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되는 남자

뭐든지 되는 남자

G 크리스탄 1 2,296 2023.02.25 14:54

뭐든지 되고 싶어하는 남자가 있었다. 세간의 이목을 통한 그의 평가는 '조금 이상한 남자'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틀린 사실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금 이상한 정도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는 것을.


 

"나, 엄마가 되고 싶어."


 

이것이 5년전 그가 내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평가를 조금 수정했다. '조금 이상한 남자'에서 '많이 이상한 여자'로. 그리고나서 나는 그녀가 내게 하는 말들만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사실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혹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그다지 많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시절에는 부잣집 도련님답게 화려한 소공자 스타일의 정장을 입고 초등학교를 다녔다거나, 중학교 시절에는 선배의 낡은 교복을 물려받아 입고 다니면서 새벽마다 신문지를 돌렸다거나,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몰래 노트북을 밀반입해서 몰래 온라인 주식거래를 하고 있었다거나-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그의 옷차림은 점차 화려해져갔다-하는 정도였다. 대학교 시절의 일은 잘 모르고 있지만, 아마 학생 CEO정도는 되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와 난 어린 시절을 거의 같은 학교에서 보냈었지만, 겨우 고만고만한 국내대학에 만족했던 나와 달리 그는 해외의 유명한 명문대학을 선택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우리는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고, 덕분에-그에겐 조금 미안한 생각이지만-나는 조금 정상적인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라는 생소한 것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랬던 나도, 그가 5년전의 그 말을 그대로 지켜 국내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내 편협한 가치관에 따르자면, 남성의 심볼이란 것은 그야말로 남성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것을 그가-어엿한 남자인-스스로 떼어내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나의 오산-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이었고, 그가 귀국하는 날 나는 공항톨게이트에서 굉장한 미녀와 마주하게 되었다.


 

"오랜만이야. 조금 갑작스럽겠지만......나, 엄마가 되고 싶어."


 

이것이 그가 -아니, 그녀가- 내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이 말이 프로포즈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그녀는 내 회답-전혀 깨닫지도 못한-을 끈기있게 기다려주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참을성있는 모습이 내게 약간의 플러스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사실 그녀-그-는 굉장히 능력있는 사람이었으며 또한 확실히 재미있는 친구였다. 아마 평생 같이 산다고 해도 질리지 않을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결혼식은 신속하고 확실하고 또 화려하게 치러졌다. 그와 함께 그녀와 나는 부부가 되었으며, 나는 그 첫날밤에 그녀가 정말로 완전한 여자의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불리는 트랜스젠더라고 불리는 성전환자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임신이 가능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것만을 위해서 새로운 의학기법을 개발했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신혼은 달콤했다. 아내는 아름다웠으며, 재산-거의 그녀의 재산이었지만-은 충분했다. 커다란 연회실이 딸린 저택에서, 메이드들의 시중을 받으며 시가 수억짜리 연회복을 걸치고 명사들과 우아한 사교를 하곤 했다. 나는 저택을 방문한 영국 대사에게 '그녀'의 남편으로써 소개되었으며, 대사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게 존경어린 눈빛을 보내주었다.


 

그녀의 첫 소원이 성취된 것은 우리가 결혼하고 정확하게 딱 10개월 뒤였다. 그녀는 언제나 빠르고 신속했다. 산부인과를 찾지 않고 집에서 자연분만을 해 건강한 딸아이를 출산한 그녀는, 엄마가 된 기쁨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그녀의 소원은 성취된 것처럼 보였다.


 

"나, 이번에는 아빠가 되고 싶어."


 

하지만 이것이 그녀의 두번째 소원이었다. 순간, 나는 예전 그녀가 아직 그였을 당시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릴 때, 소년가장이란 것이 되어보고 싶어진 적이 있었어.'


 

그는 뭐든지 되고 싶은 사람이었고, 실제로 뭐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수단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TV에서 봤던 일가족 참살사건을 떠올렸다. 비록 익명처리되어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막내아들을 제외한 모두가 처참하게 참살되었다는 내용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듬해의 부모참관 수업 때 그가 부모님없이 홀로, 헤진 교복을 입고 수업을 받았다는 사실도.


