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G 루이즈 1 2,336 2023.02.25 14:58

머리가 아프다.

"아"  그는 신음 소리를 낸다. 움직이려 했으나 도저히 힘이 나지 않는다. 여기가 어딘지라는 궁금증은 없다. 지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는 것과 온 몸에 힘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 것. 허리가 끊어 질 듯이 아프다는 것과 너무 어둡다는 것.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소리를 지른다.

"이......이...보...." 그는 '이봐요' 라고 말하려 했다. 쉽지가 않다.

혀가 맘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그는 한 숨을 쉰다.

"거어...거어....기.. 누우..." 그는 '거기 누구 없어요' 라고 말하려 했다. 쉽지가 않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입 안에 달려 있는 혀에, 목 안에 붙어 있는 성대에, 배 안에 자리 잡은 허파에 집중한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혀를 시원하게 만졌고, 성대를 간질이고선, 허파로 들어간다.

곧 풍선 바람 빠지듯 공기가 빠져 나가는 걸 느긴다. 허파에서 나간 뜨거운 공기가 성대를 훑고선 혀를 따뜻하게 만지고선, 입 밖으로 나간다.

그는 순간을 포착하고, 타이밍을 기다린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봐요!" 그는 소리친다.

자기 것이 아닌듯한 성대에 잠깐의 무리한 힘을 가해서 그런지 성대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소리를 낸다.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벽에 튕겨 돌아와 신체검사에서 어떤 금속성의 막대기에 작은 고무 망치를 때려 바로 귀 뒤에 갖다 대는 것처럼 바로 자기 귓전에서 울렸다.

잔인할 정도로 어두운 저편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자신의 절박한 소리가 어둠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그런지 꽤나 으스스하게, 스산하게만 들렸다.

그 때 였다.

희미한 발자국 소리를 들었고, 그는 숨 죽인다.

철컥. 철컥.

문 손잡이가 차갑게 돌아가는 소리였다.

그의 뇌리에선 공포 영화의 한 장면. 어느 방에 온 몸에 피를 묻힌 소녀가 겁에 질린 채 닫힌 방 문을 그리고 문 손잡이가 거칠게 돌아가고 있는 걸 지켜 보는 그 장면이 어둠의 저편에서 나는 소리와 겹쳤다.

그는 공포 영화 속의 소녀처럼 침을 삼켰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꿀꺽"

'꺽' 이라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확 열어 쟂혀진 탓에 그의 몸에 경련이 일었다.

심장이 놀라서 터질 듯한 그 때에, 저 편에서 빛의 어둠을 갈기 갈기 찢어 놓으며, 그의 눈에 통증을 몰고 왔다. 아까 그토록 원했던 빛이 그의 두 눈을 아프게 했다.

소금물을 눈에 넣은 것처럼.

"아...이...른..." 그는 '아 이런' 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그는 소리쳤찌만 저편에서 그에 대한 응답으로 딱딱한 구두 굽에 짓눌린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서 토해내는 비명 뿐이었다.

"또각 또각" 대리석은 소리쳤다.

날카로운 구두 굽이었다.

"이....보...아...요" '이봐요' 라고 말하려 했으니 괜찮다. 혀에 점차 힘이 돌고 있다.

처음 강렬했던 빛에 그의 두 눈은 고통 아래 익숙해져 갔다. 실눈을 떠가면서 저편의 존재를 살피려 한다. 하지만.

"딸까딱"

'딸가닥?'

메마르고, 건조한 소리가 났고, 그는 무심코 소릴 머릿 속에 그렸다.

다시 한 번 강한 빛이 그가 방심할 때 두 눈을 때렸다. 아니 그의 온 몸을 강타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소리 질렀다.

대리석 바닥의 애처로운 비명 소리만이 들린다.

"괜찮으신가요?" 남자였다.

그는 얕은 공간을 벌인 채 닫지 못한 얇은 입술 사이로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통해 그 존재에게 자신의 고통을 엿보이게 하려 했다. 자신의 분노를 알아 주기를 원하면서.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영철씨? 김영철씨? 괜찮나요?" 남자가 말했다.

"당신은.....당신은..." '당신은 누구요' 라고 말하려 했지만, 쉽지 않다.

그는 두 팔로 실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강약을 팔의 각도로 조절해 갔다.

빛을 등진 검은 형체를 본다.

"당신...당신은...내가..내가.." '당신은 누구며,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말하려 했다.

검은 형체의, 그를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서서히 걷혀져 가고 있다.

"어때요? 조금 괜찮나요?" 남자가 말했다.

영철은 아무 말도 못했따.

서서히 빛의 안개가 걷혀져 가면서 흰 가운이 보이고, 흐릿하게 검은 넥타이가 보였고, 살색의 흰 얼굴이 보였다. 영철은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를 작정으로 손을 뻗었지만 올라가다 지친 왼 손은 허공을 헤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괜찮군요. 좋아요" 남자가 말했다.

