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편

기억의 단편

G 드미트리 1 604 2023.11.09 16:50

지금부터 눈을 감고, 당신의 기억 저편속으로 들어가보십시오. 잊고 있었던 기억, 잊고자 했던 기억들을 모두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들을 생각하셨나요? 아닙니다. 당신은 틀렸습니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기억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자~ 다시 긴호흡을 내쉬며, 다시 당신의 기억저편으로 돌어가 보십시오..

#1


 

"여보 왜 이렇게 늦게 깨운거야?"


 

"아 진짜 엄마 때문에 오늘 지각했단 말이야!"


 

아침은 언제나 전쟁이다. 비록 총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아침 자체는 전쟁터와 같다. 언제나 불만투성이 남편 그리고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아들녀석때문에, 아침이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전쟁터와 같은 시끄러운 아침이 끝나게 되면, 조용히 혼자남은 집안을 청소한다. 언제나 반복되는생활들..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하지만 어쩔수 있겠는가, 좋은 직장이 있어 출근할곳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얼굴또한 예쁘지 않으니 남편에게 언제까지나 사랑받지 못할께 뻔한일이기에, 집안청소 마저 게을리 하면 어떤 남자가 나를 좋아 하겠는가..


 

그렇게 반복적인 일상이 어느정도 정리되면, 한잔의 커피가 생각난다.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수 있는 나의 공간인 부엌속에서, 짧고도 초라한 시간동안 커피한잔을 더불어 많은것들을 기억하게 된다. 향긋한 헤이즐럿의 커피향이 코속에 들어올때면..지난 과거의 기억들이 문득 머리속에 그려진다.


 

철없이 즐거웠던 친구들과의 추억,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화끈했던 성격탓에 대학에서 남자들에게 꽤나 인기 있었던 지난날, 그런 추억을 생각하며 뜨거운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목구멍 사이로 전해져오는 뜨거운 액체의 감각이 지나갈때쯤 다시 코속을 파고드는 향긋한 헤이즐럿의향.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진다. 지금의 현실보다 더 나은 삶, 남편의 승진, 아이의 미래, 그리고 지금 사는곳보다, 좀더 넒은 집으로의 이사등 그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주 평범하면서, 행복할것 같은 미래를 생각할때쯤 나도모르게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한모금의 커피한잔.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맛이 느껴질때쯤엔, 지금 현실들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아침마다 불만인 남편, 큰키에 잘생긴 외모, 거기다 누구나 부러워 하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의 모습은 어느누가 보더라도, 1등급 남편이었다. 그런 나를 모두 부러워했고, 그런 남편을 둔 나는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말투는차갑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한 남자, 그런 남편을 생각할때쯤이면, 다시 얼굴은 미소가 가득번진다. 그리고 아들 '지민이' 남편과 나사이에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볼때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그날 있었던 사소한 내용까지 모두 이야기 해주며 나를기쁘게 해주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는 즐거움, 아이가 겪은 일은 마치 내가 겪은듯 즐거웠다.


 

이렇게 아주 평범한 생각들이 끝날때쯤이면, 해가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컵을 들어 부엌으로 향해,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저녁준비를 서두른다.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는 생활...


 

#2



 

"이이가 오늘따라 늦네."


이상한일이다.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남편이 연락도 없이 늦는다. 불안한 생각에 핸드폰을 수없이 눌러 보았지만, 신호음만 갈뿐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이 넘는 시간이 될때까지 남편은집으로 오지 않았고,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에 남편과 같이 근무하는 동료에게 까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동료 역시나 회사에서 헤어지고 어디갔는지 행방을 모른다는 말뿐. 불안하다. 이렇게 불안한적이 없었는데..


 

혹!

 

무슨일이 생긴건 아닐까, 상상해서는 안되는 상상들까지 머리속에 그려진다. 경찰에신고라도 해야 하는것은 아닐까...


 

-딩동! 딩동!-


 

막 수화기를 들어 경찰에 신고하려는 찰라, 울리는 현관벨소리, 급히 현관으로 나와 문을 열었다.


 

"여보!"


 

"어 여보 미안..오늘 술좀 마셨어!"


 

현관문앞에 있는 남자는 남편이었다. 무사히 들어왔다는 안도의 한숨을내쉬기는 했지만, 이상한 일이다. 평소에는 술을 입에다도 대지 않았던 남편이 왠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을까..


 

"여보, 피곤할텐데 들어가서 주무세요"


 

"어..그래"


 

말이 끝나자 남편은 피곤했는지 침실로 곧장 몸을 향했다. 그런 그의 뒤를 조용히 따랐고, 침실로 간남편은 옷도 벗지 않은체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회사일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저렇게 까지 피곤했을까..저런 남편의 모습이 결혼한후에 처음있는 일이지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을 위해 일만 하는 남편의 모습이..


 

"진숙아!"


 

남편의 안쓰러운 모습을 바라 보고 부엌에 물을 마시려 갈려는 찰라,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생전 처음 듣는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후로 무슨말을 했지만, 잠결에 하는 말이라 더이상 알아듣는건 힘들었다.


 

"진숙아..사랑해..."


 

"헛"


 

다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무슨일이지, 평생 나만을 사랑하겠다던 남편이 지금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거기다 사랑한다는 소리까지,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수 있을까..지금껏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 버린건가, 이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아주 큰문제...지금 이상황속에서 나는 어찌할지 몰라,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 했다.


