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마네킹

(공포) 마네킹

G 기획 0 1,968 2023.03.20 16:54

마네킹



 일이 있어 지방으로 내려가기 위해 터미널에 왔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한참이나 줄을 서서 표를 끊었는데 또 한참 기다려야 했다. 터미널에 있는 식당에서 오뎅과 김밥으로 배를 채운 뒤에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버스에 올라탔다.

 이렇게 기다린 것도 억울한데 나는 맨 뒷자리였다. 맨 뒷자리에서는 제대로 잘 수 없었고 혹, 급브레이크라도 잡으면 투포환이 하늘을 날 듯 튕겨 나갈 것이다. 그래도 정 가운데가 아닌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출발시간 5분을 남겨두고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로 들어왔다.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사람, 엄마 손을 잡은 아이,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자 민망한 듯 뻘쭘 하게 일어서는 아저씨. 버스에는 사람이 꽉꽉 차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자리가 남게 되면 앞으로 가려고 했더니 그러기는 틀렸다. 터미널 직원이 버스표를 회수하고 기사가 버스에 시동을 걸자 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헐레벌떡 올라탔다. 원피스에 그려진 커다란 꽃에서는 좋은 향이 날 것 같이 환했다. 여자는 표를 직원에게 내고 또각또각 걸어왔다.

 여자는 남은 빈자리인 내 옆자리에 앉았다. 원피스 끝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와 가죽소리가 합쳐서 북소리를 냈다. 여자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 들어있을 것 같은 쇼핑백을 무릎 위에 놓고 안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지 10분이 넘도록 쇼핑백을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고속버스에서는 졸리지 않아도 눈을 감아야 어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자를 조금 뒤로 제치고 눈을 감았다. 목적지까지는 3시간정도 가야 한다. 3시간동안 멀뚱멀뚱 눈을 뜬 채로 간다는 건 마치 친한 동성친구와 눈을 마주보고 오, 나의 친구여,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눈을 감는다고, 더구나 양 옆에 사람이 있으니 잠이 쉽게 올 리가 없다. 창가 쪽에 앉은 아저씨는 벌써 잠에 든 것 같았다. 더운 공기가 콧구멍으로 무참히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직도 여자는 쇼핑백을 들고 있을까?

 약간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눈을 뜨고 옆으로 곁눈질 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까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서 몸을 뒤척이다가 여자를 스쳐  봤는데 아직도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왼쪽 검지는 입술을 살짝 갖다 대고 말이다.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보면 또 그 자세였고 톨게이트를 통과하고도 여자는 그 자세였다. 꼭 마네킹 같았다. 자세를 절대로 바꾸지 않고 항상 같은 곳을 응시하는 마네킹. 그러고 보니 여자의 표정도 묘했다. 입술은 분홍색이고 눈은 컸으나 한 곳만 향했다. 코는 오뚝했고, 얼굴은 갸름했다. 이렇게 보니 정말 마네킹 같았다.

 그런데 나는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또각또각 걸어오는 것을. 환상적인 몽상은 깨버리고 본업에 돌아가자. 그게 내 할 일이니까.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서고 문이 열렸다. 기사는 내리는 사람마다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내가 자리에 일어날 때조차 여자는 쇼핑백을 안고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검지는 입술에서 뗀 상태였다. 여자는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있었던 나 혼자만의 상상에서 막 빠져나왔을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손님!”

 “네? 왜 그러세요?”

 “버스에 물건을 놓고 가셨네요.”

 “그럴 리가…….”

 나는 내 물건을 몇 번이나 확인을 해봤지만 안 가져온 물건은 없었다.

 “저는 이것이 전부인데요. 사람 착각하신 거 아니세요?”

 “무슨 소리예요. 지금 버스에 있는 마네킹 가져가세요. 손님께서 가져오셨잖아요.”

 기사는 어이없는 말을 했다. 몇 분의 실랑이 끝에 나는 기사를 따라 버스에 다시 갔다. 기사가 뒷자리를 보라는 말에 그곳을 바라보니 쇼핑백을 안고 있는 괴상한 여자밖에 없었다.