억센 손이 영철의 얼굴을 잡는다. 그는 저항하지 못한다.

얼굴은 손아귀의 힘에 내맡겨 졌다.

신음 소리를 낸다.

얼굴을 고정시킨 손 외에 다른 손의 손가락들이 영철의 한 쪽 눈을 열어 젖혔다.

이 공간을 훤히 비친 하얀 불빛에 고통이 아직 가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딸깍' 소리와 함께 노란 불빛이 눈 안으로 침범했다. 눈이 아팠다.

어둠을 찾아 고개를 아니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프다구요' 영철은 속으로 소리친다.

손아귀의 힘은 풀어졌고, 영철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갔다. 물론 빛도 함께.

"김영철씨 전 김우상이라 합니다. 의사죠" 아까의 억센 손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그의 뇌는 아직 파리한 생명력만 뛰고 있을 뿐 어떤 별다른 정보를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얀 벽돌을 보았따. 돌멩이들이 촘촘히 박힌 대리석 바닥을 보았고,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하얀 침대보로 덮힌 침대를 보았다. 아직도 희미하기만 했다. 그는 형체를 본다.

"내가 왜...왜.." 그는 말했다.

우상은 한 숨을 쉰다.

"글쎄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신은 치료 중이었고, 당신을 치료하던 선생님께서 사정이 생기셔서 당신을 저한테 맡기셨구요. 치료가 끝났어요." 우상이 말했다.

"치료? 무슨." 그는 말하다 멈춘다.

배 안에서 누구가가 들어 안자 뱃가죽을 잡아 당기며, 소리 지른다.

그제서야 잊고 있던 배고픔이란 감각이 살아났다. 배 안에서 창자라는 놈이 칼을 들고 안의 내장을 잘게 잘게 잘라 먹고 있는 것처럼 속에서 내장들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친다.

그는 말하려다 배를 움켜 쥐었다.

"그동안 링겔을 맞았는데 괜찮으신가요? 어지러우시거나 속이 불편 할 텐데."

우상이 말했다.

"대체.. 대체.. 무슨...치료를.. 내가 이런.." 영철이 말했다.

"그건 나중에" 우상이 말했다.

"지금 지.." 영철은 말했다.

순간이었따.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킁킁" 그의 뇌는 정지했다. 그는 냄새를 맡았다. 짧짜름하고도 고소한 냄새.

그의 배가 요란하게 소리친다. 그의 세포 하나 하나가 고함 지르는 소리.

"일단 음식 먹고 하시죠." 우상이 말했다.

우상이 뒤를 돌아 보았고, 영철 역시 그 곳을 보았다.

처음 빛이 쏟아져 나왔던 그 곳에서 연기나는 하얀 그릇이 쟁반에 실려 왔다.

물론 누군가가 그것을 들고 왔지만 그의 두 눈에 들어온 연기 나는 하얀 그릇을 깨지 못한 뇌가 저절로 떠서 오는 것처럼 해석한다.

떠서 오는 그것 뒤에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보았고, 책상의 안 쪽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들이 보였지만 그런 일상적인 것들을 관찰하진 못한다.

그의 뇌는 에오라지 연기 나는 하얀 그릇에 대한 정보를 온 몸 구석 구석에 보내기 바쁘다.

그의 입 안 침 샘에서 침이 마구 솓구쳐 올라 왔다. 소나기가 퍼부어 마을에 홍수가 일 듯 그의 입 안은 침으로 가득하다. 콧구멍이 벌렁 거렸다. 발가락 하나 하나에 힘이 들어간다.

'어서 어서 어서' 그는 속으로 소리친다.

그의 두 눈은 다리가 부러져 쓰러진 사슴을 눈 앞에 둔 사자의 눈과 같다.

곧 그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그 하얀 그릇. (지금도 그의 눈에 둥실 둥실 떠다니는 연기나는 그것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공중에 떠 있던 쟁반 위에 있는 그릇과 숟가락을 가져 왔다. 조금도 지체 할 수 없다.

첫 술을 떴고, 눈에 담긴 동공이 커져 간다. 기절 할 것만 같다. 어떤 즐거운 고통이 그의 몸을 엄습한다. 온 몸을 후벼 파는 듯 했다. 뱃 속에선 환호성을 지른다.

걸쭉한 하얀 물기에 빠져 있는 하얀 덩어리들을 보았고, 다시 한 번 침을 꿀꺽 삼켰다.

뒤늦게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그것이 죽이라는 걸 알았다.

이 곳에 온 처음 장면이 순가락 위에 떠있는 것들과 겹쳐 보인다.

죽을 한 입, 한 입 먹을 때 마다 그의 뇌는, 기억을, 그가 원하는 기억을 재생시킨다.

