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보는 술사가 된다는 것은

사주를 보는 술사가 된다는 것은

G 설화 2 2,882 2024.09.10 10:29

사주 공부를 한다는 것과 사주를 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전자에는 앞에 사람이 없지만 후자에는 앞에 사람이 있다.

상대할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 다르다.

그 차이는 막상 앞에 사람이 있을 때 느낄 수가 있다.
살 떨리는 순간이고 긴장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혹시나 틀리면 어쩌지?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 속의 부담감이 서서히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러나 자신감 있는 척, 내 풀이는 틀리는 법이 없다는 척, 태연을 가장 해야 한다.

그렇게 태연을 가장하나 태연이 아닌 나를 느낄 때마다 머릿 속에 드는 생각이 있다.
맙소사! 왜 나는 이런 이상한 일에 뛰어들어 버린 것일까?

다른 어둠의 경로도 많이 있을 텐데 말이다.

아무리 내가 음지에 사는, 스승님의 말씀따나 어둠의 자식이라지만 하필이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진짜 어둠의 자식인 셈이다.

오죽하면 어둠의 자식 컨테스트에 나갈 자신도 있다.
 왜냐하면 논산에 갔을 때도 6주차의 훈련을 마치고 다른 동기들은 자신의 부대를 배정 받아 기차를 타고 떠나는데 나는 큰 걸음으로 26연대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26연대는 전방으로 배치되기 전 박격포 훈련을 받는 부대였다.
그리고 암암리에 26연대로 향하는 이들은 어둠의 자식이라는 별칭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어둠이 따라다니고 있었던 셈이다.
술집의 어둠이 따라다녔고, 그리고 지금은 전등 하나 켠 카페의 어둠이 따라다니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내가 어느 순간 이 이상한 일을 즐기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뭐랄까. 짜릿함이라고 할까.

일이 없을 땐 긴장할 일이 없어서 편하긴 하지만, 동시에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트 로커 라는 전쟁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쟁에 길들여진 나머지 평온한 생활의 적적함을 이기지 못해 다시 전쟁터로 떠난다.

마치 이런 마음이라 할까.
그렇다면 나는 어느덧 전쟁광이 되어버린 것일까?

어찌 보면 사주를 보는 일은 전쟁터에 서는 것과 닮아 있다.
장렬히 전사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제압하던가.

아니, 단지 손님을 대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의 각오가 따르는 일인데.
그렇다면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공개추론회에 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각오로 임한다는 말인가.

그들의 각오와 곤조 물러서지 않는 배짱에 새삼 더 감동을 받는다.
진정한 쾌감은 위기의 골이 깊을수록 더 높은 벼랑 위에 설수록 더 짜릿해진다는 점을 모르지 않으나 정말 생각할수록 골이 띵하고 아찔하다는 느낌이다.

술사의 가오는 실력보다는 쫄지 않고 지르는 배짱에 있다.
나 또한 공감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다가 내가 이런 이상한 일을 하고 있고 이런 이상한 쾌감에 젖어버렸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문이다.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 나 또한 물러서지 않으려고 버티고 돌파해나가려는 모습을 스스로 관찰할 때마다 아 내가 근본적으로 이 일을 진짜 재밌어 하는 인간이구나 라는 것을 느낀다.

지기 싫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제압 당하기보다는 제압하고 싶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도무지 답이 안나온다.

생각해보면 좀 더 쉽게 가는 길도 있었을 것이다.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딱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측면에서 택한 길도 아니다.
대중에게 학문인지 미신인지도 꺼림칙한 그래서 의심과 의혹의 여지를 살 수 밖에 없는 길이 아닌 좀더 인정 받는 분야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이 일을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것보다 재밌는 일이 없고 스릴 있는 일도 없으며 이것보다 나를 만족시키는 일도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대중에게 의심과 의혹을 사는 학문이라는 점도 좋아져버렸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상대를 더 놀래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주를 보는 일.
이것은 음지의 인간이자 어둠의 자식이 택할 수 있는 최고의 초특급 어드벤쳐 스릴러 흥분 만땅 직업인 셈이다.

왜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 마디로 '그냥'인 셈이다.

굳이 이유를 달자면 그냥 지르고 봤는데 상대방이 감탄하는 게 엄청시리 재밌어서이다.
이 쾌감은 실제로 상대를 앞에 두고 사주를 보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르는 재미이다.

나는 이 쾌감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겨자씨만한 실력과 콩알 만한 배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 일단 쫄지 말고, 보자.

Comments

G ㅇㅇ 2024.09.10 10:31
자신감으로 지르는 것이 필요한 내담자가 있고 진솔하게 다가가야할 내잠자가 있고 케이스마다 다 다르겠죠.
특유의 통찰력을 맘껏 뽐내실 날들이 쭉 계속되길 맘으로 기원합니다. 아자아자~!!!!
댓글내용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