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사마귀

G 브라이언 1 2,297 2023.02.25 14:56

요 아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넣어두는 오래된 냉동고를 오만원 주고 사왔다.

 

오늘 아침 슈퍼앞을 지나올 때 였다.

 

너무 오래되어서 새 것으로 교체하려는데 아이스크림회사에서 공짜로 가져다 주니

 

고물상에 넘길거라고 주인 아주머니 말씀하셨다.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외관상이나 뭐 그동한 슈퍼를 오가면서 보아 온 결과에 의하면

 

아직까지는 쓸만 할 것 같아서 그냥 오만원에 파시라고 하니 얼씨구나 하면서

 

낑낑대며 배달까지 해 주셨다.

 

우리집 냉장고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일반냉장고는 이미 정원이 다 찼다.

 

업친데 덮친격 이라고, 김치냉장고 속에 김치를 넣어두지 못하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주방에 서 있으니 어저께 빼 두었던 김치에서 벌써부터 쉰네가 난다.

 

코를 틀어 막으며 뚜껑을 열어보니 보글보글 개이고 있다.

 

한 숨이 나온다.

 

 

 

앞치마를 둘러쓰고 고무장갑을 낀 채 냉동고의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다.

 

물론 슈퍼 주인 아주머니께서 일차로 성에를 제거하고 대충 닦아놓기는 했지만

 

왠지 꺼림칙 했다.

 

락스를 풀어가며 군더더기 하나없이 말끔히 닦고나니 기분이 다 좋아진다.

 

남편은 결벽증 환자마냥 청결을 강조해 왔다.

 

물론 남편스스로가 그리 깨끗한 사람이었다 라고는 말 하고 싶지가 않다.

 

냉동고를 김치냉장고와 나란히 놓으니, 주방이 좁아보이긴 해도 그런데로 깔끔하다.

 

싱크대서랍을 열어 얼마전 퀼트로 만들어 놓은 김치냉장고 덮개를 끄집어 냈다.

 

하나만 만들려 다가 여비로 하나 더 만들었었는데 김치냉장고와 나란히 맞추어 보니

 

냉동고도 새것같아 보이면서 너무 이쁘다.

 

한시간이 지나서 전기코드를 꽂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따스한 쟈스민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 동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청소가 제대로 되었나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기분좋은 콧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냉동고의 코드를 꽂았다.

 

윙~~!

 

기분좋은 효과음이 귓 속을 파고든다.

 

귀밑머리를 틀어올리고 김치냉장고속 내용물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꺼내어 냉동고로 재빨리 옮겼다.

 

여름이라 음식물은 금방 상하게 된다. 김치와 달라서 상하면 안된다.

 

내용물을 모두 옮겨 놓은 후 쉬어빠진 김치를 아무렇지도않게 김치냉장고 속에 쑤셔넣었다.

 

냉동고에서 찬 공기가 뿜어져 나올 법도 하지만 코드를 꽂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인지

 

이마에서 떨어지는 구슬땀을 식혀주지를 못 한다.

 

 


 
"따르르릉...."

 

때마침  전화가 거칠게 울어댄다.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구서 한 참을 섰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애미냐?"

 

시어머니다.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고는 연신 입술을 씹어댔다.

 

"...네...."

 

대답하기 싫지만 억지로 라도 말 해야만 한다.

 

"유림이 아범 어딨냐?"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독이 가득 올라 있었다.

 

하지만 나도 더 이상 그 독에 주눅들 일은 없으리라!

 

"....우리 이혼했거든요? 그리구 부탁인데요 전화하지 마세요!"찰칵!

 

가슴이 심하게 방망이질 해 대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따르릉..따르르릉.."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두 손으로 수화기를 꾸욱 누르고

 

입술을 잘근씹어대며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세상이 푸르름으로 물든 어느 날, 유림아빠와 나는 소개팅에서 만났다.

 

친구대신이라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기분도 꿀꿀하니 기분 전환겸 나간 자리다.

 

처음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땐 정말이지 친구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작은키에 비쩍 마른몸..얼굴은 뜯어먹다만 단무지같이 생긴것이

 

너무도 황당해 말 문이 막혀버렸다.

