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 무아의 이해

나는 누구일까? - 무아의 이해

G 멜시아 1 42 07.08 04:28

불교에서 "무아"는 붓다의 최고의 통찰 중 하나로 간주돼. 무아는 말 그대로 '내가 없다'는 의미야. 그럼 지금 이걸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홍창성 교수님이 제시한 사고 실험을 한번 생각해보자.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를 다들 알 거야. 그런데 오바마가 손가락을 다쳐서 기계 부품으로 대체했다고 해보자. 생김새도, 기능도 예전과 똑같아. 이때 우리는 그를 여전히 오바마라고 부를 거야. 시간이 지나서 그의 몸 대부분이 기계 부품으로 대체되어도, 생김새나 행동은 예전과 똑같아. 그렇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오바마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영혼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믿고 있거나, 우리 자신을 고정된 생명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 불교의 무아설은 이 생각을 완전히 깨뜨리려고 해. 무아설을 이해하려면 '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 '아'는 아트만을 뜻하는데,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아야.

붓다가 살던 당시, 인도의 브라만교는 아트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어. 아트만은 나의 본질로, 영원불멸한 존재야. 즉, 내가 죽어도 아트만은 다른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야. 그런데 붓다는 아트만 설에 반대하며, 윤회를 통해 동일한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어.

붓다는 모든 존재가 계속 변화한다고 말해.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이름으로 불릴 뿐, 실제로는 동일한 존재가 아니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육체와 정신이 변하기 때문이지.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다는 거야.

이제 오바마의 손가락 실험으로 돌아가 보자. 기계로 대체된 후의 오바마는 물론 다른 오바마야. 하지만 원래의 오바마도 계속 변화하는 존재였어. 따라서 고정된 존재로서의 오바마는 없다는 거지. 결국, 무아설에 따르면 우리는 변하지 않는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자신을 집착하는 것이 욕망일 뿐이라는 결론이야.

그러면 붓다가 무아설을 어떻게 옹호했는지 알아보자.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할게. 붓다의 무아설 논변의 핵심은 '오온설'이야. 오온은 불교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말해. 색, 수, 상, 행, 식이야. 붓다는 인간이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온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어.

첫째로, 색은 물질적인 요소를 말해. 우리의 육체를 포함한 모든 물질을 의미해. 둘째로, 수는 고통, 중립적인 느낌, 즐거움 등의 느낌을 말해. 셋째로, 상은 지각, 인식을 뜻해. 예를 들어, 이것이 책상이다, 핸드폰이다 하는 인식이야. 넷째로, 행은 의지, 정서, 욕구 등을 의미해. 마지막으로, 식은 의식으로, 우리가 어떤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

붓다는 환원주의적이고 경험주의적인 접근을 통해 인간을 오온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주장해. 환원주의는 인간의 모든 부분이 오온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고, 경험주의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는 거야. 아트만은 영원불멸하지만, 오온은 계속 변하지. 따라서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

붓다는 무상을 통해 이 주장을 강화했어. 무상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의미야. 오온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따라서 인간은 오온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고,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돼.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제자들에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처음에는 명상을 통해 설명했어. 하지만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오온을 통한 분석적 설명을 시도했지. 그 결과,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 이는 때로는 수행보다도 공부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지.

Comments

불교에서 '무상'과 '무아'는 중요한 개념들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죠.
무상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의미이고, 무아는 '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무상이기 때문에 무아라는 개념이 성립되는 것은 명확합니다.

'무아'라는 사실은 곧 '상일주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죠.
'상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상하다'는 뜻이고, '주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무아'라는 뜻입니다.

만약 '나', 즉 아트만이 실재하고 제가 오온의 주인이라면, 제 마음대로 오온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색, 수, 상, 행, 식 중 어떤 것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죠.

예를 들어, "이 몸에서 병이여 사라져라. 물질이여 영원하라. 죽음이여 사라져라. 괴로운 느낌이여 사라져라. 늘 행복한 생각만 하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해서 제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들 오온은 제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구요.

즉,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이 나의 본질(아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구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무아와 무상을 통해 우리의 집착과 집념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