 “손님이 버스에 타기 전에 저 마네킹을 가져오셔서 재질이 약하다고 꼭 손님께서 같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사실 저렇게 큰 마네킹은 버스 안에 못 싣게 되어있는데 마침 한자리도 비었고 해서 허락해드렸더니 그걸 잊다니요.”

 기사는 속으로 젊은 것이 벌써 치매 걸렸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치매는커녕 건망증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마네킹이라고요?”

 “네, 그렇다니까요.”

 “저 사람이요?”

 “무슨 소리입니까. 저 마네킹을 손님께서 가져오셨고, 저렇게 옆자리에 놓으셨잖아요. 얼른 가져가세요! 얼른요!”

  기사는 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친절히 인사를 할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게요. 저건 내께 아니라니까요.”

 “이 양반이 돌았나. 저기 앞에 있는 CCTV에 찍힌 거 봐야 인정하려나. 정말 그래야겠어요? 그럼 따라와요. 내 직접 보여 줄 테니.”

 기사는 터미널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는 작은 모니터와 테잎을 연결 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기사는 버스에서 가져 온 테잎을 연결시키자 모니터에는 흑백으로 버스 내부가 나왔다.

 몇 명의 사람들이 버스에 탔고 얼마 안 되어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마네킹을 들고 있었다. 확실히 내 키와 비슷한 여자 마네킹을 들고 낑낑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고 마네킹을 끌고 터미널을 나와야 했다. 그런데 내가 마네킹을 가지러 버스로 갔을 때는 여자가 들고 있는 쇼핑백은 없었다. 시간도 많지 않은데 커다란 쓰레기를 덤으로 얻었으니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거친 보도위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짜증나게 들렸다.  현재로써는 어디 적당한 곳에 버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전화가 울린다.

 “예, 사장님. 지금 도착했어요.”

 그러자 경적소리가 들려왔고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사장은 보조석 창문을 내리고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핸드폰을 닫고 멍하니 서서 차가 내 쪽으로 오는 걸 바라봤다. 차는 곧 말의 울음소리 같은 브레이크소리를 내며 내 앞에 섰다.

 “오 대리 오랜만이야.”

 사장은 넉살 좋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건 뭐야?”

 안 묻는 게 이상하지. 사장은 마네킹을 보며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요 앞에서 주웠어요.”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러자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쭉 빠진 여자 마네킹에 노란색 원피스가 입혀져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아내도 있잖아.”

 “아니, 아니에요. 인터넷에서 보니까 이거 중고 마네킹을 비싸게 팔더라고요. 이정도면 10만원은 받을 수 있어요.”

 “참… 월급도 적지도 않은 사람이….”

 뒷좌석에 마네킹을 놓고 보조석에 앉았다. 카오디오에서는 트로트가 우렁차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장은 흥겹게 그걸 따라 불렀다.

 “최 사장 알지? 그 있잖아, 왜. 작년인가, 재작년에 상갓집에서 만났던. 최 사장 직원들이랑 술 마시기로 했어.”

 사장이 이렇게 말하는 도중에도 나는 마네킹이 마음에 걸렸다. 기회를 봐서 버려야 하는데 사장에게 거짓말을 해버렸으니 대놓고 버릴 수도 없었다. 날은 곧 어두워졌고 사장은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에 차를 세웠다. 푸른색, 붉은색 네온들이 빨리 즐기러 오라고 소리쳤다. 순례자들이 천국에 가기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인 쾌락의 도시, 허화시(虛華市) 같았다. 현대인의 천국은 바로 허화시임을 예수는 모르고 있었다.

 “저기 좋은 데가 있어. 물도 좋고 말이야.”

 사장은 이렇게 말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차를 네온이 가득한 거리로 천천히 몰았다. 술집 여자들이 지나가는 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벌써 코가 삐뚤어진 남자의 팔짱을 붙잡고 뭐라고 얘기한다. 사장은 골목골목 차를 몰더니 이내 세웠다.

 “여기야.”

 날은 빨리 어두워졌다. 그래봤자 10분 동안 이곳에서 차를 몰았을 뿐인데 하늘은 새까맸다. 별도, 달도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묻혀버린 것 같았다.

 “들어가자고.”

 사장은 쉼터라는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은 매우 좁아서 성인 두 명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몸집이 큰 사람이라면 한 명이 후진을 해서 비켜줘야 할 것이다.

