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지 않는 펜

닳지 않는 펜

G 에르모라오 1 2,323 2022.11.10 02:24

0교시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으로 피곤이 누적이 된 민우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그

래도 특유의 자명소리 때문에 눈을 떴다. 이불 속에 얼굴을 푹 박고 모자란 잠을 애써 없애

려고 했다. 아주 잠깐 잠에 다시 빠졌다가 화장실로 갔다.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갔다. 피곤하다. 젠장, 너무 피곤하다.

교실에 들어가서 책상에 엎드려서 눈을 감았다. 수업이 시작되기전까지 잠시라도 자려는 것

이다. 꿈속으로 향하는 문을 열려고 할 때쯤 종소리가 도끼를 들고 문을 부숴 버렸다. 당장

이라도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교탁에 책을 놓기가 무섭게 수업

을 나간다. 빌어먹을 선생아. 그만 씨부렁대라.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3교시가 끝났을 때 빨간색 펜을 모두 썼다는 것을 알았다. 필기는 해야하기 때문에 교문밖

문구점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가는 도중 아침에 보지 못한 노점상에 펜들을 팔

고 있었다. 질 나쁜 펜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커다란 문구가 민우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닳지 않는 펜]


닳지 않는 펜이라고? 민우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펜은 탁자위에 진열되어있었다. 주

인은 아주 어린 여자아이였다. 왜 여자아이가 이런 곳에 있는지 몰랐다.

니가 이 펜을 파는 거야? 정말 닳지 않니? 얼마니? 아이는 고개만 끄덕이고, 작은 목소리로

가격을 말했다. 약간 비싸다가 생각했지만, 정말 닳지 않는다면 싸다고 생각하고 5천원짜리

를 여자아이에게 줬다. 정말 닳지 않는 펜일까.

0교시 수업만 없다면 야간자율학습은 얼마든지 버틸 것 같았다. 아침에 산 펜은 정말 좋았

다. 색깔도 선명하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잘나온다는 것이다. 요즘 펜들을 사면 잉

크가 찔끔찔끔 나와서 글씨를 써도 뻑뻑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펜이 닳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오늘은 더 힘들었다. 어제도

이 생각을 했지만. 오늘은 정말 내 몸같지가 않았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봐도 뭔가 이상했

다. 그래도 학교에 갔다. 펜은 계속 쓰고 있지만 그 능력을 아직 알지 못했다.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상황은 일주일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얼굴이 무엇에 보고 놀란 듯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런데 민우는 놀랄 일은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펜

전혀 닳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분이 좋다고 하기보다 묘했다. 닳지 않는 펜이라.

왜 이런 것이 아직까지 보급되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펜을 산 이후로는 노점상도

여자아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교복을 챙겨 입

으려고 할 때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쓰러졌다.

민우가 깨어났을 때는 침대 위였다. 얼마 만에 느껴보다는 포근함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길 속으로 빌었다. 엄마가 들어와서 이마를 만졌다. 오늘은

학교를 가지말고 푹 쉬라고 했다. 학교에 전화를 했으니.

엄마는 방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자지 못한 잠을 계속 잤다. 저녁쯤에 일어나서 씻으려고

화장실로 갔다. 세수를 하다가 몸에서 평소에 보지 못한 점을 발견했다. 왼쪽 팔과 오른쪽

팔에 검붉은 점이 10개정도 있었다. 이런 것이 있었나?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씻었다. 저녁반찬은 민우가 좋아하는 닭도리탕이었다. 맛있게 먹고 나

서 컴퓨터게임도 했다. 머릿속에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내일 다시 학교를 가야한다고 생

각하니 다시 더워졌지만, 예상외로 쉽게 잠이 왔다.

평소에 주사 맞는 것을 엄청 싫어하던 민우는 마침 꿈에서 주사 맞는 꿈을 꿨다. 간호사

는 '미저리'에 나오는 애니처럼 뚱보에다가 성질 사나웠다. 안 돼. 제발 그 주사만은 놓지

말아줘. 민우가 간절히 부탁했지만, 뚱보간호사는 기다란 주사바늘을 팔뚝에다가 꽂았다.

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꿈에서 깼다. 그런데 계속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무심코 팔뚝을

보자 여자아이에게 산 닳지 않는 펜이 오른쪽 팔뚝에 꽂혀서 피를 펜에 채워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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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2022.11.10 0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