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원조는 중국이 아닌 한국

한자의 원조는 중국이 아닌 한국

G 토마토 0 106 10.16 01:11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이 한자를 중국에서 발원한 중국 고유의 문자고, 우리나라에는 기원을 전후하여 들어온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갑골문자로 유명한 상(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인것이 밝혀졌습니다. 
최근까지 동이족은 한국민족을 지칭하는말이었지만, 이 '은나라가 동이족이란' 사실 덕분에 중국은 다시 중화 삼족설을 주장하여 중국의 기원이 화족, 묘족, 동이족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알고보면 중국의 근간은 전부 동이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묘족이니 화족이니 동이족에서 갈라진것이란 말이죠. 

물론 동이족 자체를 우리민족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후대까지도 중국 역사서에는 동이전이라는 별전을 따로 두어 만주와 한반도일대의 민족들의 역사를 적고있는것을 보면 우리가 확실히 화족과 적대관계였던 동이족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우리와 중국인들은 '동이족' 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동이족의 정통성을 이어받은것은 우리죠. 
출토된 유물을 보면 고조선시대부터 이미 우리는 한자를 사용한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기보단 원래부터 쓰고있다고 보는것이 맞죠. 

언어학적 측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은 한자 한 글자에 한 개의 음가가 있지만, 중국은 한자 한 글자에 두세 개의 음가가 배정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일본의 한자표현의 예처럼 중국말이 한자를 차용했다는 반증입니다.  

예컨대, '國'자를 보면 '국(한국)', '꾸오(중국)', '고꾸(일본)' 등으로 한 글자에 한개의 음가를 지닌 나라는 우리뿐입니다. 더구나 중국은 사성이라는 성조까지 있어서 도대체가 복잡하여 한자가 자기네 글자라는 주장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단어를 보면 이런 차이는 더욱 심합니다. 예를 들어 '物件'에 대한 표현을 우리는 바로 '물건'이라고 지칭하는 반면에 중국은 '東西(똥시)'라는 전혀 글자의 의미와는 연결되지 않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례는 무수하게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이 먼저 있어서 글자를 빌려 사용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인 것입니다. 

처음 한자에는 뜻은 있었지만 음이 부여되지는 않았습니다. 음이 부여된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즉, 한자의 음가는 흔히들 "이두표기"라는것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것입니다. 

한자가 문자라면 한글은 발음기호에 해당한다는것을 알 수 있죠. 

물론, 한글은 아주 과학적인 작품인 동시에 엄청난 발명품입니다. 
절대 한글을 무시하는것이 아닙니다. 한문의 중요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즘 한자어를 한글로 순화시키자고 주장하는데, 한자는 정말 잃어버리면 안될 우리의 자산입니다. 

한자가 쓰인다고 중국것으로 몰아 부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추가 내용입니다. 이것도 참고해주세요.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필시 중국 중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계통은 멀리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 而係遠始于寒 的北方. 

지나의 서량지徐亮之라는 사학자가 쓴《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세석기細石器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細石器文化部族 最初乃居住 今西伯利亞的貝加爾湖附近他 們乃中國傳說中的炎帝神農氏本族 

또한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문화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중국 인종의 시원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서량지《중국사전사화》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 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 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요녕성)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산동성)가 그 중심 지역이다」 

중국의 학자 왕동령王桐齡이 저술한《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의 기록을 보자. 

「4천년 전 (…) 현재의 호북성·호남성·강서성 등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九麗는 구려九黎·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사변古史辯》에서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은, "현조玄鳥는 은나라 사람과 동이의 조상신이다(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하였고, 또 같은 책 상편에서는,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고사변》「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같다. 태호太 ·제준帝俊·제곡帝 ·제순帝舜·소호小 , 그리고 설契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중국의 학자 노간勞幹 
「우리들이 동방 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는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오향청언吾鄕淸彦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나라나 주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며, 기자조선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량지《중국사전사화》▶「중국의 책력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나라, 상나라의 동이족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曆法은 사실 동이東夷가 창시자이며, 소호小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 자신의 저서《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방 인종의 오행 관념은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