 술집은 조용했다. 멋대가리 없는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파란색 조명이 술집 안을 가득 메웠다. 사람도 우리뿐인 것 같았다. 우리가 카운터를 지나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웨이터가 반달형 미소를 띠고 우리를 맞이했다. 웨이터는 10인용 방에 우리를 안내했고, 사장은 술을 시켰다. 웨이터가 문을 닫고 나가자 밖에서 흐르던 음악이 싹둑 절단이라도 된 듯 딱 끊겼다.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은 편이 더 나았다.

 “여기 장난이 아니야.”

 웨이터가 양주 두 병을 가져왔다. 양주는 별로 먹어보지도,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충 눈치 보면서 조금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술이 벨기에산인데 맛이 좋더라고. 그래서 여기에 오면 이것은 꼭 마시지. 자네도 한 번 마셔봐.”

 사장은 내 술잔에 술을 따랐다. 몇 번 잔을 기울이자 웨이터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곧바로 남자 넷이 들어왔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요. 금방 왔습니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최 사장에게 악수를 청하고 넉살스럽게 웃었다. 사장은 웨이터에게 여자를 데려오라고 시켰다. 몸에 착 달라붙는 무대의상을 입은 여자 여러 명이 들어왔다.

 웨이터가 술을 가지고 들락날락 할 때마다 음악이 흘러들어왔다. 나는 밖에서 흐르고 있는 음악에 집착이 생기고 약간 중독이 되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스쳐가는 도중 맡는 지하실의 냄새와 같다고나 할까? 계속 맡으면 무감각해져 그 냄새를 알지 못하지만, 스치듯 맡으면 중독되는 지하실 냄새처럼 음악도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같은 음악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하나같이 멋없고 촌스러웠다.

 나는 담배를 피러 술집을 나왔다. 입구에 쭈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는 빠르고 침착하게 내 몸 안으로 들어와서 집요하게 내 폐를 잡고 늘어졌다. 그러다가 힘이 빠진 연기는 녹초가 되어 목구멍을 통해서 빠져 나왔다.

 사장의 차가 눈에 띄었다. 뒷좌석에 있는 마네킹도 보였다. 꼭 사람인양 앉아서 차가 빨리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괘씸했다. 지금 마네킹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뒷문이 열려있었고 그건 내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앉아있는 마네킹을 들고 네온이 비치지 않는 골목으로 향했다.

 “자네 마네킹 들고 어디로 가나?”

 사장은 반쯤 감은 눈으로 술집 입구에 서서 날 쳐다봤다.

 “생각해보니 별 쓸모가 없을 것 같네요. 가격도 얼마 못 받을 것 같아서요. 그냥 저기 골목에 버리려고요.”

 “잘 해.”

 나는 사장이 뭘 잘하라고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네킹을 들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는 골목은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마네킹을 휙 던져놓고 다시 술집으로 돌아갔다.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만취상태가 되었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게 돼버렸다.

 아침을 깨운 건 핸드폰벨소리였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장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속은 괜찮아? 무슨 젊은 사람이 그리도 빨리 취하나. 나도 멀쩡한데.”

 마네킹이었다.

 “해장국이나 한 그릇 먹고 회사에 와. 3시에 회의가 있는 건 알고 있지? 한 달이나 준비한 일이니 잘 해보라고.”

 마네킹이 침대 옆에 곤히 누워있었다. 노란색이었던 원피스는 검게 때가 타 있었다.

 “아, 그리고 그 사랑스런 마네킹은 잘 간직하고 있어? 하하. 내가 한 눈에 알아봤다니까. 그런 취미는 빨리 끝내는 게 좋아. 남자가 이해 못하면 누가 하겠어.”

 잠시 뒤 회사에 가서 사장에게 물어보니 내가 마네킹을 버릴 수 없다고 고성을 치며 가져왔다는 것이다. 사장은 말리려고도 해봤지만, 내가 막무가내로 굴어서 어쩔 수 없이 놔뒀다고 했다. 그러고는 나는 사장의 차를 타고 근처 여관에 가서 잠을 잔 것이다. 필름이 끊인 것일까? 그건 그렇다하자. 그런데 내가 왜? 어이없게 얻은 쓰레기를 왜 내가 다시 가져왔냐 말이다. 나는 내가 미쳤다기보다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마네킹에 홀린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회의를 하는 중에도 온통 내 머릿속은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평소에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데다가 아내와의 달콤한 통화를 한 후로는 집에 돌아 갈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회의는 7시에 한 번 더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서 회사를 돌아오는 길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건 실종자를 찾는 종이였다.