 

#3



 

"또 늦군..."


 

일주일째 남편은 늦게 온다. 그것도 매일같이 술에 잔뜩 취해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게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잠자리에 들때쯤이면 반복적으로 어떤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진숙아~ 진숙아!"


 

처음에는 낯선 여자의 이름이라 생각했지만,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름이 분명했다. 조용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생각난 여자, 나를 만나기 전에 남편과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가 생각 났다.


 

그때 그녀의 이름이 진숙였을 것이다. 아니 진숙이가 분명했다. 설마, 그때 그 여자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나 몰래 만나고 있었던 말인가.


 

다음날 남편이 회사를 출근하고 나서 난 남편의 서재방을 뒤졋다.. 무엇을 발견 하고자 뒤지는건 아니었지만, 지금 무언가 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것 같기에 난 무작정, 미친듯이 그의 서재를 뒤졌다.


 

"진우 오빠에게?"


 

그의 서재를 뒤지고 있을때 발견한 편지 봉투, 그리고 봉투 앞에 써있는 제목, '진우오빠에게'  그 아래 써있는 이름,

 

'양진숙' 제길, 분명 남편의 옛 애인이 분명했다. 난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나를 버리려 하다니.


 

"나쁜 자식.."


 

눈줄기 밑으로 촉촉한 물체가 흐른다. 눈물,눈물은 그렇게 쉴새 없이 흐른다. 난 소매를 이용해서 눈물을 닦아 냈다.


 

"헛! 피!"


 

그냥 눈물인줄만 알았던, 붉은색의 핏덩어리들이었다. 젠장할 얼마나 억울했으면, 이런 피눈물이 나오는걸까..더이상 이것저것 생각할수가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기억도 나지않은체, 남편의 불신만 더욱 커갈뿐이었다.


 

-딩동 딩동-


 

#4


 

그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후, 내눈에 보여지는 아주 충격적인 장면  말고는 말이다.


 

"헛..여....여..보"


 

그렇게 보여지는 장면은, 가슴에서 부터 분수처럼 흐르는 붉은색피를 두손으로 감싸쥐며, 죽어가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급히 손을 쳐다봤다. 부엌칼, 손에는 부엌칼이 들려져 있었고, 칼날에는 아직 식지 않은 뜨거운 붉은피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내손으로, 난 남편을 죽였다. 나도 모르게,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남편을 죽였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배신감때문에, 그렇게 난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한명을 죽여버렸다.


 

"젠장!"


 

미칠것만 갔았지만 이대로 여기 가만이 있을수는 없었다. 곧 아이가 도착한다. 아이가 이모습을 보면 절대로 안된다. 그렇기에  서둘러서 남편의 시신을 숨겼다. 검은색의 여행가방에 남편을 집어 넣고 현관에 뿌려진 붉은 핏물들을 걸레로 말끔하게 닦아 내었다. 그렇게 어느정도 집안이 깨끗해졌을때쯤...


 

-딩동딩동-


 

벨소리가 들려온다. 길게 심호흡을 몇번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한진우씨 댁이죠?"


 

"네 그런데요?"


 

"아...이곳에 꽃배달이 와서요..자 여기 있습니다."


 

어떨결에 받아든 꽃바구니.. 그리고 그속에 끼어져 있는 핑크빛의 메모지가 보인다. 급히 메모지를 꺼내 읽어 보았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


 

여보 집안일 하느라 힘들지, 내가 당신마음을 모르는거 아니야, 그래도 처녀시절땐 남자들에게 꽤나 인기 좋았던 당신,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당신, 그런 당신의 모습은 이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이젠 아줌마란 소리가 더욱 잘 어울리게 되는 당신의 모습을 볼때면, 너무나 미안해, 행여 내가 저렇게 만든게 아닐까라는 생각들 때문에..


나 말이야, 요즘들어서 그런 생각들이 더 많이 들어,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만 반복하는 당신을 생각할때쯤이면, 너무나 미안해, 하지만 당신도 내 성격 잘알지, 내성적이라 남들앞에 잘 서지 못하는 성격, 그래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쑥스러워서 못하는 성격, 그래서 술을 먹고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하는데,그게 잘 안되네 내가 술이 약해서 그런지, 매일 잠이 들어버려..


정말 미안해, 이젠 술 마시는일 없을꺼야, 이렇게 편지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서, 그동안 당신에게 신경 못써준점 정말 미안해.


그래도 내마음알지, 진숙아, 내가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거 말이야. 정말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앞으로도 우리 정말 잘해보자.


 

-사랑하는 내 아내 '양진숙'에게...-



 

".........."


 

눈물이 흐른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은체 그저 눈물이 흐른다. 절대 잊어 버리지 않을거라는 기억이라는 단어의 배신...어떻게 나는 내이름 양진숙을 잊어 버릴수 있었을까...


 

"젠장!"


 

<끝>


 

아내라는이름,어머니라는 새로운 이름덕분에, 절대 잊어 버릴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본인의 이름이라는 기억 그건 당신의 어머니이자 아내가 아닐까..

Comments

G 페이 2023.11.09 16:51
결혼을 하면 보통 여자들은 이름을 잃어버리죠. 누구누구 엄마가 돼버리기 때문에.
물론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결혼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내의 이름을 부르죠.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정말 이 글처럼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사는 여자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