그가 치료를 받으러 온 걸 기억한다.

'그래 기억 난다.'

 먹기 바빴기에 그것에 골몰히 생각할 여유가 없다. 피 대신 그의 혈관에서 죽이 흘러 가는 듯한 걸쭉한 느낌이 좋다. 힘이 났다. 얼굴이 보인다.

"당신..당..당신은 아닌데." 그는 말했다. 그냥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다.

우상은 지친 웃음을 지었다.

"그 선생님은 바쁜 일 때문에 제가 대신 하고 있어요." 우상이 말했다.

'무얼?' 영철은 생각했다.

대체 무슨 바쁜 일 때문이지, 왜 병원에 온거지, 왜 온거지, 왜 누워있지. 왜?왜?

갑자기 속이 뒤틀렸다.

어서 밖에 나가 싱싱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

 

 

쌀쌀한 날씨다. 깜깜했다. 죽을 서너개 더 먹었어도 배가 고프다.

아직도 어지럽다.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괜찮아 지겠지' 그는 기지개를 킨다.

 

 

"치료. 흠.. 저도 몰라요. 어떻게 하는지는. 다만 선생님이 개발한 약과 함께 최면 치료가 들어가죠. 지금껏 20명 정도가 이 실험에 참가했고, 모두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졌죠. 각기 인터넷 중독이나 TV 중독에서 시작해 섹스 중독, 조금 난해한 담배나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그런 목적에서 만들어진 거에요.

그러니까 중독의 대부분은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우리 선생님은 거기서 이 치료를 생각해 내신거죠. 기억이 안나는 거죠. 자신이 그것을 즐겼다는 것을, 했다는 것조차.

이 치료를 받았던 4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그들은 하루 종일 인터넷 게임만 했죠. 그로 인해 다른 생활들을 하지 못해요. 부모님들이 이 치료를 알고, 실험에 참가했죠. 지금은 아주 좋아요. 어제만 해도 한 아이의 부모님이 전화 해서 아이의 학교 생활이 좋아 졌다고, 고마워 하는 전화가 왔죠. 또 다른 한 명은 인터넷 게임을 3시간만 안해도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그런 아이였는데, 지금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한다죠.

지금 우리 나라 아니 외국에까지 이 실험에 주목하고 있어요. 성공만 한다면..

담배를 피는 사람들에겐 담배를 폈던 자신의 과거를, 알코올 중독자는 술에 대한 기억을 지우죠. 아직까지 알코올 중독자의 이 치료는 성공 반, 실패 반이에요.

하지만 선생님은 노력하고 있어요.

담배와 술은 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기억을 하고 있다는게 조금 힘들어요. 기억만 없애면 되는게 아니지요. 그렇지만 이 치료를 받고 안받고 술과 담배를 끊는 것에 차이가 있죠. 치료를 안받은 사람들과 비교 할 때, 담배에 관한 기억을 지운 한자들은 담배를 피지 못해 그렇게 안달해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치료를 안받은 사람들 말이에요.

다만 몸이 반응하는 거죠. 어지럼증이나 불안해 한다건나. 하지만 그건 주위 사람들이 도와 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진 다 성공했어요.

아마 당신도 그 중 하나 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술 아니면 담배. 아니면 술과 담배. 뭐 설마 마약이나 그런 것은......

지금 영철씨 과거에 담배나 술을 마신 기억이 있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

없다면...."

 

 

"이런 아무리 찾아 보아도 당신에 대한 서류들은 찾을 수가 없어요. 어떤 서류도.

아무튼 이 치료는 김병진 선생님께서 하시는 건데..흠.. 혹시 김병진이란 이름도 기억 안나세요? 이상하네. 어떻게 이 치료를 받으신거지. 보호자도 꼭 있어야 하는 건데."

 

"확실한 건 김영철씨께선 이곳에서 당신의 어떤 나쁜 습관을 김병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서 끊기로 하고, 이 치료를 받으신 거죠. 절대 당신에게 해가 되는 어떤 것을 하지 않았어요. 이제 좀 안심이 되나요?"

 

 

젊은 의사의 말들을 기억해내고, 가던 길을 멈추고, 병원을 돌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병원은 컸다. 장기 밀매를 할 만큼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그는 멈추어 서서 크게 기지개를 펴고, 큰 숨을 쉬었다. 그렇게 3분정도 있어보니 머리가 아까보다는 많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는 눈을 떠서 버스 정류장을 보고, 늦은 버스를 기다릴 것 같은 한 남자를 본다.

갑자기 속에서 울렁거린다. 불안하다.

식은 땀이 난다. 손을 쥐락 펴락했다.

'왜 이러지?' 그는 생각한다.

아무 이유 없이 정류장에 서 잇는 그를 관찰한다. 속에서 알 수 없는 뭔가가 속삭인다.

속삭임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아 갑갑하다.