 

당시 모 항공사 기장과 대학병원 원장아들..둘 사이를 방황하던터라 그냥 코웃음만 나왔다.

 

우리나라 유명한 S그룹의 연구원이라는 말 만 아니었어도 그날 친구는 모지게도 맞았을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친구를 통해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더니 ,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전화해주며

 

나의 기분을 살피어주고  가끔은 코미디로  이따금씩 가수도 되어주고 심지어 마술까지

 

선 보여주던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나 만의 사람이라는 강한 확신감을 심어주었다.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항공사 기장도 병원 원장아들내미도 다 필요없어졌으니...

 

그렇게 우린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가진건 아무것도 없는 그!

 

어머니를 무시하며 당당히 바람을 피우시는 아버지에,

 

자식에 대한 비애가 있는 어머니!

 

무식하기 짝이없는 동생! 아버지를 닮아 심히 많은 여자를 울리고 다녔단다.

 

그것도 능력이겠지...

 

주위에선 그리도 말렸건만,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모든것은 묻혀지게 되어있었다.

 

주위에서 그를 욕하면 웃으며 말 했다.

 

그래두 직장은 좋아..라구,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S그룹 연구원이기에...

 

결혼해서 45평 아파트를 살 때에도 친정에서 돈을 해 줬다.

 

사위가 걸어다니는 것이 딱하여 고급승용차도 사 주었다.

 

필요에 의해 용돈도 친정에서 타쓰고, 모든 것은 친정에서 대 주었다.

 

시어머니 잘난 사위 얻었으니 당연하다며 말씀하셨다.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그래도 무언가가 부족하신지 다른집 며느리는 이러쿵,저러쿵....

 

결혼하기전 나도 잘 나가는 웹 디자이너였었다.

 

가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기본욕망에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유명한 광고 디자이너 며느리 뒀다며 좋아하시던 시어머니 직장을 그만 둔다는 소리에

 

펄쩍 뛰시며 난리 법석도 아니었다.

 

우리아들 힘들게 벌어온 돈 너 혼자 펑펑쓰려고 그러냐시며 얼마나 구박인지 모른다.

 

어느날 주위를 돌아봤을땐 난 이미 시어머니의 씹다뱉은 껌이 되어 있었다.

 

 

 

 

 

가끔씩 우리집에 자러 오시는 날에는 꼭 중간에 끼워서 주무신다.

 

방이 없는것도 아닌데...

 

울 아들 불쌍하다며 손수 밥도 떠 먹여주시고, 심지어는 목욕까지 시켜 주시려한다.

 

더 웃긴건 유림아빠...당연히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런건 참을수가 있다.

 

부부가 무엇인가 서로 화합하여 정답게 살 맞대고 살아가는것이 부부아닌가!

 

우리의 부부관계는 한달에 한 번도 채 안된다.

 

유림이 낳은것도 신기할 정도이다.

 

그것도 울며 매달려야만이 비굴하게 웃으며 안아준다.

 

신혼 초에는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이겠지 하며 오히려 걱정해주고 미안함까지 있었다.

 

나는 그래도 남편을 알 만큼 안다고 스스로 믿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의 후배 결혼식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와이프인 내가 곁에 서 있는데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후배를 껴 안으며 반갑다고 인사해댄다.

 

가슴속 밑바닥에서 뭉클하니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심장에 못이 박힌듯 죄여오고 , 숨을 쉴 수 없었다.

 

온 몸에 열병을 앓은 사람처럼 화끈거리며 질퍽한 땀방울이 방울방울 쏫아나왔다.

 

그가 들어오지 않는 수 많은 밤들!

 

홀로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울고 있을 때, 그만을 위하여 손바닥으로 비벼가면서

 

힘들게  빨아준 새하얀 와이셔츠에 붉은 립스틱과 함께 역한 향수내음을 묻어왔다.

 

사랑을 갈망하는 타는 목마름에도 그의 태도는 차가웠다.

 

그는 더 이상 예전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으나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겠지!

 

 

 

 

시어머니, 당신 아들이 못내 불쌍하다며 이혼을 강요하셨다.