사랑하는 딸을 찾습니다.

2003년 9월 초 서울을 간다던 딸이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보신 분이거나 데리고 계신 분은 꼭 아래 번호로 전화해주십시오.

꼭 사례하겠습니다.

010-xxxx-xxxx




 전봇대에 붙어있는 종이는 거의 떨어져 차가 지나갈 때마다 펄럭였다. 전화번호 아래에는 사진이 있었다. 식물원에서 찍은 듯 전신으로 보이는 실종자 뒤에는 평소에 보지 못하는 식물이 배경 가득 있었다. 초록색 식물과 잘 어울리는 노란색 원피스를 실종자는 입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커다란 꽃. 지금 마네킹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원피스였지만 얼굴이 달랐다. 하지만 그건 마네킹과 비교해서 얼굴이 다른 것이지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와는 어떤지 지금 이 상황에서는 판단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버스에서 만난 여자의 얼굴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가 마네킹이어서 내가 본 여자는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지만 분명 나는 그 여자를 보았다!

 7시에 회의가 끝나고 술을 먹자던 사장의 손을 뿌리치고 곧바로 여관으로 향했다.

 나는 필름이 끊긴 사이에 마네킹을 다시 가져 온 짓 말고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다. 원래 사장이 좋은 호텔로 숙소를 마련해주려고 했지만, 내가 벌컥 여관을 출장기간동안 장기투숙을 해놓아서 구린내 나는 여관방에서 출장 내내 자야했다. 이런 술버릇은 연애를 할 때 종종 아내에게 들었다. 술을 많이 마셨을 때 항상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제 멋대로 한다고. 하지만 다음 날 일어나보면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한 달이 되던, 일 년이 되던 필름이 끊긴 시간에 내가 무슨 짓을 한지 몰랐다.

 내가 여관방을 열자 마네킹이 한눈에 보였다. 침대 옆 전신거울 앞에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침대에 눕힌 그대로 놔두고 회사로 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마네킹은 서 있었다. 머리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버스에서 마네킹을 막 가지고 내렸을 때는 혹시 살아있지 않을까, 하고 두려운 생각도 해봤다.

 “이 방 들어왔어요?”

 청소 하러 들어왔다가 마네킹이 침대에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세워놓았다는 여관주인은 흥분한 내 질문에 약간 당황한 듯 말을 몇 번씩 끊으며 말했다. 나는 인터폰을 내려놓고 긴 숨을 내쉬었다.

  순찰 도는 경찰에게 들켜 버린 나는 마네킹을 도로 가져와야 했다. 내가 마네킹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필연적으로 마네킹은 자꾸만 내게 붙어 있었다.

 지금 와서 느낀 거지만 마네킹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네킹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버스에서 본 여자의 환상이 완전히 깨어지지 않고 머리에 남아 있어서 마네킹이 반 쯤 살아있다고 믿었다. 사람이 되고 싶은 마네킹이 우연찮게 나와 만나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하지만 마네킹은 마네킹일 뿐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버스에서 본 여자는 단지 꿈이고 환상이다. 나는 출장 오기 전에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 할 정도로 바빴다. 그러면 자연스레 피곤해지기 마련이고 집에 들어가서는 씻지도 않고 잠을 잤다. 아내와 밤 자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나는 여자라는 환상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마네킹을 잘 세워놓고 짐을 챙겨서 여관을 나왔다. 그깟 선불로 낸 여관비는 불우이웃 도왔다고 생각하자. 나는 마네킹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택시까지 타서 다른 여관으로 갔다. 마네킹이 마네킹인 이상 이곳까지 나를 쫓아 올 수는 없다.

 마네킹은 확실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며칠 간 뿐이었다. 출장기간이 막바지로 치올랐을 때 마네킹은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보였다. 일은 고달팠고, 일이 끝나면 항상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잠은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산 중턱에 마련 된 정자에 누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날아가는 철새를 보는 꿈을 자주 꾸었다.

