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은 일종의 정신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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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은 일종의 정신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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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빠진 친구가 있다.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은 한 세트다. 


자신이 피해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피해의식은 돈과 사랑에 관계 되어 있다. 

돈이 많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피해의식이 있다. 


그래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꽤나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여긴다.



사실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은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아니다. 

피해의식은 크든 작든 피해를 받았으니 생기는 마음이고, 그 마음이 있으니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랴. 


진짜 문제는 타인을 대하는 데서 발생한다. 

자신은 피해자이고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가 맺는 관계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정치의 영역에 머물 뿐이다.



그가 잘해주는 사람은 내 편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내 편이 아닌 사람은 무관심하거나 적대시 한다. 


물질적이든 정서적이든 내게 도움을 줄 사람은 내 편이 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무관심하거나 적대시하는 네 편이 된다. 왜? 자신은 피해자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니까. 


그 친구는 이대로 시간이 자나면 더 큰 공허와 허무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모든 관계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정치의 영역 안으로 끌어 들이는 이는 필연적으로 불행해진다.


그 친구에게 야박하게 말하고 싶다. 


“지금 네게 일어난 일들은 좋든 싫든 모두 네 선택의 결과다.” "돈이 없는 것은 싫은 일은 적게 하고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려고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냐.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용기가 없는 것을 은폐하려 이리 저리 재고 따지느라 일어난 일 아니냐." 그 친구의 피해의식은 근거 없는 것이고, 동시에 자기연민도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그 친구의 깅박적 상상 속에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그 친구는 어떻게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돈이 없고, 사랑도 못해본 지금의 자신의 삶이 오롯이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음을 ‘긍정’해야 한다. ‘인정’이 아니라 ‘긍정’해야 한다. 


돈도 없고, 사랑도 못해본본 선택을 한 자신을 어떻게 긍정할 수 있을까?



싫어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쪽팔릴 용기를 내어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책상머리에서 앉아서, 강박적 상상 속에서 그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 돈을 벌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돈이 좀 있고 사랑 비슷한 것이라도 하게 되었을 때, 지난 자신의 과거를 긍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근거 없는 피해의식과 실체 없는 자기연민을 떠나보낼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사람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다.



이 긴 글을 적으며 그 친구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머리로는 다 안다’는 그의 오래된 변명으로 또 도망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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