남자는 손으로 무엇을 튕기더니 마침내 오고 있는 버스를 본다.

남자는 버스에 올라타고, 사라졌다.

영철은 남자가 튕기고 간 것을 본다. 그것을 보았다.

우상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담배에 관한 모든 기억을 지우죠.

'담배인가? 내가 치료 받은건' 그는 생각했다. 자기가 담배를 핀 기억이 있는지 책갈피 넘기듯 과거를 살펴 본다. 기억이 없다. 기분이 이상했다. 떨리던, 속에서 속삭이던 소리들이 이내 멈춘다.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이렇게 담배 앞에서 몸이 반응한다면, 앞으로 어떻할 것인가 생각했다.

비틀거리면서 오는 이가 보였다. 뭔가에 땅바닥을 보면서 중얼 거린다.

갑자기 그의 눈자위가 위아래로 벌어졌다. 피부가 바싹 타는듯한 느낌.

'원....해..' 그가 아닌 그가 속으로 말한다. 오른 손에 경련이 인다.

그의 이마에 식은 땀이 난다. '아 맙소사. 왜이래.' 그는 생각했다.

다시 비틀거리며 오는 그를 관찰한다. 그의 눈은.

영철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 그의 다리가 마비됐다.

흥분됐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응어리가 이제 폭발 할 것만 같다.

숨이 거칠어진다. 비틀거리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영철의 앞을 지나간다.

영철은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영철은 마른 침을 삼킨다. 뜨겁다.

'그만해... 그만 하라고' 영철은 속으로 소리친다. 무섭다.

그의 등에 난 땀으로 셔츠와 바지 엉덩이 부분이 젖어 들었다. 축축했다. 몸은 계속 떨렸다.

영철의 손은 그를 더듬고 싶다.

'그만해. 그만' 영철은 미칠 것만 같다. 속삭임은 온갖 곳에서 들린다.

"수근 수근" "수근 수근"

지나가는 차에서,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바닥에서 그의 발을 타고, 그의 귀를 어지럽힌다. 영철이 미쳐버리기 전. 다행히 비틀거리던 그는 어둠 저편으로 사라진다.

영철은 곧 진정했다. 마비되었던 그의 후각에 냄새가 난다.

-술에 관한 모든 기억을 지우죠.

그는 다시 과거에 자신이 술을 마셨던 기억을 찾아 보려 한다.

그런 기억은 없다.

영철의 머리 속에선 우상이 말한 치료에 대한 설명이 계속 맴돈다.

'담배와 술, 술과 담배' 영철은 생각했다. 그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원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밤 바람은 그를 훑고, 귀에 대고 속삭인다.

(벗어나지 못해.절대로)

그는 병원 가는 길로 다시 돌아선다. 그리고 본다.

술에 절은 4명의 남자가 한 명씩 약속이나 하듯 담배를 물고, 이 쪽으로 다가온다.

심장이 천천히 방망이질 친다. 그는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 뛴다. 무작정.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선, 두 손으로 귀를 막는다.

벌써부터 손이 떨린다. 손등과 손목 그리고 팔이 떨린다.

 

 

[3일 후]

 

이 곳이 자신의 집이란 걸 안다.

다만 이 곳이 자신과 누구와의 집이란 걸 모를 뿐이다. 그 누군가는 그와 함께 과거에 있었다.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아니 있다. 굉장히 화난 건가. 아님 흥분한건가. 아무튼 과거의 내가 못질을 했던 저 닫힌 방문 뒤에 그의 소름을 돋게 하는 이질적인 그것이.

 

"여보세요? 누구 있나요?" 방문을 두드렸다. 아무도 없다. 아깐 있었다. 아니 지금 있다. 소리가 난다. 방문 밑의 틈에서 방 불 빛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다. 그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머리를 숙이려 한다. 저벅. 저벅. 느껴진다. 바닥을 밟아 대는 진동이 그의 발바닥에 전해지고, 바닥을 밟는 소리가 그의 귀에 전해진다. 누군가 있다. 누군가 있다. 그는 천천히 내려간다. 누군가 있다. 한 뼘 더 내려가면. 누군가 있다. 저편의 발이라도. 누군가. 그 때.

"아아아아악!" 여자의 비명 소리가 났다.

 

입에 물린 반 쯤 타고 있는 라이트 던힐 담배와 축 늘어진 오른 팔에 매달린 손의 검지와 중지에 잡힌 필터까지 다 타들어간 또 다른 던힐 담배 한 개비. 슬슬 살이 타고 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영철에겐 아픔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뇌는 녹아 흐느적 거리는 듯 했다. 그가 보고 있는 장면 장면이 곧 녹아 버리면서,

눈에 띈 모든 사물들이 흔들 흔들 거린다.

거실에 놓인 쇼파에서 주위를 둘러 본다.