 마네킹은 모닝콜이 울릴 무렵 나타났다. 마네킹의 노란 원피스는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머리 부분에는 구멍이 훵하니 뚫려 있었고, 가느다란 팔은 부러져 달랑달랑 거렸다.

 꿈에 놀라 벌떡 일어났을 때, 모닝콜이 시끄럽게 울러댔다. 단지, 마네킹의 모습만 봤을 뿐인데 땀으로 샤워를 한 듯 내 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마네킹을 버리고 이곳으로 온지 이주일이 다 되어간다. 그만큼 마네킹의 대한 기억도 생각 깊숙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나타난 이유가 뭘까. 단지 꿈에서만 나왔을 뿐인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땀을 씻어내기 위해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밖은 영하로 내려 갈 정도로 추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회사에 가기 위해 여관을 나설 때는 만성편두통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조퇴를 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대낮인데도 여관방에는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둠침침했다. 바늘로 관자놀이를 콕콕 찌르듯 아파올 때면 마네킹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약을 먹던, 밥을 먹던, 볼 일을 보던, 잠을 자던 마네킹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마네킹이 본 모습인 괴물로 변해서 나를 잡아먹으러들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네킹은 항상 그대로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오 대리, 머리는 괜찮은 거야? 거… 사람 쉬엄쉬엄 할 것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나도 며칠 쉬게 하고 싶은데 이번 마지막 프로젝트에 자네가 꼭 있어야 하니까 힘들어도 내일 나와 줘. 오늘은 푹 쉬고.”

 사장은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끊었다. 그게 좀 섭섭하기는 했지만 사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내가 출장을 온 목적도 결국 이 마지막 프로젝트 때문이었으니까 사장이 거는 기대도 만만치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잠에서 일찍 깨서 회사에 나갈 준비를 했다. 마네킹은 어김없이 꿈속에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무표정이 아니라 슬피 울고 있었고,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밖으로 나선다. 입김을 내뱉을 때마다 입김은 내 얼굴을 덮쳤다. 귓불이 빨개지도록 날씨는 어제보다 확실히 추웠다. 사람들은 어제 날씨에 속았다는 듯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프로젝트 마무리작업을 했다. 완벽했다. 이젠 내일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성공의 술자리를 가진 뒤 하룻밤 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퇴근시간이 되자 편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약통을 여관방에 놓고 온 것이 후회됐다.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할 수 없이 약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밖은 해가 이미 떨어졌고 밤안개가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편두통의 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재로써는 술을 가장 큰 원인으로 뽑고 있습니다. 그러니 술은 자제를…….”

 약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약국을 나오자 안개는 10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어져 있었다. 순간 마네킹이 스쳐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시선을 한곳으로 집중했다. 그곳에 마네킹이 있었다. 나는 도망가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서 마네킹을 자세히 살폈다. 다리와 몸통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무언가 조여 오는 슬픔. 마네킹은 조용히 울고 있었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흐느끼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내 기억에도 없는 나의 일들.

 나는 실종자를 찾는 종이가 붙어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회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종이는 그대로 붙어있어서 그걸 떼어 근방에 있는 옷가게로 뛰었다.

 “여기에 있는 이 여자가 입고 있는 옷 주세요. 얼른요!”

 유행이 지난 옷이라…. 글쎄요, 저희가게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상품입니다. 이건 여름옷이잖우. 아, 창고에 있을 것 같은데 한번 찾아볼게요.

 문을 닫으려고 셔터를 내리려고 하는 옷가게 주인을 붙잡아 물었다. 다행히 그곳에는 똑같은 원피스가 있어서 그걸 사가지고 서둘러 마네킹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다리를 세우고 몸통을 끼웠다. 스윽 하고 쇠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 쇼핑백에서 노란색에다가 커다란 꽃이 달려 있는 원피스를 꺼냈다. 원피스를 마네킹에 입힌 후, 들어서 벽에 갖다 대어 놓았다.

 저만치 가서 뒤돌아봤을 때, 마네킹은 이미 내가 놓아뒀던 자리에 없었다. 내 반대편 안개 속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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