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지방 근무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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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지방 근무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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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붙었을 때 다들 끝났다고 한다. 부모님은 동네 잔치 분위기고, 주변에선 역시 너는 다르다 소리 나온다. 연봉 괜찮고 정년 보장되고 웬만하면 잘 안 잘린다. 겉으로 보면 인생 티켓 하나 뽑은 것처럼 보인다. 근데 정작 출근하고 몇 달 지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여길 왔지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일이 아니다. 일은 솔직히 버틸 만하다. 진짜 문제는 근무지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학교 다니고, 취업 준비까지 전부 수도권 기준으로 살아온 사람한테 지방 근무는 단순한 발령이 아니다. 삶 전체가 잘려 나간 느낌이다. 이건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이 멈춘다는 감각에 가깝다.

처음엔 다들 마음 다잡는다. 공기업인데 뭐가 문제냐, 몇 년만 버티면 되지 이렇게 생각한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버틴다는 말이 무섭게 느껴진다. 왜냐면 여기서 버틴다는 건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거랑 비슷하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나면 갈 데가 없다. 사람도 없고, 기회도 없고, 다음 단계로 이어질 통로도 없다.

서울에 남은 친구들은 퇴근 후에 스터디를 하고, 세미나를 듣고, 이직 준비를 한다. 새로운 사람 만나고 정보 돌고 판이 움직인다. 반면 지방 근무자는 퇴근 후 오피스텔 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죽인다. 같은 나이, 같은 출발선이었는데 점점 격차가 벌어질 거라는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사람을 제일 괴롭힌다.

이 불안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간이 금요일이다. 업무 끝나자마자 다들 역으로 뛴다. 캐리어 끌고 서울행 기차 타려고 전쟁이다. 좌석 없으면 입석도 탄다. 서서 세 시간 가는 게 일상이 됐다. 서울 가는 기차는 귀향이 아니라 탈출이다. 못 가면 주말 내내 그 도시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주말이 되면 혁신 도시는 진짜 세트장처럼 변한다. 불 꺼진 상가, 닫힌 식당, 사람 없는 거리. 평일에만 살아 있는 도시다. 겉으로 보면 공기업 직원들은 고소득자다. 근데 현실은 두 집 살림이다. 지방 월세, 서울 월세, 교통비, 외식비. 월급 오른 만큼 다 빠져나간다. 연봉은 오르는데 삶은 더 팍팍해진다.

퇴근 후 반겨주는 건 가족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차갑게 식은 편의점 도시락이다. 처음엔 동기들이랑 술도 마시고 웃는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다들 방으로 흩어진다. 혼자 먹는 저녁이 일상이 된다. 이 고독이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을 깎아먹는다.

그럼 왜 가족을 데려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답은 간단하다. 교육이랑 의료 때문이다. 아이 키우는 부모한테 이건 절대 포기 못 한다. 검증된 학군, 큰 병원 접근성, 문화 인프라. 이게 없는 곳에서 아이 미래를 맡기라는 건 너무 잔인하다. 스타벅스 하나 생겼다고 삶의 질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워라벨이 좋다는 말도 공허하다. 칼퇴근은 하는데 채울 수 있는 삶이 없다. 퇴근하고 나서 할 게 없다. 이게 진짜 문제다. 그래서 요즘 공기업에서 나오는 말이 이거다. 연봉 깎아도 서울만 보내달라. 공기업이 평생 직장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경유지가 되어 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일 먼저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젊고, 능력 있고, 선택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조용히 짐 싸서 떠난다. 그러면 남은 사람들한테 일이 쏠린다. 이번만 버티자라는 말이 반복된다. 그게 몇 번 쌓이면 일상이 된다. 야근 늘고 스트레스 쌓이고, 결국 또 한 명이 떠난다. 이 흐름은 멈추기 어렵다.

정책은 지역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했다. 공기업이 오면 사람이 오고, 상권이 살아날 거라고 했다. 근데 정착하지 않는 사람은 도시를 살리지 못한다. 평일 점심 장사만 되는 도시, 주말엔 텅 빈 도시가 됐다. 공기업 직원만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을 보고 투자한 자영업자들도 같이 무너진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숫자로만 봤다는 거다. 몇 명 이전시키면 어떤 효과가 날지 계산은 했지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빠져 있었다. 사람은 건물만 있으면 사는 존재가 아니다. 교육, 의료, 문화, 기회,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정착한다. 이 중 하나만 빠져도 도시는 기능하지 않는다.

이건 공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중심 구조를 바꾸지 못한 나라 전체의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지방 근무는 생활 방식 차이가 아니라 계급 이동처럼 인식된다. 특히 부동산이 이 인식을 더 굳혔다. 지방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동안 서울 집값은 아예 다른 세계로 가버린다. 이걸 본 선배들의 후회는 후배들한테 강력한 경고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집중을 해결하겠다던 정책이 서울의 가치를 더 높였다. 사람은 몸은 묶어둘 수 있어도 마음은 못 묶는다. 강제 이전은 잠깐 버티게 할 수는 있어도 미래를 주지는 못한다.

지금 공기업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사람을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껍데기만 남을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대한민국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걸 외면하면 언젠가 훨씬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1 Comments
익명6 01.22 14:20  
공기업 다니는 입장에서 너무 정확해서 소름 돋았습니다. 주말 도시 풍경 묘사 완전 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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