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쾌락

G 산쵸 1 2,255 2022.10.04 09:27

"심심하다."

그 말을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제찬은 중얼거렸다.
집에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뭉게구름이 가끔 태양을 막아줬다.
시원한 그늘이 생긴 그 자리에는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파릇파릇한 나무잎을 건드렸다.
나무잎은 뱅글뱅글 돌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살뿐히 땅바닥에 닿은것을 본 제찬은 가슴이 막혀왔다.

"재밌는일 없을까? 정말 답답해 죽겠네."

제찬의 핸드폰은 어느 새 시계가 되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수도 없이 울리던 핸드폰이였다.
그래서인지 벨소리도 자주 바뀌었다.

제찬의 많은 친구들은 한달 사이에 모두 떠나버렸다.

"제찬아, "

"나.. 유학간다."

"너 보고 싶어서 어쩌냐. 캐나다에 있는 이모가 거기서 같이 살자고 하신다."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몇년은 제주도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아."

제찬은 모두에게 섭섭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혼자 친구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질 때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뭔가 두드리는 소리였다.
문 두드리는 소리인가 하고 생각은 해봤지만, 문 옆에는 초인종이 있었어서 무시했다.

곧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었다.

습관이 되어버린 핸드폰시계 보는것을 또 해버렸다.

"벌써 이렇게 됬나? 저녁은 라면먹어야겠다."

냄비에 물을 받으려고 수돋물을 틀었다.
물이 냄비안으로 쏟아지는 소리는 명쾌하기까지 했다.
이미 반까지 물이 찼지만, 수돋물꼭지를 돌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소에 싱겁게 먹는 제찬은 라면도 물을 많이 받아 먹었다.
3분의 2쯤 찼을 때 꼭지를 돌렸다.

꽤 무거웠지만, 익숙한 제찬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딱딱소리를 내며 돌렸다.
하지만 불꽃만 일으킬 뿐 불은 붙지 않았다.

"가스가 다 떨어졌나? 짜증나네."

이마에는 주름이 생겨졌다.
제찬은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이마에 주름이 가득해진다.

가스배달시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였다.
제찬은 그냥 굶기로 했다.

다리가 서너개가 붙어있는 마른오징어를 들고 거실로 갔다.
주황빛 쇼파에 앉아, 다리 한짝을 뜯었다.
입안에 넣고 살살돌리다가 씹었다. 특유의 오징어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딱

소리가 나자, 제찬의 눈은 부엌을 향했다.
파란색의 가스불이 돋보였다.

제찬은 하얀 이빨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미 오징어의 맛이 입을 사로 잡았기에 라면은 먹고 싶지 않았다.
무거운 걸음으로 부엌에 갔다.

가스를 끄려고 할 때, 머리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분명 가스를 끄고 나왔기 때문이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돌렸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제찬의 몸 주위에는 공포가 휘감돌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뒤통수가 땡겼다.

돌리고 싶었다. 이 공포를 이겨내고 싶었다.
곧 불은 사그러들었다.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것처럼.

시계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제찬의 귀에는 크게들렸다.
12시를 가리키는 시각.

째깍.째깍.째깍.째깍.

귀속에서 맴돌았다.

-쿵쿵-쿵

익숙한 소리다.
뭔가 두드리는 소리.
귀속에서 맴도는 시계바늘 소리는 사라졌다.
문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찰칵

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집안으로 침범했다. 어색한 온도에 재찬은 몸을 떨었다.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학생. 이것좀 사줘요."

노파는 재찬의 눈과 가까이 붙어있었다.

"할머니. 깜짝 놀랐잖아요. 안 사요."

노파는 입을 움직였지만, 문 닫는 소리가 묻어버렸다.

다시 쇼파에 앉아 오징어 다리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제찬의 마음에는 동정심이 피어났다.

"가난해보이는 할머니였는데, 내가 너무 했네."

다시 현관 밖으로 나갔지만, 노파는 없었다.
들어가려 했지만, 제찬의 눈은 아파트 창문을 보았다.
아파트 창문으로 보이는 오렌지빛 가로등밑에 노파가 앉아 있었다.

"진짜 빨리 가셨네."