자신의 발 밑에, 쇼파에 기대고 있는 자기 몸 위에 수많은 담배 갑들이 있다.

그는 가만히 본다. 그것들은 마치 어떤 하얀 실험 생쥐들, 빨간 상처를 드러낸 생쥐들로 보인다.

"꺄아아악" 닫힌 방문에서 소리가 난다.

무시한다.

그의 호흡은 연기를 내뱉는지 마시는지 구분도 못한 채.

뇌가 어떤 정보를 판별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는 연기를 마신다. 그리고 삼킨다.

그래야만 견딜 수 있다. 저 소리들에게서.

시간이 흐를수록 간절히 원한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아 미친다.

그가 알고 있다면, 당장 가서 그것을 받아 들이겠다. 그것이 안되니까 자신도 정말 미쳐 버리겠다. 계속해서 그가 모르는 어떤 것을, 그를 이루고 있는 뼈마디, 혈관 그리고 거기서 흐르는 혈액들이 그에게 전혀 다른 언어로 얘기한다. 듣고 싶은데, 알아 듣질 못한다. 그가 치료를 해서 지우길 원했던 그 어떤 중독이 자신을 없애려 했던 영철의 치료 수단에 화가 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그는 알았다. 그를 불안케 했던 그 무엇,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을 숨도 못쉬게 했던 그것은 담배가 아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아줌마, 아까 담배 주문했던 00빌라 302혼데요. 맥주 좀 갖다 주세요. 캔으로 아무거나요. 문 앞에 놔두시고, 아까처럼 돈은 신문지 밑에요. 잔돈은 가지시고, 벨만 누르심 되요." 그는 말하고, 닫힌 방문을 본다.

배달부가 굳이 저 소리들을 필욘 없다.

 

벨소리가 난다. 기다린다. 그리고 문을 연다.

버드 와이저의 캔 맥주 한 박스가 놓여 있다. 쇼파로 가져간다.

캔 맥주를 하나 꺼낸다.

마침 갈증이 나 목을 축이길 원했다. 맥주 캔을 땄다. 뭔가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소리나는 캔을 자기 귀에 갖다 대고는 웃는다. 맥주 냄새가 스멀 스멀 피어 오른다. '그래 이거야' 영철은 생각했다.

그의 몸, 몸에서 적셔 달라고 애원한다. 그는 마신다.

그의 몸에서 떠들썩하던 소리들이 멈춘다.

영철은 자기 방인, 그리고 또 누구와의 방이었을 그 곳의 닫힌 방문을 바라본다.

안에 누군가 있다. 아니 무엇이 있다. 확실히. 이건 정신 착란 증세가 아니다. 그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결코 허상이 아니다. 있다.

고양이와 개, 그리고..

"이....리...와.. 자기." 성숙한 여자의 목소리, 그것이었고,

"놀아..놀아줘" 미성숙한 여자의 목소리, 그것이었다.

방문 안쪽에서 문을 긁어 대는, 아마 그것은 고양이나 개의 발톱일 것이다.

노인의 가래 끓는 소리, 숨을 못쉬어 헐떡이는 소리.

'맙소사, 언제부터 소리가 들린거지. 아냐. 아깐 안들렸는데... 분명'

그는 마신다. 한 캔을 더 땄다. 그리고 한 캔, 또 한 캔을 더 땄다.

배가 불렀다. "이제 더이상.. 못 먹.." 트름이 난다.

"먹어! 이썅! 먹으라고!"

방 문이 소릴 토해낸다.

그는 입 밖으로 토사물을 쏟아 낸다.

그는 이 역류 현상에 반가워 하며, 목에 가득 힘을 준다. 자신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욕심 많은 괴물을 토해내고 싶다. 그리고 실컷 밟아 터뜨리고 싶다.

목이 상한다 해도, 그 괴물이 커서 잇몸에 박혀 있는 이빨들이 다 부서진다 해도, 그는 있는 힘껏 헛구역질을 한다.

눈물이 핑 돌 뿐, 괴물을 토해내지 못한다. 다시 소리들이 들렸다. 끔찍한 소리들이.

배꼽 부분에서 자신의 뇌를 자꾸 잡아 당기고 있따. 그는 웃는다. 술도 아니다.

보이는 주위의 잡동사니들이며, 의자, 테이블이 온갖 곳을 날라 다니며 속삭인다.

(벗어나지 못해)

머리에 커다란 돌뎅이가 구르듯 너무 아프다. 그는 누웠다.

그대로 잠이 든다.

 

 

방 한 구석에서.

그는 무릎을 가슴 팍에 붙이고선, 두 귀를 막는다. 두 눈은 사팡 팔방을 돌아 다닌다.

닫힌 방문이 심하게 덜그덕 거린다. "덜그덕 덜그덕"

그것들이 못질 된 그 방문을 힘으로 열려 한다.

