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와 귀(貴)는 다른 것입니다

부(富)와 귀(貴)는 다른 것입니다

G 첩첩산중 1 2,287 2024.11.02 04:24

흔히 부귀하다란 말을 씁니다.
허나 부(富)와 귀(貴)는 엄연히 다를 수도 있고 공생할 수도 있습니다.

돈 많은 졸부가 천박할 수 있고, 가난한 선비가 귀할 수 있습니다.
배금(拜金)이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선 전자가 후자를 앞서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기재하는 저 역시 뼛속까지 전자에 부합하는 속물입니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늘 돈과 결부됩니다.
명리(命理)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돈을 탐한 건 아닌지 부끄럼이 일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산사의 새벽 예불에 참석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을 거두며 병(丙)화가 임(壬) 바다 위를 비춥니다.

그 모습이 실로 아름다우니 광휘상영(光輝相映)입니다.

서귀포시, 배산임수(背山臨水)한 산사가 아름답습니다.
새소리 지저귀는 진(辰)시의 고요한 산사 한켠… 문득 잡념의 저 끝트머리에 부(富)와 귀(貴)가 자리합니다.

풀어 헤쳐 곰곰이 고놈과 씨름을 해보니 부(富)하고도 천박함이 있고, 빈(貧)하고도 청빈한 귀함이 있음을 느낍니다.

돈과 물질이 주는 그 짜릿한 쾌감… 허나 지금 이 산사에서 느끼는 희열은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고요한 중에 맑고 청아한 새소리 한 음(音)에 온갖 번뇌(煩惱) 번민(煩悶)이 스러지니 이 짜릿한 희열은 속가의 그 욕망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고요합니다. 편안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성적 쾌락도 물질적 욕망도 그 무엇도 침노치 못합니다.

견불생심(見不生心)이라… 다시 저기 저 아래 색계(色界, 중생계)로 돌아가면 아마도 이 기쁜 희열은 사라지고 다시금 번민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저를 가둘 듯합니다.

 

그리 되는 게 싫습니다.

허나 또한 그리될 것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의 이 고요함은 살얼음처럼 금방 깨지고 말 것입니다.

다시 저는 부(富)가 지배하는 귀하지 못한 천박한 저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지쳐 스러질 즈음 다시 돌아오리란 다짐과 함께…

Comments

G ㅇㅇ 2024.11.02 04:25
법성게에 나오는
"일즉일체다즉일 잉불잡란격별성"
이란 구절이 생각나네요.
성불하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