거부하거나 양육비만 지급하겠다는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단독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법적으로 양육비를 지급받는다고 해도, 이를 강제하거나 제대로 지급받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남성들이 양육비를 회피하거나 지급을 지연시키는 경우는 흔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이 법적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의 대부분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양육비가 제대로 지급된다 하더라도, 아이의 정서적 지원이나 교육적 도움은 금전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성들이 아이와의 정서적 관계를 외면할 경우, 여성은 혼자서 이러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주기는 커녕 현실적으로는 더 많은 책임과 부담을 안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해 결혼과 연애에서 발을 빼고, 독신의 삶을 선택하며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만, 여성들은 오히려 관계와 육아, 경제적 독립의 이중고를 감당하며 더 큰 손해를 보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없었다면, 남녀 간의 전통적 역할 분담이 유지되면서 여성들이 이러한 부담을 덜 느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즘이 강화될수록 여성들의 삶은 더 복잡해지고, 남성들은 더 편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로서 페미니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나도 확실히 마음이 많이 편해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