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토(己土)

<적천수> 기토(己土)

G 일희일비 1 545 2023.12.07 12:03

나는 기토다.
그래서 기토의 강력함과 위대함에 대하여 마구마구 자랑을 하고 싶다.

그러나 막상 나는 내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그냥 나 스스로 나를 느끼기에 나는 대단히 복잡한 인간인 것 같다.

이건가 싶으면 저건가 싶고 하여간 그러하다.
때문에 자랑하고 싶어도 이렇다 하게 내세울 분명한 게 없다.

고우영이라는 만화가가 있다.
이 사람은 툭하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데, 예를 들면 삼국지를 집필하면서 관우가 등장할 때면, 고우영이라는 위대한 만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 이름의 중간 글자인 '우'가 관우의 이름이 되고 있다는 별 대단치도 않은 우연한 사실을 내세우며 한껏 거드름을 피운다.

나는 그러한 종류의 인간은 아닌 모양이다.

 
己土卑濕 中正蓄藏 不愁木盛 不畏水狂

기토비습 중정축장 불수목성 불외수광

火少火晦 金多金光 若要物旺 宜助宜幇

화소화회 금다금광 약요물왕 의조의방



토는 변화를 주관하며, 목화금수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무기토를 비교해보면 음양의 기질 차이라고 할까 하는 것을 분명하게 느껴볼 수 있다.

토를 보통 모든 걸 껴안는 성향이라 말을 하는데 껴안을 때 껴안더라도 어떤 질서와 논리가 필요하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질서와 맥락 없이 껴안으면 결국 아무 것도 껴안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토가 분명하게 나서서 중재하고 그리고 이것이 양적인 기질이라면, 기토는 음적인 기질로서 보다 情적이면서 精적인 측면에서의 중재를 논해볼 수 있다.

 
己土卑濕 中正蓄藏

기토비습 중정축장


 
기토는 낮고 젖어 있으며, 중립을 지키고 바로 서서 쌓고 저장한다.

무토가 높고 건조했다면, 기토는 낮고 촉촉하다.
낮다는 건 보다 생활에 가까이 있다는 의미이며 촉촉하다는 것 또한 무토처럼 견실하고 딱딱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기토도 무토처럼 중정을 지키는데, 무토에서는 기중차정旣中且正이라고 했다.
'이미' 중심이고 '또한' 올바르다고 중정의 성품에 강한 악센트를 박아놓았는데, 기토를 논하면서는 그런 악센트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대목을 보아도 무토보다는 많이 부드러운 기토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기토는 쌓고 저장하는 축장하는 성질이 있다고 하는데 이 대목 역시 동하여 열리고 닫히는 무토의 능동적인 느낌보다는 소극적인 성질로 읽힌다.

 

이를 테면, 무토는 너 그만하고 그 다음 너 나와봐라 라고 한다면 기토는 가만히 지켜 바라보면서 감싸안는 느낌이라 할까.


不愁木盛 不畏水狂

불수목성 불외수광

목이 성해도 근심하지 않고, 수가 광분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火少火晦 金多金光

화소화회 금다금광

화가 적으면 화를 흐리게 하고, 금이 많으면 금이 빛난다.


 
이어지는 서술이 재밌는데, 목화금수에 대하여 기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하여 골고루 다뤄주고 있다.
좀 특이하다고도 할 수 있다.

기토는 그 품을 벌려 쌓고 저장한다.
목도 품어주고 수도 품는다. 화와 금도 품는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 기법에서 이미 모든 걸 껴안으며 베푸는 기토의 성질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다른 기운에 대해서는 많으면 많은 대로 괜찮다고 多를 얘기하면서 화에 대해서는 少를 짚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결국 多를 얘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가 적으면 화가 흐려진다는 말은 화가 많으면 화를 흐리게 하지 않는다는 말로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기토는 젖어 있기 때문에 적은 양의 화는 흐리게 하지만 화가 많다면 그렇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도 안고 저것도 껴안으면 기토가 좀 힘들지 않을까.
맨날 남만 안아주다가 자신을 챙기지 못할까 걱정이다.

 
若要物旺 宜助宜幇

 

약요물왕 의조의방

만약 만물을 왕성하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거들고 보좌해줘야 한다.



힘들면 도망가라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는다.
기토는 기본적으로 끌어안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좀 소모적이며 피곤해지는 성향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럴 때 곁에 의지할 수 있는 성분이 있으면 괜찮다고 한다.

힘들면 도망치면 되는데, 마땅히 거들고 보좌를 받아 궁극적으로는 껴안고 베풀고자 하는 성분.
이래서 기토를 어머니와 같은 대지의 성향으로 보는가보다.

흠, 이쯤되면 가만히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프리 허그의 따스함.
기토도 괜찮은 걸.

Comments

기토일간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주위의 동료들도 기토일간은 부드럽고 알력/불화가 없는, '仁者無敵'의 성향을 두두러지게 봅니다.

남자는 특히 그 성향이 강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