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통계학인가에 대한 고찰글

사주는 통계학인가에 대한 고찰글

G 느낌 1 480 2023.12.11 01:59

사주는 통계학인가? 종종 이런 질문을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역술이 미신화 되었고, 과학을 좋아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역술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을 환기하고자 굳이 '통계학'이란 말을 빌려온 것 같다.  

나는 통계학이 어떤 학문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통계학이 어떤 뉘앙스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을 검토해본 결과, 역술과 유의미한 관계를 논할 수 있는 바, 예를 들어 관인이 중심이 되는 팔자는 공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식재가 중심이 되면 자신이 CEO가 되는 경향성이 발견되므로, 이를 토대로 하여 미신으로 알려진 역술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기에, 사주는 통계학이라는 말로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역술을 포장하려는 심리가 발견이 된다.

나는 뭐 타당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문은 현실적인 토대를 갖지 않으면 실용성을 상실하고 공허한 담론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주가 학이 아닌 술이 되려면,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 경험적인 사례의 참고 없인 학으로는 가능하나 술로서는 가히 불가능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학이라는 말로 전체를 포괄할 수 없는 아쉬움.
그리고 그러한 말을 듣게 될 때 어떤 위험함까지도 나는 종종 느끼곤 한다.

사주가 통계를 따라가고 경험을 따라가는 것에 국한된다면, 어떤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학문적인 원리 원칙이 바로서지 못하고, 유동적이고 우연이 개입하는 경험을 따라가지 못하기에 계속해서 사주는 현상을 분석하고 변명하는데 급급하여야 한다.

결국 사주는 경험 이외의 토대를 가지지 못하고 옛날에 이랬기에 지금도 이럴 것이다, 라는 말 이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난점이 따른다.

첫째는 시대 자체가 계속 바뀐다.
때문에 예전에 부귀를 보았던 사주가 지금 시대에 태어난다고 해서 다시 부귀를 쥘 수 있다고 장담하기가 어렵다.

둘째는 인생이란 것에 통계를 낸다는 것은 인생의 입장에 있어서는 대단히 치욕적인 일이 된다.
백번 양보해서 통계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부귀 요소 이외에 개인의 행복요소는 산술화 하기가 불가능하다.  

물론, 사주는 자신 만의 원리와 원칙을 갖고 있다.
이는 오랜 동안의 자연관찰로 인하여 확립된 체계이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를 무시하진 못하지만, 내가 사주를 느낄 때 오히려 이 학문은 음양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의 활용성으로 닻을 던진 대단히 연역적이며 일관적인 체계로 요약된다.

이러한 원리와 원칙을 가지는 데에는 자연이라는 재료와 통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대자연순환의 신비가 밝혀진 이후부터는 사주라는 학문은 경험으로부터 독립된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굳이 통계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팔자를 여는 순간 한 개인이 실감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식재관인의 그릇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을 갖기에 이르렀다.
사주는 굳이 통계를 빌리지 않더라도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고 현재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몰라도,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잴 수 있는 기술이다.

그 근거는 물론 어느 정도는 현실의 경험과 오랜 동안의 자연관찰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나누어진 그릇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있다.
사주를 본다는 건 매순간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이 현실에서 비식재관인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십간 십이지가 어떠한 물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어떠한 성향이 유리하며 불리한지에 대한 관찰을 응용하는 것이며, 당대의 현실 안에서 사주라는 암호를 풀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주를 보는 사람이 되려면 누구나 당대의 사회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사주학에 대한 지식이 습득된 이후에는 더 이상 책이 아니라 현실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하자. 사주가 술로서 존립하려면 현실을 떠날 수 없다. 때문에 사주는 언제나 통계학일 것이다.
그러나 사주는 자신 만의 체계를 갖고 한 개인이 맛볼 수 있는 비식재관인의 그릇을 나눌 수 있는 분명한 기준점과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점 또한 자연이 변하면서 조금씩 위치를 바꿔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지 않되 기존의 형성된 기준점을 당대의 현실과 접목하여 해색해내는 것.

이것이 내가 사주에 대해 갖고 있는 관觀이다.

나는 사주학을 통계학이라 부르지 않고, 딱딱한 학문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나는 '사주' 라고 쓰고 '아트' 라고 말한다.

Comments

G ㅇㅇ 2023.12.11 02:00
제가 통계학 전공자로서 감히 말씀드리면 검증이나 실증된 부분은 theory로 정립되었고, 아닌부분은 블라블라 ~론으로 남아있는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차범위내에서 특이값들까지 정확히 예측되는것은 아니라고 봐요~

결국 오차범위내의 추세만 잡아내는것으로 본다면 통계학과 명리학이 어느정도는 괘를 같이하는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