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견관 끌어안기

상관견관 끌어안기

G 폴리비우스 1 1,993 2023.05.31 18:02

이 글이 얼마만큼 상관견관을 끌어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상관견관을 좀 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살아봤으니까.

제목은 거창하게 달아놓았지만 지금 어떤 글이 나오든지 내가 나 자신을 끌어 안는 만큼의 가슴팍 이상이 되지는 못하리라.
그 점이 걱정스럽고 한편으로 부끄러울 것 같다.

인간의 삶의 방식에 있어서 한 가지 특출난 점을 꼽으라면 그건 가치 평가를 한다는 점에 있다.
가치 평가란 해당 물상에 대한 높고 낮음의 점수를 매기는 일인데, 인간은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들만의 가치를 만들고 그에 따라 생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로마에 황제정이 생기기 이전 그리스를 거치면서 별의 별 정치 체제를 시험하게 되는데, 부자한테 정권을 줘보기도 하고 민주주의도 해보고, 귀족한테 맡겨보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잘난 사람 하나한테 권력을 맡기는 게 가장 낫더라 하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가치를 평가하고,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그들 종의 삶에 도움이 된다 하면 유지시키며 보존하되 다시 새롭게 개량한다.

 

그리하여 인간 삶의 변동은 항상 가치의 전복과 함께 도래하기도 한다.

신이 세계를 통치하던 세계는 인간 중심주의라는 가치로 인해 인간이 주관하는 세계로 바뀌었다.
지금은 다시 새로운 가치가 도래할 예정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가치.

우리는 가치를 떠나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러한 것이 인간 삶의 특수성이기 때문이다.
가치는 한편으로 짜증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무수한 가능성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인간 삶을 제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치는 허약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치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인양 착각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현대 물질 문명이라는 가치가 인간 삶의 전부이고 인간이 도달해야 할 삶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착각하기 쉽다.
신의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서 죽어서 천국 가는 게 삶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처럼.

그러나 어느 시대를 살던 그 시대의 체제는 인간들이 발견한 수 많은 가치들의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일 뿐이다.

가치들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라고 얘기 하기는 어렵다.

 

만약 현재의 삶에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는다면 느닷없이 사람들이 인도로 떠나든가, 요즘 들어 부쩍 귀농이라는 트랜드가 유행하는 현상들을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은 가치들의 대립과 착종, 혼동과 모순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지만, 진리는 쉽게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진리는 우연한 실수 속에 나타난 그저 귀여운 말장난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 같은 회의에 시달리며 그래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들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가치 평가를 하며 자신들의 가치를 다듬어 낼 뿐이다.

승리한 가치는 삶의 틀이 되며, 인간은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의구심도 생긴다.

 

도무지 삶이란 게 틀이 없으면 혼란스러울 뿐이라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래서 틀이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타협할 수 있겠는데, 이 틀에 맞춰사는 것이 과연 한치의 틀림없는 진리인양 온당한 일일까?

결혼 제도만 하더라도 어디는 일부다처제, 어디는 일처다부제, 어디는 일부일처제 각각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그곳에서도 저마다의 행복은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상관견관하는 사람들.
그들은 삶의 양식이라는 그 틀이라는 것이 애초에 허구에 가까운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일찍 깨달은 사람들이다.

만약 이 가운데, 사람이 왜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래서 틀에 박힌 사람을 보면 그렇게도 답답하다.
그들에겐 이 같이 답답한 사람보다 더 비웃음을 사는 사람이 없다.

분명 이 세계 현재의 룰이 전부가 될 수 없을 텐데 저 사람은 마치 전부인양 믿고 살아간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또 한편, 상관견관적인 마인드. 이들을 두고 주류의 사람들은 어딜 가든 사고치는 녀석이라 고개를 절레 흔든다.
하지만 이러한 마인드를 결코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모든 인류의 진보. 새로운 삶은 가치의 전복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주류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들은 흔히 소피스트라 하면 이상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궤변론자로 알고 있다.

 

진리를 자임하는 보수적인 철학자 플라톤의 책에서 소피스트는 부정적으로 그려졌고, 지금도 사람들은 소피스트에 대한 인식을 플라톤으로부터 영향받고 있으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회의하고 사물들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소피스트 운동이 주류의 가치에 새로운 시각을 보태준 사람들로 기억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화두가 되고 있는 창의력, 남다른 생각은 소피스트적인 시각을 갖지 않으면 일궈낼 수 없는 능력들이다.
그러나 상관견관이 가진 회의주의의 남다른 점은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회의라기보다는 회의 자체를 위한 회의에 그친다는 점에 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누가 뭐라 그러면 그것도 빈틈이 보이고, 각각에 대해 분석하여 해체하는 일에는 능하나 그래서 대안은? 이라는 질문에는 별다른 해답을 내어놓지 못한다.

