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G 츄츄 1 381 03.05 15:15

 

 

원수가 있으면 그를 미워하지 말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라는 말이 있죠.
불경 성경에서 참 많이 말하고 듣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게 정말 참말일까요?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주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참 편하고 쉽게, 많이 상처받지 않고 곱게 자라온 사람들이라는 것을요.

정말 뼈에 사무칠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게 지내온 사람에게 그런말 쉽게 못합니다.
용서와 기도 이전에, 고통받고 힘들었던 당사자가 치유하는 것이 먼저이니까요.

피가 거꾸로 솟았다가 뒤로 솟았다가 뼈가 다 으스러지는 것과 같은 고통...외부적인 상처나 질환이 없는데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세상에게 배신당하면 이렇게 되죠.

이런 사람에게 미워하지 마라, 기도해주라? 말은 정말 쉽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너 참 힘들었겠구나, 속상했겠다, 이런 공감 한마디 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원수를 위해 용서하라, 그를 위해 기도해주라는 말은 잘도 합니다.

이런 말은 피해자의 고통에 불을 지르는 폭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어쩌면 피해자에게 고통을 제공한 원인자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이렇게 용서와 기도를 쉽게 말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용서하자면서 사형 폐지를 주장하는 종교인들, 사회인사들이 가장 싫습니다.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저런 말이 가능할까요?
 
용서를 하더라도 합의를 할 때 하더라도 선후관계, 사실관계는 명백히 밝혀야 합니다.
당장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을 밟혀도 부르르 할 사람들이 왜 저런 말을 쉽게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용서나 기도라는 것은 말이죠.
자신에게 주어진 아픔과 힘겨움을 정말 절절히 겪어내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상처가 나면 딱지가 앉고 아무는 과정이 제일 쓰리고 아파요.
피해자들이 분노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는 것 모두 그렇게 자기치유를 하고 업보를 감당하는 과정이죠.

그 업보를 다 감당하느라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또 다시 용서나 기도라는 이름으로 굴레를 씌우는 것은 정서적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입니다.

내게 고통을 준 사람을 미워할 자유도 없는 걸까요?
내 아픔을 스스로 겪으면서 자기치유할 시간도 주어지면 안되는 걸까요?

가해자에 대한 용서나 기도는 피해자 스스로가 베풀 수 있는 아량이나 여유이지, 타인이 이래라 저래라 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업보를 쌓으면 안된다는 테제를 하나의 억압기제로 써먹으면서 피해자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할 때에나 가능한 것이죠.

흔히들 용서 운운하는 종교인들이 성경을 들먹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더군요. "네 형제가 너를 찾아와 용서를 빌면..." 이렇게 전제 조건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등의 죄의식도 없이 살아가는 가해자를 위해서 피해자가 먼저 용서와 기도라는 오지랖을 부릴 필요는 없는 것이죠.

Comments

불교에선 그 업장과 인연을 다 끊으라 합니다.
나와 내게 주어진, 주어져서 느끼는 사건과 감정을 객체로 보고 끊어내라고 하죠.. 하지만 인간이기에 느끼는 감정들 역시 소중한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방향성이 오로지 자신의 행복이었으면 하는 것이죠.
용서라는 이름의 불행과의 단절이 모두 짊어지기 어려운 분들께 한 방법이 되리라 생각 합니다.

업장소멸.. 말이 쉽지.. 평생을 수련하는 분들도 못해내는 일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