"쾅"

"하느님...도와..주세..요.. 하..느님.. 죄..송해요."

방 한 구석, 달빛에 의지 한 채 그는 두 귀를 막는다.

소리들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 곧 있음 문에 박혀 있는 못들이 튀어 나올 것이다.

그것들은 힘이 쌔다.

곧 그것들이, 개와 고양이와 함께 나올 것이다.

고양이의 끔찍한 소리가 들린다. 야옹도 아니다. 그건 아 정말 소름 돋는다.

아파서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보다 더욱 무서운 소리다.

그는 몸을 흔들거리며, 두 귀를 막으며, 두 눈은 어디에 붙이지도 못한 채.

닫힌 방 문 안쪽에서 긁는 소리가 난다.

"고양이가..개새끼가..긁..고 있어요." 그는 작게 중얼거린다.

문 손잡이가 돌아간다. "그것들이 문 손잡이를 돌리고 있어요"

-열..어....줘.

-답답..해..헉.헉

"난 알..아요.. 이...밤이..흐..르고 흐르면" 그는 노래를 부른다.

-헉헉..아하...하아.아~

그것들이 섹스를 하고 있다. 늙은 남자의 목에서 나오는 그것과 성숙한 여자의 목에서 나오는 그것이 교태를 부린다. 이윽고 미성숙한 여자의 그것과 겹친다.

그는 더 크게 부른다.

"누군..가가..나를..떠.."

철컥 철컥

"저 문이 열리면... 열리면.."

-열어줘..

"전"

-열어줘.

"죽어요."

 

그는 떨리는 손으로 겨우내 입에 물린 담배를 3분 여간에 걸쳐 라이타로 불을 붙힌다.

빨리지 않다. 하지만 빤다. 담배를 거꾸로 물었는데도 불구하고, 연기는 그의 몸으로 들어온다. 연기를 삼킨다. 뱉지 않는다.

"쿨럭 쿨럭"

-열어줘..아~

-야옹.

"덜컹 덜컹" 문이 움직였고, 문 손잡이가 돌아가고, 방 문 틈으로 방 불빛에 어른 거리는 그림자를 본다.

그는 보지 않으려 눈을 감는다. 그 때였다.

문이 열렸다. 맙소사. 눈을 감으니까 열린 것이다. 등이 아팠따. 엉덩이가 아팠다. 계속 부딪혀 댄다. 등은 벽을 치고, 엉덩이는 바닥을 친다. 안치고 싶다. 하지만 떨리는 몸은 이미 자기게 아니다. 노래를 부른다. 아까 멈추었던 부분에서.

고약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찌른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고기 썩은 냄새, 썩은 계란을 먹고 난 입 냄새. 고양이, 개 냄새.

그리고 '피 냄새'

그는 소리를 질렀다. 곁에 있는 휴지를 집어 뜯는다. 휴지를 돌돌 말아 코에 아프도록 쑤셔 넣는다. 피가 날 정도로. 아프다.

'눈을 뜨지마. 그럼 당하는 거야'

손바닥에 밀착된 귀에선 그래도 소리들은 비집고, 들어온다. 그는 더욱 힘을 준다.

그 때 였다. 전해졌다. 차가운 것이 자신의 목줄기를 쓰다듬는다. 자신의 이마를 자신의 볼을...

"사랑...을 한...단 말..을 못했어" 그는 노래를 부른다.

발목에선 어떤 부드러운 하지만 딱딱한 것이 전해진다. 고양이 아님 개.

"어쨋거나 지금은..너무 늦어 버렸어"

그는 열받았다.

"씹할 개 씹할 놈아. 개 좆또"

그는 꼬리만 벗겨진 맥주 캔을 본다. 사방에서 그를 비웃는다.

이제 맥주까지 그를 무시한다. 마지막 남은 그것에 갈증을 느껴 마시려 했는데.

손아귀에 힘을 주어 터뜨리려 한다. 쉽지가 않다. 찌그러지지도 않는다.

그는 손에 들린 맥주 캔을 보면서 욕한다. 던질까 했다. 목이 말랐다.

그리고 그는 닫힌 방문을 보았다. 그들이 화낼 것이다.

주방으로 간다. 그는 가다가 보지 못한 탁자에 정강이가 까인다. 탁자가 웃어댄다.

이제 그것들이 자고 있어 조용하니 했는데, 사방에서 자신을 천추로 보고 비웃는다.

왜 아닌가. 자신은 바지에 오줌을 쌌는데..

하지만 난동을 피울 수도 없다. 그것들을 깨우면, 안된다.

"씨팔 너만은 내가 꼭.. 따야겠다."

그는 주방으로 갔다.

 

 

이 감정이 좋다.

익숙한 느낌이다. 이제야 뭔가 아귀가 맞아 돌아가는 느낌이다.

어둠 속에서 눈을 더듬으며, 뭔지 모르지만 찾는다. 꼭 거기에 있다.