 

내가 결심하는 순간, 그녀의 소원은 다시 신속하게 성취되었다. 그녀는 사실 낭비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그 대상은 돈보다 시간 쪽이 더 우선시되었다. 다음날 바로 미국에서 개인 제트기를 타고 수술팀이 한국땅을 밟았으며-입국절차를 제대로 밟았는가 하는 문제는 나로선 잘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여독을 채 풀기도 전에 나와 그녀는 나란히 수술대에 누웠다. 마스크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마취가스가 흘러들어와 나는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랫배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고개를 들자 의자에 앉아 내 손을 잡고 있는 수술복의 남자가 보였다. 그가 바로 예전의 그녀-그-였다. 그의 도움으로 겨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보자, 잘룩한 곡선을 그리는 내 몸이 보였다. 약간 생소한 감각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고 있자, 옆에서 약간의 욕정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그가 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선지 부끄러운 듯한 느낌이 들어 이불로 몸을 숨기자, 그가 귀엽다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귀엽다는 말은 여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찬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쿵쾅거리며, 숨이 가빠진다. 내 턱을, 마치 계란이라도 잡는 양 살며시 손가락으로 감싸쥐고 끌어올려 그가 키스할 때 그런 증상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혀끝이 내 치아의 굴곡을 핥고 내 입천장의 돌기를 마치 질내벽을 긁듯이 문지를 때 나는 아래가 젖어오는 것을 느꼈고, 굵은 혀가 내 혀뿌리 와 아래턱 사이를 파고들듯이 휘감아올 때 나는 음순 사이에서 있을 리 없는 이물감을 느꼈다.


 

나는 그때, 키스만으로도 약간 오르가즘을 느껴버렸다. 하지만 수술 직후라 관계를 갖는 것은 불가능했고, 나는 뇌가 끓어올라 버릴 것 같은 초조감으로 한달간의 금욕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가진 그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어루만져지고, 간지럽혀지고, 관통되고, 더럽혀졌다. 쾌락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으며, 사랑을 느꼈고, 혐오를 느꼈다.


 

우리 사이에 다시 아이가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건강한 사내아이를 안고 그에게 보여주었으며, 그는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날 안았다. 그날,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절정에 달했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여자로서의 삶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권태가 찾아왔고, 그가 이번에는 불륜녀가 되고 싶다고 함과 동시에 우리는 다시 서로의 입장을 되바꾸었다. 다시 내 아내가 된 그녀는, 앞서의 말대로 불륜이라는 관계를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내게 비밀로 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한동안 우리의 관계가 소홀해지면서, 나도 그녀에게 허락을 받은 뒤 불륜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겨우 수개월만에 끝났다. 불륜이란 것은 음식을 예로 들자면, 메인요리의 사이에 배치되어 입맛을 가다듬어주는 디저트 같은 것이었다. 잠깐동안의 즐거움은 있겠지만, 결코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었다. 곧 다시 우리는 예전처럼 결합했고, 그동안 누적된 사랑을 몸 밖으로 털어놓으며 서로를 탐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부부관계는 한동안 잠잠했다. 종종 그의 직업이 변호사, 영화 감독, 민완탐정, 웹 만화가, 바이올린 주자, 심지어는 프리랜서 히트맨 등으로 바뀌는 것을 제외하면. 그러나 그는 어떤 직업을 택하더라도 훌륭한 소질을 드러내었고, 그 결과로 우리의 저택이 현금화되는 일은 없었기에 나는 여전히 메이드들의 시중을 받으며 우아한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감독이란 인간들은 너무 건방져요, 여보."


 

"왜 그래?"


 

"글쎄, 내가 시나리오에 넣어둔 중요한 복선을 무시하고 촬영을 강행하길래, 내가 한마디 했더니 바로 표정이 변하더라구요."


 

"흐음......"


 

"감독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영화를 자기 혀만 갖고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작가가 없으면 단 한편의 영화도 만들 수 없는 주제에 말이죠."


 

바로 얼마 전에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녀는 정말로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대더니 결국은 감독을 전격교체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영화는 그 이듬해 개봉되어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그녀의 시나리오 용지에 금테가 둘러지는 순간이었지만, 그 다음날 바로 그녀는 워드프로세서를 창고에 던져넣고 테니스 라켓을 손에 들었다. 목표는 스트레이트로 윔블던이라고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것은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한번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충동이 갑자기 찾아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욕망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실제로 단 한번도 진지하게 자신의 장래를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그저 그 욕망이 시키는 대로 지금껏 쫓아왔을 뿐이라고도 했다.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지만, 그녀의 말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정말로 나를 계속해서 사랑해왔다. 나는 그것을 믿고 있었기에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을 용서했었다. 어느날 그녀가 조금 미안한 듯한 눈빛을 품고 내게 말을 할 때까지도.


 

"......여보, 방금 뭐라구?"


 

"미안해요. 나, 이번에는 미망인이 되고 싶어졌어......"


 

......아아-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분명,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이후로도 쭉 사랑해줄 것이 틀림없겠지. 그것이 액자에 끼워진 사진 속의 나일지라 해도.

Comments

G 2023.02.27 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