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사진 찍는 자와 사진 찍히는 자

(사주) 사진 찍는 자와 사진 찍히는 자

G 설화 1 445 2023.12.26 16:23

사진기를 들이대면 피하는 사람이 있다.
영 쑥스러워 하면서 피하려고 한다.

사진기에 대해 그는 피사체가 된다.

사람은 관에 의해 규정된다.
관과 관계가 좋은 사람은 규정이 쉽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세계가 그를 쉽게 규정지어준다.
그 이유는 그 스스로가 사회적인 쓰임이 좋기 때문이다.

단순히 관운이 좋다고 하기보다는, 그 스스로가 세계에 대하여 성실하기 때문이며 인물 또한 잘나게 된다.
왜냐하면 세계가 그를 규정하기 쉬워야 하니까. 세계에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니까.

그는 세계의 피사체가 되어야 하니까.
세계의 피사체가 되는 자는 좀 피곤해진다.

우리는 흔히 얼굴 팔렸다, 라는 말을 쓴다.
얼굴이 알려진 자는 자유를 억압당한다.

관이 잘 생기면 세계로부터 안정감을 제공 받지만 한편으로 억압의 성분이 되기도 한다.

관과 관계가 좋은 사람은 사진기 앞에 당당하다.
찍히는 일에 당당하다.

규정하는 사람들이 그를 찍으려하고 자꾸만 달라붙는다.
그리고 굳이 사진기 앞이 아니라도 그는 멀리서도 파악이 된다. 눈에 잘 뜨인다.

반면, 재성은 규정하고자 하는 성분이다.
재성과 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눈에 뜨이기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된다.

시야가 넓다. 시선은 권력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시선을 독점하며, 찍히기보다 찍는 데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그들에게 사진기를 갖다대면 어색해한다.
관과 관계가 좋은 사람보다 인물이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누가 나를 규정해? 라는 마음도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사람이지만, 제각각 갖고 있는 시야가 다르다.
마치, 필드를 뛰는 선수 중에도 넓은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되는 것처럼. 이를 재성이 담당한다.

넓은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만큼 신경 쓸 게 많다는 것이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영역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물론 시야가 넓다고 해서 그 시야를 다 감당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규정을 잘 하는 사람은 보석을 잘 발견하는 사람이고, 피사체가 되는 보석은 자신을 발견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하여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찍는 자와 찍히는 자. 규정하는 자와 규정되는 자.

이러한 관점에서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혹은 찍히는 거 좋아해요? 라는 물음은 그가 재관에 대해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은유적인 물음일 수 있다.

Comments

G ㅇㅇ 2023.12.26 16:24
오우~~이렇게 관,재와의 관계를 비유해주시니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