그는 닫힌 방문을 본다. 아직까지 그것들은 자고 있다. 그들이 깨기 전에 이 놈은 혼내야 했다. 날 무시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아직까지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란 걸 이 버드 와이저 맥주 캔에게 보여줘야 한다.

식탁에선 눈이 더듬지 못하자, 손으로 더듬어 간다.

여러 식기들이 그의 손에 쓸려 떨어진다. 어떤 것이 그의 발등을 때린다. 아프다.

"제기랄"

그는 등을 구부려 발등을 만진다.

그 때 창에서 들어온 달빛을 머금은 어떤 밝은 것을 본다.

이건 계시였다. 또 하나의 낮익은, 꼭 거기에 있어야 했던, 그의 눈에 띄어야 했던.

그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그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굳었다. 전율이 일었다.

아까의 그 소리에 그것들이 깨어났다. 하지만 무섭지가 않았다. 저것만 있으면.

저것만 있으면. 그 쪽에 다가가 그것을 집는다.

찌릿했다.

닫힌 방문에서 겁에 질린 소리가 난다. 사방에서 그를 비웃던 소리가 멈춘다.

느낄 수 있다. 그를  무서워 하고 있다.

헌데 이 놈의 맥주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 본 때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개 시부럴. 씨팔. 개 똥파리 새끼"

그는 칼을 들었다.

맥주를 찔렀다. 칼로 째자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와 함께 어떤 잦은 마찰로 인한 어떤 진동이 전해진다. 흐른다. 흐른다.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맥주이지만, 그것의 피가 흐른다.

그는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는 황홀했다.

그것들이 겁에 질린 소리를 낸다. 무서워 한다.

그는 미친듯이 찔렀다. 입가에 침이 새는 줄도 모르고...

순간 머리 속이 하애졌다. 고통이다. 그는 본다.

맥주 캔을 잡고 있던 그 손이, 째고 있던 맥주 캔에서 칼이 비껴 나가 그의 손바닥을 뚫고 손등으로 나왔다.

아팠다. 끔찍하게. 뜨거운 피가 맥주 캔의 차가운 피로 적셔졌던 손을 적신다.

바닥에 떨어진다.

곧 그에게 경쾌한 리듬으로 소리를 낸다.

"뚝뚝뚝"

그는 웃는다.

"좋다...너...무나...좋..아...이제야..이제야...알겠어."

닫힌 방문에서 그것들이 운다.

 

그는 다른 배달을 위해 전화를 한다.

"예, 여기 00빌라 302혼데요. 술과 담배요. 돈이요? 아니요." 그는 말했다.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던 자기 심장을 달래고선,

"직접 드릴게요."

그는 전화를 끊고, 닫힌 방에 있는 그것들에게로 갔다.

 

 

 

김병진 의사는 일주일간 잠을 못잤다. 피곤했다. 중요하지 않다.

'성공했을까?' 아니다. 성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자신은 유명해져야 한다.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 그래 다른 이유가.

자신은... 아는 남자에게도 성공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 성공해야만 한다. 그를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그래. 내가..'

의사는 그 때를 기억한다.

 

아는 남자가 왔다.

반가웠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는 남자는 초조해 했다. 불안해 했고, 뭔가에 쫒기고 잇따.

살도 많이 빠졌고, 얼굴은 창백했다.

그동안 긴 시간도 아니다. 그를 보지 못한 기간은 한달 남짓.

그 때는 이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상하다.

"끊...지.를 못..하겠.....어.요. 무서...워요.. 도와...주세요.." 아는 남자가 말했다.

의사는 가만히 있는다. 커다란 바위로 머릴 얻어 맞은 느낌이다.

그 다음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살인을...피..를 ... 보고..싶어요.."

의사의 시선은 그대로 떨어져, 그가 오기 전 보고 있었던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신문이 보였다.

-아직 부족합니다.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그걸 막게 하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것이 제 목표입니다.

 

"도와주세요..너무나..좋아요.. 멈출 수가 없어요..절..절..

  그 때 였어요. 아 지금도 전해져요. 개의 살아 있는 헐떡거리는 그 심장 박동이 칼을 통

  해 전해져요. 칼로 살을 베는 그 소리가 들려요. 지금도. 아시겠어요..칼에서. 칼에서

  그런데 그런데 너무나 좋아요..맙소사 멈출 수가 없는 걸요. 그러다 고양이..개..그러다

  식상해 졌어요. 그런데. 빌어먹을 그 미친 할아범이 봤어요..그래서.. 그래서..아.오~

  살을 찢어대는 그...질긴 가죽을.. 아 이런.. 아. 그런데. 이상하죠. 정말 이상해요. 왜

  이렇게 좋은거죠. 좋아요~ 아 제기랄 그 표정이었어요. 지금 그 표정....그 표정처럼

  아내는 그 표정을 지었어..요.. 하지만 좋았어..요..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가 소리를

  소리를...오 끔찍해요..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소리.. 멈추라고..했는데..

