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가난하던 경제대공황 시절 먹었던 미트로프 레시피

미국이 가난하던 경제대공황 시절 먹었던 미트로프 레시피

G XL 0 2,035 2020.12.01 01:27



아무리 잘 나가는 나라라도 한 번 정도는 가난해 질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가난이란, 요즘처럼 "경제가 불황이다"라고 우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온 국민이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의 위기를 말합니다.


고급스러운 요리만 즐기던 파리의 시민들도 프러시아군에게 포위당했을 때는 가죽 신발을 삶아먹었고

다리 달린 건 의자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에서는 흉년이 심할 때면 관음토라고 불리는 흙을 물에 풀어서 먹기도 했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만 해도 경제가 성장하기 전에는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로 배를 채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탓에 나이 많은 분들 중 상당수는 밀가루 수제비 이야기만 나와도 질려하기도 합니다.


이건 초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도 예외가 아닌지라, 세계대전 중에도 본토에는 총알 한 발 맞지 않고 승승장구를 거듭했지만 정작 그 이후의 경제 대공황은 피해갈 수 없었고, 미국 사람들은 신대륙 개척 이후 처음으로 배고픈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들 어떻게든 식비를 줄여보려고 여러 수단을 강구했는데, 이 당시 각광받던 저렴한 레시피 중 하나가 바로 미트로프입니다. 


준비물은 쇠고기, 양파, 우유, 달걀, 빵가루. 소스 재료로는 토마토 케첩과 설탕, 우스터 소스를 준비합니다.



반죽기에 고기 그라인더를 붙여서 소고기를 갈아줍니다.

19세기 독일에서 그라인더가 발명되기 전에는 고기를 일일히 칼로 다져서 요리해야 했기 때문에 엄청난 노동력이 소모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비록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기계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고기를 갈 수 있게 되면서 미트로프 역시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마트에 가면 갈아놓은 고기를 팔기는 하는데, 대부분 지방 함유율이 너무 높은 까닭에 그냥 직접 갈아주는 편을 선호합니다.


게다가 이런 고기들은 자연적으로 고기에 붙은 지방을 갈아넣은 게 아니라 소기름을 따로 부어넣어서 지방 함량을 맞춘 경우가 태반인지라 맛도 좀 의심스럽거든요.


원하는 부위를 입맛에 맞게 갈아주는 단골 정육점이 없으면 직접 고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트로프의 특징이라면, 다른 재료 (주로 빵가루)를 넣어서 고기의 양을 불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데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고기는 먹여야겠고 생활비는 부족하다보니 저렴하게 팔리는 기름기 없는 자투리 고기를 사서 이것저것 섞어넣고 부피를 부풀려서 나눠먹을 수 있게 만드는 요리니까요.


"밥상이 온통 풀밭이네..."라고 투덜거리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지요.

그야말로 경제 대공황 당시의 미국 가정주부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음식이랄까요.


간 고기 1kg에 다진 양파, 달걀 한 개, 빵가루 한 컵에 우유 반 컵을 넣고 반죽을 해 줍니다.


너무 무르면 나중에 구울 때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너무 마르면 퍽퍽한 미트로프가 되니 농도를 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대충 봤을 때 만두 속과 비슷한 질감이면 괜찮은 듯 합니다.



반죽한 고기는 손으로 잘 두드려서 빵 모양으로 만들어 줍니다.

빵 한 덩어리를 로프(loaf)라고 하는데, 고기를 이용해서 빵 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레시피에 따라서는 빵 틀에 넣고 굽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소스를 옆면까지 골고루 바르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소스는 케첩과 설탕, 우스터 소스를 섞어서 발라줍니다.

보통 머스타드 소스를 많이 섞는데, 개인적으로는 우스터 소스를 섞어 넣는 게 더 입맛에 맞네요.


여러 회사에서 우스터 소스를 만들지만, 오리지널은 리 앤 페린스(Lee & Perrins)입니다.

유리병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종이 포장이 특징인데, 지금은 운송 기술이 발달해서 깨질 일 없지만 전통을 지키는 마음에서 여전히 종이 포장을 한다나요. 


실제로는 후발 주자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확률이 높지만요.


인도의 총독을 지내고 온 영국 귀족이 그 맛을 못 잊어서 인도풍의 소스를 만들어 보려고 리와 페린스라는 약사들을 고용한 것이 우스터 소스의 출발점입니다.


약사가 요리를 한다니 이상하게 생각될수도 있지만, 당시 새로운 재료를 조합하는 전문가는 약사들이었으니까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역시 약사들의 발명품입니다)


하지만 영국인의 피가 어디 가지는 않는지 처음에는 이상한 맛의 실패작만 줄줄이 양산하다가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창고에 처박혀 있던 소스를 다시 한 번 맛을 봤는데, 그 사이 숙성되면서 훌륭한 소스가 되었다고 하지요.


소스가 만들어진 지역의 이름을 따서 우스터셔 소스라고 하기도 하고, 우스터셔 지역의 도시인 우스터 시의 이름을 따서 우스터 소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스를 듬뿍 바른 미트로프를 175도 (화씨 350도) 오븐에 넣고 한 시간 정도 구워주면 완성입니다.

고기만 요리할 때에 비하면 거의 양이 두 배는 부풀어 오른 듯 하네요.


큼직한 고기 덩어리가 뜨끈뜨끈한 김을 내뿜으며 오븐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먹기 전부터 왠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도 이 요리가 정작 미국에서는 대공황으로 살림이 어려워지고 나서야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나무껍질 벗겨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다가 변비 걸려서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다"라는 말을 달고 살던 조상님을 둔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드넓은 신대륙에 소를 잔뜩 키우며 삼시세끼 스테이크 썰어 먹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빵가루로 양을 불린 찌꺼기 고기를 먹어야 했으니 나름 당혹스러웠을 거라는 상상도 됩니다.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조금 더 가난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비극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사진상으로 보면 좀 퍽퍽해 보이는데, 고기와 섞인 빵가루가 우유와 육즙을 머금고 있는데다가 양파에서도 즙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먹어보면 굉장히 촉촉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고기 맛 자체는 양파의 풍미가 강한 것을 빼면 그닥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에 소스를 넉넉히 발라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예 접시에 덜어놓고 그 위에 추가로 소스를 듬뿍 뿌려서 먹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처음에는 짭짤하면서도 달달한 케첩 소스의 맛이 나다가 자연스럽게 부드럽고 촉촉한 고기의 맛으로 넘어갑니다.


먹다보면 왠지 친숙한 느낌도 드는데, 갈아놓은 고기를 뭉쳐서 굽는 요리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고대 로마의 요리책인 아피키우스에도 등장하고, 서양 여러 나라에는 각국의 특색을 살린 간 고기 요리법이 있는데다가

중국이나 몽고 등 동양권 국가에서도 비슷한 요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트로프를 먹고 있노라면 제사 지내고 남은 고기전을 케첩에 찍어 먹던 기억이 떠오르지만요.


고기가 귀해서 양을 불리려는 한국의 부대찌개 같은 기원인데....

가난한 삶의 상징이 고기라는 점에서 미국이 얼마나 말이 안되게 풍요로운 나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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