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토(戊土)

<적천수> 무토(戊土)

G 일희일비 1 598 2023.12.01 01:57

토는 . .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 . 모르겠다.
그래도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부추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물 파전은 못 만들어도 부추전은 부쳐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잘 부쳐진 부추전은 해물 파전을 넘어 시카고 피자 마저 능가하기도 한다.

장자 응제왕 편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고 한다.
숙과 홀은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서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에게 아주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래서 숙과 홀은 서로 의논하여 혼돈의 덕을 갚으려 했다.

"사람들은 모두 7구멍이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이 분만 홀로 없으니 시험삼아 뚫어 주자."

이렇게 하여 하루 한 구멍씩 뚫어 7일째가 되니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

'어윤형, 전창선' 쌤들이 지은 '오행은 뭘까?' 라는 책에서는 토를 이야기 함에 앞서 이러한 글을 옮겨 놓았다.
그들은 이 글에서의 혼돈을 곧 토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혼돈은 혼돈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데 혼돈에 자꾸 질서를 부여하려는 순간, 이미 혼돈은 혼돈이 아니게 된다는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말씀이다.

 

이렇게 혼돈 자체가 본질인 토를 알려고 하니 나는 어렵고 잘 모르겠는 것이다.

그냥 모르겠는 채로 두는 것이 어쩌면 토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토가 왜 혼돈이냐면, 토는 성장하고 빛나고, 결실을 맺고 수렴하는 목화금수의 분명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이면에 숨어 각 사행의 변화를 주관한다.

 

때문에 이렇다 할 개성이 없다.

개성이 없는데 변화를 주관한다는 개성은 있다.
있는데 없는 건 아니다.

없는데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혼돈이다.  

 
戊土固重 旣中且正 靜翕動闢 萬物司命

무토고중 기중차정 정흡동벽 만물사명

水潤物生 火燥物病 如在艮坤 怕沖宜靜

수윤물생 화조물병 여재간곤 파충의정


 
나는 음양오행이라는 영화판에서, 무토를 생각하면 레디 액션! 컷! 하고 외치는 박찬욱 감독을 떠올리게 된다.

 

좀더 파고들어가면 토는 혼돈이면서 중앙에 위치하고 다른 사행을 교유케 하는데, 무토가 소리 높여 컷, 목화는 이제 그만 들어가셈 다음은 금수가 와서 노시게 액션을 외친다면, 기토는 스탭의 역할로 직접 목화금수 속으로 스며 들어가 자 적당히들 하시고요 하면서 중재하는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戊土固重 旣中且正

무토고중 기중차정


 
무토는 단단하고 무거우며 이미 중심이고 또한 올바르다.

 

무토 하면 흔히 물상적으로 산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산은 단단하고 무겁고 뭔가 중심을 잡고 있어서 무토의 든든한 느낌에 합치되는 바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 읽으면 든든하여 의지할 수 있는 깍두기 머리의 큰 형님을 연상할 수 있다.

 
靜翕動闢 萬物司命

 

정흡동벽 만물사명

 
고요하면 흡수하고 동하면 열려, 만물을 사명한다. 즉, 만물의 목숨을 주관한다.

고요하면 흡수하고 동하면 열린다는 말은 거둘 건 거두고, 살릴 건 살린다는 의미로 봄여름의 창성한 기운과 가을겨울의 가라앉는 기운을 주관하여 결국은 만물의 생장수장을 감독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컷과 액션. 죽이고 살리고, 제 때에 배우를 출현시키고 퇴장시키는 우리의 큰형님.
이 때 만물은 엄밀히 말해 화와 수보다는 금과 목에 더 가깝다.

 

화와 수는 그 자체로 음과 양이 지극하여 생장소멸의 영향을 적게 받지만, 금과 목은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흐르는 가변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죽고 사는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만물의 운동이란 건 음양이 펼쳐진 가운데 중앙에 토가 감독을 하면서 금과 목이 죽고 사는 운동임에 다름이 아니다.
음양이라는 대자연의 순환 속에서 목의 도전과 금의 결실, 성장하고 결실을 맺으며 죽고 사는 운동이 반복된다.  

 
水潤物生 火燥物病

수윤물생 화조물병


 
수가 윤택하게 하면 만물이 태어나고, 화가 건조하게 하면 만물이 병든다.

여기서 무토가 어떻게 만물을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모래사장에서 모래로 성을 지으려면 건조한 모래로는 아무리 뭔가를 쌓으려고 해도 쉽게 무너져버린다.

 

흙에 찰기가 없기 때문이다.

수윤물생이라는 건 직관적으로는 이와 같은 비유로 이해할 수 있고, 비록 무토가 만물의 목숨을 주관한다고 하지만 만물을 생하려면 맘껏 응축하여 생명의 씨앗을 튀우는 힘이 되는 수기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무토는 수라는 자궁을 일단 품고 화와의 조화를 통하여 만물 즉, 금목의 생사를 감독하는데, 어찌 보면 무토는 수를 통해 동작하고 화를 통해 멈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금목이 생하고 병든다.  

 
如在艮坤 怕沖宜靜

 

여재간곤 파충의정

 
만약 간곤에 위치하면, 충을 두려워하고 마땅히 고요하여야 한다.
간곤이라는 건 간방과 곤방을 의미하며 간방과 곤방은, 축인丑寅과 신미申未의 방향이다.

 

계절적으로 축월과 인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고, 신월과 미월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이 때에는 고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정흡동벽'에서 고요하여 흡수하는 작용의 반대는 동해서 열리는 작용이 된다.
'파충의정'의 의미를 단순히 나는 묘유충 인신충 축미충 하는 충의 작용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광의의 의미에서 충동하여 흔들어줌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무토는 동하면 열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축인과 신미의 방향에서는 고요하길 원하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진사나 겨울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술해는 맘껏 수를 통하여 동해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때 동하면 무엇이 열리는가 초여름에 금이 생하고, 초겨울에 목이 생한다.

그러나 음양이 교차되는 운동,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고요하여 흡수하고 닫아주는 역할을 잘 맡아줘야 하는 것이 무토의 역할인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을 흡수하고 닫아주는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땐, 축월에 금이 입묘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땐 미월에 목이 입묘된다.

만약 간방과 곤방에서 고요하지 못하고 동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목이 묻힐 시기에 목이 죽지 못하고 금이 묻힐 시기에 금이 죽지 못한다면?
그렇게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무토라면?

그건 제대로 된 감독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축인월에 고요하지 못하게 되고 미신월에 고요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딱히 사주적으로 어떠한 상황에 놓였을 때 축인월의 무토 일간이 고요하지 못한 상황이다, 라는 걸 짚어주려고 이러한 싯구를 적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적천수 천간론의 싯구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이건 딱히 실용적인 무엇인가를 알려주기보다는 그림을 그려주고 이미지를 전달해주려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 요약하자. 무토는 강호 최후의 보스로서 수를 품어 금목을 낳고 화에 의해 작동이 멈추어 금목을 죽인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박찬욱 감독의 컷과 액션. 감독이 잘못 지시를 내리면 영화가 이상해져버린다.

 

놀 놈을 놀 때 내보내주고 퇴장 시킬 놈은 제 때 퇴장 시켜주는 큰형님의 존재로서의 무토라는 개성을 특징 지어보며, 이 알 수 없는 혼돈에 구멍을 내어본다.

Comments

G 가람 2023.12.01 01:58
무토 = 사람으로 치면 몸통 역할

토는 몸의 중심이다.
중앙의 몸통을 통해 머리에도, 팔다리에도 모든 에너지를 공급하고 운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