  아 난 이렇게 애원..하는데.. 그래서 저는... 저를 사랑하는..제가 사랑하는 아내를..

  저를 화나게 한 아내..흑흑. 아 칼을 꽂고 뺄 때 내는 오. 뼈를 긁어 대는.. 떨림이.

  전해져요..소리가 나요..드르럭.드르럭. 살을 찢는 소리, 찢어지는 소리..찌익 찌익.

  제 손을 타고 뜨거운 피가 흘러 내려요.. 저를 적셔요.. 이런 썅. 이 개 년이 제 신발을

  피로..더럽혀요. 나를 화나게 한 하지만 사랑했는데..아 맙소사. 절 부..르고 있어요..

  무서웠을 거에요...젠장 무섭죠...아빠! 아빠! 아 지금도 들려요..지금도..아 왜 이렇게

  즐거운 거죠. 너무나..즐거워요..드르럭.드르럭..찌익..찌익..히히히히 그리고 다짐했

  어요. 사랑하는 이들을 그들을 죽이는게...아.아.할거에요.. 사랑을 많이 할거.에요.

  그리고 그들을 찾..아내서..아.. 아직 그녀의 두..두 눈이 떨고 있..어요..아 저를..사랑

  한 . 아 빌어먹을..신이시여..제가 지금...무슨.. 소릴 하는 거죠.. 사랑하는..이를

  죽이고..싶어요. 살을 발라내고, 발라내어, 찢고, 그 눈을.. 자세히. 떨리는 검은..

  눈동자..아 듣...고 싶어요.. 제 이름을..그 입에서..아 전.. 몰랐어요..그건..마치

  빨대를 꽂은 느낌이죠..거기서 흘러 나와요..저를 사랑하는 그 진액이, 사랑의 진액"

 

 

어두운 주차장을 걷는다.

몸이 굳었다. 바람의 끝자락에 담배 연기 냄새가 묻었다.

그 흔한 담배 냄새인데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두 주먹을 꽉 쥔다. 주위를 둘러 본다.

"덤벼....덤비라구." 그는 허공에 소리친다.

어릴 때, 집에 혼자 남아 부모님들 일 나가신 밤 중엔 허공에 있을 법한 아니 그 때는 있다고 믿었던 귀신에 대고, 귀신아 니가 있는 거 다 안다. 니가 놀래키려 해도 나는 안놀란다.

와라. 잡히면 내 너를 잡아 혼내 주겠다. 내겐 니가 알지 못한 힘이 있다. 난 힘이 세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무서웠다. 바람에 이는 커튼의 움직임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때처럼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른이다.

그는 걷는다.

한 발, 한 발. "쩌억" "쩌억" 소리를 낸다.

그는 다가간다. 벽에 붙은 전구의 노란 불빛이 차 앞 유리면에 비쳐 자신의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준다.

-살 가죽을 찢는 소리가 아직도 아찔해요. 짜릿해요.

-사랑을 많이 할거에요.. 그들을.. 찾아내서..

그의 입은 덜덜 떨고 있따.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차키가 없다.

그는 다시 돌아 가야 했다. 한 발 한 발 허공에 들어 올리고, 떨어 뜨린다.

바람이 불어 온다. 지하 주차장 입구로 들어 오는 바람이다. 그는 그 바람을 반기며, 크게 숨을 쉰다. 긴장을 풀어야 한다. 차가운 바람을 집어 넣는다.

숨을 마시고, 내뱉는다. 부족하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또다시 한 번. 그리고.

피 냄새. 바람의 갈고리에 찍혀 피의 냄새 덩어리가 끌려 온 그 순간. 그가 간신히 모아둔

이성이 타이어에 바람 빠지듯 새어 나간다.

"후아아아아~" 그것의 소리.

두 팔이 그의 양 겨드랑이 밑에서 불쑥 들어온다. 그의 두피에서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뽑힌 느낌. 그의 뒷덜미에서 뜨거운 입김과 숨결, 그리고 축축한 걸레 같은 것이 그의 목덜미를, 그의 귓볼을 적신다. 그는 격렬하게 떤다.

"헉헉...헉..이 순..간..너무 너..무나..좋아..요..너무나..이..제.."

순간이 너무 길다. 영원이 너무 짧다. 짧은 순간 만큼 긴 영원은 없다. 긴 영원 만큼 짧은 순간은 없다. 나지막하게 내뱉는 숨결에, 그것의 숨결에 그의 머리엔 대지진이 난다.

김병진의 숨은 죽었다. 호흡은 멈추었다.

영철이 말했다. 칼이 그의 볼가에서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쓰윽 싸악"

"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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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2023.02.26 0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