가치를 공격하기는 쉬워도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기존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자신만의 가치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한 시대에 몇 명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한창 포스트 모던적인 풍토가 유행했었다.
포스트 모던적인 풍토란 별 게 아니고 그냥 '그건 니 생각이고'와 같은 풍토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니 생각이고' 어떤 학자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도 당신 생각이지'. 그건 니 생각이고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다시 공격이 가해져온다.

 

그것도 니 생각이지. 뭐, 이러고 다녔던 것 같다.

지금도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그건 니 생각이지 뭐'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모두를 공격하던 그 친구들은 지금 체제 순응적인 삶을 산다.
세상을 푸념하며 가끔 술을 기울일 따름이다.

재밌는 건 따로 있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혼란스런 눈빛을 기억한다.
세상을 향하던 회의의 창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세상의 가치를 부인하던 그들은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서도 부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이들에게 누군가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인 거 같다"고 조언을 해주면 이들은 말한다.

"그건 니 생각이고."

이들은 규정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삶이란 건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규정할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그들은 매우 공격적인 성향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스스로가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닐까 끊임없이 회의하며 녹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생각해보자.

가치를 부인하고자 하는 생각이 정치적으로 나타나면 무정부주의자가 된다.

 

체제를 없애자는 얘긴데, 그러나 무정부주의라는 건 또다른 체제가 아닌가?

정말 체제가 없으려면 이름 자체를 붙일 수가 없지 않은가.

가치를 부인하고자 하는 이들은 사실 그토록 가치를 부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다른 가치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바로, 가치 부인이라는 가치.

도를 깨치지 않은 이상, 평범한 인간은 가치 밖에서 세상을 파악할 수가 없다.
아무리 가치를 부인하더라도 그들에게는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특정한 이름의 가치가 붙여진다. 상관견관.

가치평가는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근본을 부정하려 해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종에 한정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듯이.

언어를 가진 인간은 이러한 존재방식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정말 부정하고 싶다면 머리 깎고 산에 올라가서 산신령이 되는 방법은 아직 열려 있다.

대학시절, 그토록 혼란스럽고 의심 투성이었으며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만 스스로의 강력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나갔다.

 

그들은 이제 사회 곳곳으로 스며 들어 자신의 공격성향을 사소한 시비 다툼으로 소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룰, 이 세상은 우리에게 전부가 아냐. 우리에겐 또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어. 훨씬 더 잘 될 수 있었을 가능성.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가슴 설레하며.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보이지 않았고, 현재 가장 분명한 건 돈인 것 같다.

모든 혼란 속에서도 돈 만은 유독 확실하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그토록 열심인 걸까?

회의는 힘이 세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회의인지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을 어떠한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할지도 혼란스럽게 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세상과 타인의 가치에 대해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가치 없음을 회의하고 슬퍼하고 있을 상관견관.  서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즐거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상처 받는 상관견관.

그러나 나는 그들을 긍정한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저마다 슬픈 팔자를 살아가는 슬프고도 사랑스런 우리들이니까.

Comments

가치에 대해 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평가를 하는것은 무의미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어디서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버리는게 가치인데 그자체로 우월한 더 나은 가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 주변의 상관견관 두명의 삶의 보면, 호시절에도 늘 크고작게 삶이 투쟁,
정말 팔자가 맞는것같아요. 왜 그렇게 시비걸어오는 사람은 그 친구에게만 나타나는지
나는 삼년에 한번 겪을까말까하는 경험을 매달 겪게되는 그친구,, 또 그럴때마다 일일이
맞대응하며 싸우는친구,
안좋은 대운 만난 또다른 상관견관 친구는 더 심해서 아예 누구든 걸리기만하면
한판 붙으려합니다.(상관견관말고도 편관에 일주양인등등 다른조건도 있지만)
남의 인생에 대해서 너는 행복하지 못하다 제가 말할수는 없는건데
그냥 보기에 삶이 너무 힘들고 피곤해보입니다.
안됐기도 합니다. 반대로 그런분들은 저를 보고 너는 인생이 그렇게 술에 물탄듯
밋밋하고 심심하게 어떻게 사냐 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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