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자마자 통장 잔고 확인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숫자가 그대로 찍혀 있으면 괜히 안도하게 됩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ATM 가서 돈 뽑을 수 있고, 이체도 몇 초면 끝나니까요.
은행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내 돈은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는 전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안 해보셨을 겁니다. 내 돈은 실제로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 말입니다.
이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정상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은행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전제는 사실이 아닙니다. 영화나 음모론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실제로 벌어졌고,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은행에 천만 원을 넣어두면 금고 어딘가에 내 이름이 붙은 돈이 그대로 보관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은행은 보관소가 아닙니다. 은행은 돈을 굴리는 곳입니다.
한국은행이 정한 지급 준비 기준에 따르면, 은행은 예금의 극히 일부만 실제 현금으로 들고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전부 대출로 나갑니다. 내가 맡긴 돈은 누군가의 대출이 되고, 그 대출금은 또 다른 은행의 예금이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돈은 불어나고, 경제는 돌아갑니다.
이 방식은 효율적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동시에 돈을 찾으려고 할 때입니다. 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연체도 아니고 금리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창구로 몰려오는 상황입니다. 그 순간 은행은 물리적으로 버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뱅크런은 은행을 가장 빠르게 무너뜨리는 방식입니다.
이쯤 되면 이런 반응이 나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은행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겠냐는 말입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2011년에 저축은행 사태가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영업 정지 소식이 터졌고, 다음 날 아침 은행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내 돈을 먼저 찾는 것. 그날 하루에 빠져나간 돈 규모는 상상을 넘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영업 정지 직전, 일부 VIP와 내부 관계자들은 이미 돈을 빼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던 은행은 이미 속이 비어 있었고, 숫자는 조작돼 있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고, 은행은 문을 닫았습니다. 은행이 안전하다는 믿음은 그때 이미 깨졌어야 했습니다.
이야기하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예금자 보호 제도가 있으니 괜찮다는 말입니다. 제도는 있습니다. 한도도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예금이 무조건 보호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금보험 기금의 규모는 전체 예금 규모에 비하면 매우 작고, 국가가 반드시 전부 책임져야 한다는 조항도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더 무서운 건 지금의 환경입니다. 예전에는 돈을 찾으려면 은행에 직접 가야 했습니다. 줄을 서고 번호표를 뽑아야 했습니다. 속도가 느렸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몇 초 만에 거액이 빠져나갑니다. 공포가 퍼지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비슷한 은행으로 불신은 바로 번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돈을 당장 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위기를 키우는 행동입니다. 다만 아무 준비도 없이 은행을 전적으로 믿고 있는 상태는 위험합니다. 돈을 나눠두고, 빚의 구조를 점검하고, 위기 상황에서 당장 버틸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두는 건 선택이 아니라 기본입니다.
은행은 내 돈을 지켜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돈이 흐르도록 설계된 시스템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순간, 그 차이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적어도 모르는 상태는 벗어났다고 봅니다. 그 자체로 이미 한 발 앞서 계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