 

집에서 빈둥대며 애기하고만 노는 저런 마누라얻어 니 인생 되는게 없다며 다짜고짜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불쌍한 아들은 나에게 이혼을 요구해 왔다.

 

이혼이란 절차는 참으로 단조로왔다.

 

그냥 법원가서 도장 한번이면 끝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를 사랑해 왔던 몇 되지 않은 시간들이 차가운 도장 하나로 종지부를 찍을 줄이야!

 

 

 

 

 

유림이 보고싶다며 유림아빠가 전화가 왔었다.

 

"집으로 오세요, 열쇠있잖아요!"

 

햇빛 따스한 그날 아침...

 

그는 친정에서사준 고급 승용차를 몰고 요즘유행하는 꽃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서 나의 공간으로 찾아왔다.

 

예전엔 우리의 공간이었었지!

 

오랜만에 너를 안아보고싶다는 그의 뜻하지 않은 말에 눈물을 적시며 기쁜맘으로  안기어 주었다.

 

사랑이 끝난 후 그가 피곤하다며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

 

쉬고 싶다고 했다. 그래, 쉴 수 있게 해 줘야지..!

 

나는 조용히 서랍을 열어 가위를 찾았다.

 

집안 소품 꾸미는것을 좋아하는 날 위해 그가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사주었던 것이다.

 

그의 감은 눈을 확인 한 후, 과감히도 가위를 높이 치켜들고서 사정없이 내리쳤다.

 

 부욱~~~그의 뱃가죽에서 재미있는 소리가 들렸다.

 

"컥!"

 

그의 입속에서 흘러나오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흥겨웁다.

 

방금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옥색의 침대커버에 따뜻하고 깨끗한 붉은 액체가 부서진다.

 

부욱~~! 북~! 푹!

 

"유...유림엄...."

 

그가 괴로워 한다. 나의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해 주듯,

 

처절하게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있는 나의 마음은 이미 아무감정도 남아있지가 않다.

 

푸~욱! 푹!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곰돌이 장난감의 뱃가죽을 열어 그 속에 들어있는 솜을 확인하듯

 

기쁜맘으로 눈동자를 빛내면서 입술엔 천진한 미소를 띄웠다.

 

몇 번을 찔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여기 저기 뿌려진 붉은 혈흔들은 철쭉꽃잎 물이든 그것마냥 아름다웠다.

 

아, 배만 찌른다는 것이 가슴과 목 그리고 옆구리도 강타했나 보다.

 

너덜너덜 찢겨져 나온 그의 살가죽을 만져보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그의 가죽은 질겼다.

 

포를 잘 뜬후 , 깨끗하게 말려서 퀼트할때 사용해야 겠다.

 

주방에서 칼을 가지고와 가죽포를 뜨고 가위로 오려내었다.

 

언젠가 시어머니의 성화로 개 고기를 다듬은 적이 있다.

 

구역질을 해 대면서...

 

그런데 왜 그에게서 개 냄새가 나는 것일까?

 

나는 그를 개고기 다듬듯 잘 쪼개어 다듬은 후 욕실로 가져가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는 일회용 팩에 하나하나 잘 넣었다.

 

뼈는 살을 발라 칼등 으로 잘게 뽀개어 검은봉투 겹겹이 싸서 담았다.

 

김치냉장고가 용량이 커서 다행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여름이라서 김치가 금방 쉬어버린다는 것이다.

 

마침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넣어두는 냉동고를 바꾼다던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다녀왔습니다"

 

유림이 유치원에서 돌아왔나보다.

 

"으음...맛있는 냄새..."

 

유림이 코를 벌렁거리며 이쁘게 웃었다

 

"사골국이야.. .. 생강을 많이 넣었더니 쬐금 매울수도 있어.


그래두 한 방울도 남기면 안돼!알았지?"

 

"응~"

 

유림이 욕실에 들어가 손을 닦고 나와서 식탁에 앉았다.

 

"엄마, 오늘은 만두없어? 어제 그 만두 맛있었는데..."

 

나는 말 없이 사골을 한 그릇 떠서 유림앞에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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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2023.02.26 0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