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이즈음에는 소강상태나 명리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되어 공부가 더디게 된다.
이 4년차 정도에서부터 두 길로 나뉜다.
한쪽은 공부를 더 파고들기 시작하고, 다른 한쪽은 어느 정도 감명이 가능하니 돈벌이에 나선다. 허나 공부가 미흡하니 실전 상담에서 말로 때우게 된다.
공부 5년차...
여기서도 진전이 더디면 드디어 '말도사'가 된다.
"명리는 말이지, 좋다 나쁘다가 아니다." "명리는 말이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합리화를 하는 단계에 이른다.
공부 10년차...
"응, 그거 돼." "응, 그거 안 돼." "응, 그때 이별이야." "응, 그때 결혼할 거야." 명리는 확실한 가부의 결정체입니다. "된다, 안 된다." 이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건 사실 명리가 아니라, 그냥 말로 때우는 심리 상담일 뿐입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명리는 희망을 주는 학문이 아닙니다. 명리는 거울처럼 어둡고 밝은 것을 명확히 있는 그대로 비추는 학문입니다.
모든 역술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3대 도사를 보통 자강, 도계, 제산 선생이라 합니다. 이 분들 저서 어디에도 어설프게 말로 때우는 대목이 없습니다. "된다, 안 된다" 이것이 확실하지요.
최고라 불리는 세 분의 도사가 그러할진대, 3~4년도 채 안 된 학생이 "명리는 가부가 아니다."라 말한다면?
술사는 신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감명에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최고라 불리는 박 도사도 감명에 실패하여 명주의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다 합니다. 하물며 미진한 후학들이겠습니까?
술사가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할 때, 주로 보이는 양상이 합리화입니다. 자신감이 떨어질 때 보이는 모습입니다. 자신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학문의 미진함, 즉 실력 부족에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쌤, 저 이번에 합격할까요?"
말도사 왈: "명리는 되고 안 되고 그런 게 아닙니다. 비록 운은 불리하나 노력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감이 결여된 전형적인 유형의 통변입니다. 왜냐하면, 질문자가 시험에 붙으면 "보세요, 노력하니 되죠?"라고 하고, 시험에 떨어지면 "노력이 좀 부족하셨군요."라고 할 것입니다. 이는 내담자의 기분을 고려한 부드러운 상담이나 희망을 주는 상담이 아닙니다. 자신감이 결여된 말장난일 뿐입니다.
만일 위 질문자가 박 도사에게 물었다면?
박 도사 왈: "된다." "안 된다." 이게 끝입니다.
된다, 안 된다의 가부가 없다면 그게 어찌 명리겠습니까?
재밌는 사실 하나는 공부가 오래된 고수일수록 틀리더라도 "된다, 안 된다"가 명확하다는 것이고, 반대로 초학자나 공부가 짧은 사람들이 이중적인 모호한 말로 때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차이가 있는데, 어떤 역술인은 문제가 어려워 '된다, 안 된다'의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반면, 어떤 역술인은 "명리는 된다, 안 된다의 명확성이 아니다"라며 합리화의 늪에 빠집니다.
독학자들도 공부를 하다 보면 이런 딜레마에 봉착하게 됩니다. 후자로 접어들면 거기서 술사로서의 발전은 끝나게 될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시원시원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