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의 진짜 뜻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의 진짜 뜻

G 철벽 1 49 07.10 06:21

앎의 진정한 의미와 소크라테스의 지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내 생일이 언제인지,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 같은 것들 말이야. 이런 것들은 굉장히 확실하게 느껴지지. 그런데 사실, 많은 경우 우리의 앎은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는 거 알아?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를 안다고 말하는데, 서울대학교가 뭐야? 서울에 있는 큰 대학교라는 건가? 아니면 그 대학의 부지, 건물, 행정체계, 구성원들 모두를 말하는 걸까? 우리가 서울대학교를 안다고 말할 때, 이런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을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서울대학교를 안다고 말하면서도 정확하게 모른다면, 과연 서울대학교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앎은 우리 일상과 매우 가깝고, 일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도 앎은 때때로 신비롭게 느껴지지. 소크라테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데, 그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했어. 정말 진지하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어. 그런데 그의 특별한 점은,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다 똑같지만,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고 말한 거야.

소크라테스는 꼬치꼬치 캐묻는 걸 참 좋아했어.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면, "아, 당신의 주장이 이런 의미라면 이런 문제가 있지 않냐?"고 반박하고, 상대방이 다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면 소크라테스는 또다시 "아, 그런 주장은 또 이런 문제가 있지 않냐?"고 반박했지.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에우티프론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했어. 아버지가 일부러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니었고, 처음에 아버지의 노예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 노예를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밖에 묶어두었는데, 그 사이에 얼어 죽어버린 거야. 그런데 에우티프론은 아버지가 아주 불경한 죄를 저질렀다고 하면서 고소했어.

소크라테스는 이 점에서 에우티프론에게 문제를 제기해. "아버지가 일부러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인데, 그걸 어떻게 고소할 수 있느냐? 그것도 불경한 일 아니냐?"고 묻지. 에우티프론은 "나는 우리 문화의 종교와 윤리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경건함에 대해서도 잘 안다. 나의 기준으로 봤을 때, 아버지는 아주 불경한 죄를 저질렀다. 따라서 아버지를 고소한 게 정당하다"고 주장해. 

 

소크라테스는 다시 묻지,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경건함이란 게 뭐냐?" 에우티프론은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 경건한 것이다"라고 대답해. 소크라테스는 다시 묻지, "신들이 여러 명인데, 각자 좋아하는 게 다르고, 때로는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 서로 상충되기도 하지 않느냐? 그러면 경건함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지지 않느냐?"

그러니까 에우티프론은 "모든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경건한 것이다"라고 조금 수정해. 소크라테스는 다시 묻지, "그렇다면 경건한 것이 신들의 사랑을 받아서 경건한 것이냐, 아니면 경건한 것이기 때문에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냐?"라고. 결국 에우티프론은 답을 찾지 못하고 떠나버려.

이렇듯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할 때, 그 사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결국 그들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혀내는 데 아주 능숙했어.

소크라테스가 앎에 대한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를 주장한 걸까? 아니야. 그는 다만 앎에 대해 느슨하게 접근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어. 그는 앎을 조금 더 정확하게 규정하고, 우리가 무엇을 제대로 알 수 있는지, 무엇을 제대로 알 수 없는지를 밝히고 싶었어.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기술적인 지식들, 즉 배를 만드는 지식이나 가구를 만드는 지식은 확실성이 높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그런 기술을 잘 배우면 실제로 배나 가구를 잘 만들 수 있으니까. 반면, 무엇이 아름답고 정의로운지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한 지식은 확실하지 않다고 봤어. 왜냐하면 똑같은 대상이 상황에 따라 아름다울 수도, 추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소크라테스는 상대주의를 주장한 게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을 정립하고자 했어. 그는 단순히 주관적이거나 상대적인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어.

이런 관점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속단하는 것이야. 그러면 잘못된 독단적인 견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네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믿음인지 알아"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그는 앎을 단순히 의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성을 따라 사태를 면밀하게 분석하면 더 나은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어.

소크라테스는 정의롭게 사는 사람이 악독하게 사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 결론이 참인지 여부는 다시 따져봐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앎에 대한 희망을 열어두었다는 점이야.

Comments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죠.
이 말은 단순히 당신이 아는 지식이 제대로 된 지식이 맞냐는 질문입니다.

그는 상대주의에 반박했는데, 그 이유는 객관적인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었죠...
소크라테스는 더 나은 앎을 추구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따지고 들어가서 더 나은 앎, 즉 객관적인 지식을 추구했습니다.

저의 생각

저 자신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에서 저를 보는 것입니다.
제 지식이 정확한지 따지고 반박해서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해야 하죠.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