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살과 희생 정신

관살과 희생 정신

G ㅇㅇ 1 2,382 2022.12.21 15:02

관이란 건 항시 폼 잡는 것과 연결된다. 있어 보이는 것. 요즘 유행하는 '간지 난다'는 표현과 연관된다. 관을 쓰는 사람이 길을 걷다 넘어졌다 치자, 보통은 자기 몸을 돌보는 것이 우선일 텐데 이상하게도 관이 중요한 사람들은 주위부터 훑어보게 된다. 이 사람들은 자기 몸 다치는 것보다도 없어보이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관이란 건 남 눈을 의식하는 감각으로 작용하는데, 왜 이 사람이 그리도 남 눈을 의식하는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첫째는 그 스스로가 타인을 이러니저러니 평가하고 레벨을 구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 또한 어느 정도의 레벨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 스며 있는 여러 가치 기준들을 파악하고 그 기준에 부응하는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관이란 건 결국 희생정신과도 연관이 되는데 자기 스스로 힘 있고 쓰임새가 큰 사람이 되어 책임감을 갖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현대의 민주화된 사회에 있어 권력이란 각 개개인의 자발적인 동의 위에 세워진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 하나 하나의 요구들이 중요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옛날에는 관을 쓰는 사람들이 왕이 뭘 원하는지만 잘 알면 되었겠지만, 지금은 일반 시민들의 요구, 이른 바 여론과 같은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남 눈을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면 이러한 여론에 밝아지는 감각 또한 관살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의 관리라고 해서 여론에 어둡게 되리라는 법은 없다. 결국은 인간 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에 그 속의 사람들이 못 버티게 되면 언제나 권력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사람에 관심 없는 팔자쟁이가 별 인기 못 끌듯이 사람에 관심 없는 권력은 반드시 무너진다.

 

보통은 권력욕 하면 남을 좌지우지 하고 괴롭히고 싶어하는 자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건 관이 약한데 재생관 하는 사람이 권력을 소유하게 되면 그렇다. 각종 비리와 연루된 공무원들은 특정한 소명의식도 없으면서 그러나 이상야릇하게도 관을 향한 열정에 휩쓸린 소치일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미 관이 분명하고 관을 버틸 힘도 분명한 사람들은 별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 절실하지 않게 된다.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새삼 밝혀 무엇하랴? 뭐 이런 느낌이다. 이치로 보면 관을 잘 쓰는 사람들이 권력을 접수해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다른 오행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엔 관이 약한데 재생관이 채우게 된다.

 

식재를 잘 쓰는 사람들이 돈 보다는 권력을 찾아 떠난 자리에는 관인을 잘 쓰는 사람들이 돈 한 번 벌어보겠다고 장사를 벌이는 형편이다. 내가 바라보기엔 이런 게 인간 세상인 것 같다.

 

권력과 권위라는 것은 남을 괴롭힌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살리고 희생하기 위해 필요한 속성이다. 이게 제대로 된 신강살강의 관살이다. 1950년대 작가 중에 손창섭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여러 주옥 같은 작품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잉여인간'이라는 작품이 유명하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이 신강살강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정에서의 문제, 친구의 문제, 돈 버는 문제 등 여러 어려운 고난과 역경과 책임과 부담을 홀로 묵묵히 이겨내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이것이야 말로 관살의 정신이라는 것이구나!

 

관살의 희생정신, 희생을 하려면 권위가 필요하다. 따라서 희생과 권위는 같이 간다. 그러나 관살이 틀어져버리면 타인을 향한 희생정신보다는 괜시리 후까시 잡거나 자기 자랑 하거나 하는 쪽으로 가기 쉽다. 우리는 하나의 지혜를 알고 있다. 자신이 잘났다고 드러내기보다는 타인이 인정하고 세워주는 것이 진정한 권위이다. 그런데 이게 안되는 사람들이 주로 폼 잡고 자기 자랑을 하는 쪽으로 간다. 자신을 희생하기보다는 타인을 희생시키길 좋아하고 그래서 남 깎는 게 취미가 된다. 이게 밖으로 가면 남을 깎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자신을 폄하하고 깎아내린다.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하지 않다 보니 내세울 권위가 없는 때문이기도 하다. 희생과 권위가 같이 가야 하듯이, 잘못된 권위를 부리려는 마음은 잘못된 희생을 낳는다. 그것은 누구도 구하지 못하는 희생이다.

 

관살을 잘 쓰면 보통은 잘난 사람이 된다. 인물도 잘 나고, 남 눈에 호감을 사지는 않아도 최소한 싼티는 나보이지 않는 언행을 구사한다. 믿음직해보인다고 할까. 관이 식을 쓰면 재주가 또한 관을 빛내준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도 잘 하고 멋있다. 그러나 식을 쓰지 못해 재밌게 해주지는 못하는사람이라 하더라도 관을 쓰는사람이라면, 최소한 기본적인 구색은 맞추고 판을 깨지는 않는다. 뭐 이런 식이다. 이런 사람들은 굳이 잘 났다고 드러내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이 당신 잘 나셨군요. 얘기를 해준다. 그러나 진짜 잘 나고 멋있고 내세울 것 많은사람들은 남이 얘기하기 전에 미리 자신이 잘 났다고 얘기를 해버린다. 이상한 얘기일지 모르나 자신이 잘났다는 얘기를 듣기 전에 가벼운 농담을 섞어서 타인의 부담을 덜어주는것이다. 이 또한 기본적인 희생정신과 연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을 언제나 존경하게 되어 있다.

 

내 주위엔 지나친 관살로 자신을 희생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선 자신을 마루타로 해서 나를 까주면서 이 시간을 보내주십쇼 하는 마인드가 보인다. 또 어떤 친구는 남 생각하는 마음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폼은 또 엄청나게 잡으려는 마인드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생각을 해본다.

Comments

G 2022.12.22 07:23
과거,저는 관살이 다소 강한 양인일주의 지겹고 싫은 고충고난이(우여곡절.시행착오.도깨비(잡귀) 장난말썽같은,폴터가이스트 현상)있었드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