1층이기에 아파트 밖으로 나와 가로등으로 달려갔다.

"할머니 아까 정말 죄송했어요. 저 그거 살게요."

"고마워요 학생."

하얀봉지로 꼬깃꼬깃 쌓은 병을 제찬에게 내밀었다.
제찬은 손을 내밀어 잡아 쥐었다.

"얼마예요?"

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는 라이터와 담배뿐이였다.

"이런 지갑을 놓고 왔네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갔다올게요."

제찬이 다시 뛰어가려고 하자, 노파는 손을 내저었다.

"그 라이터 하나면 되요."

제찬은 빨간 1회용 라이터를 쭈굴쭈굴한 노파의 손 위에 얹어줬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거예요 고마워요 학생."

제찬은 300원 밖에 안 하는 1회용 라이터를 준게 너무 미안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걷는 노파를 세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천천히 걸어오면서 이 병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기분을 좋게한다고. 마약같은건가?"

집에 들어와 제찬은 쇼파에 앉아 마저 오징어를 씹었다.
그때 시계는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제찬도 자신이 언제 잤는지 기억을 못 했다.
이미 아침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무가 거의 없고 공기가 탁한 도시의 아파트 단지였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가 지적거렸다.

제찬이 깨어나는 시간은 항상 일정했다.
늦게자도, 일찍자도 항상 6시 53분에 일어났다.
헝크러진 머리를 긁으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7분 후인 7시에 밖으로 나왔다. 젖은 머리에 수건을 얹고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에 올려져 있는 냄비를 들어 물을 버리고 식탁에 올려놓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 몇병이 문에 놓여있었다.
제찬은 우유를 꺼내 유통기간을 보더니, 싱크대에 쏟아 버렸다.

"어제부터 되는게 하나도 없네."

제찬의 이마에는 주름이 생겼다.
피부가 탱탱하고 매끈한 제찬의 얼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름이였다.

며칠동안 고생해서 작성한 레포트를 검은 가방안에 넣었다.
문밖으로 나갈때도 제찬은 가방을 열어 안을 들여다 봤다.

"하하. 잘있어. 이정도면 A학점은 충분히 받을거야."

현관문을 나서고 문 잠그는 소리가 났다.

째깍.째깍.째깍.째깍.

거실에 있는 탁자위에는 노파에게 산 병이 올려져 있었다.
병의 모양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을 싼 종이의 색깔은 붉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째깍.째깍.째깍.째깍.

아무도 없는 집에서는 시계소리만 남아서 집을 지키는 듯 했다.

제찬이 나가자 시계는 비이상적으로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태양도 빨리 노을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걸음도 빨라졌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들이 빠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몰랐다.

열쇠돌리는 소리가 들리자, 시계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제찬의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쇼파에 앉았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술이였지만, 주름은 없어지지 않았다.

"레포트가 어디갔냐고! 도대체 어디에!!"

제찬은 소리쳤다.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
세상살기가 싫었다. 주먹을 쥐고 쉴새없이 자신의 머리를 쳤다.
그러나 고통만 있을 뿐이였다.


-기분 좋게 해주는 약이예요.

이때 제찬의 머리에는 어제 노파의 말이 떠올랐다.

"마약이라도 상관없어. 이 괴로움을 벗어나고 싶어."

잘 들리지 않는 말이였다.

종이의 색깔이 바뀐줄도 모르고 병을 집어들었다.
병의 뚜껑을 열어 한모금 마셨다.

"아. 써."

엄청난 쓴맛때문에 병을 집어던졌다.

"으..으...으으.."

숨이 막혀왔다. 제찬은 이것이 독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피는 목에 집중되었다. 빨개진 목은 온도가 급상승했다.

"커억.. 커억.."

숨을 쉬려고 온갖힘을 써 바깥공기를 안으로 들여넣었다.
하지만 공기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숨만 막혀 올 뿐이였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제천은 바닥에 쓰러졌다. 목의 피는 풀렸고, 온도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째깍.째깍.째깍.째깍.

쇼파에 놓아둔 가방에는 '레포트'라고 씌여있는 종이뭉치가 있었다.

곧 새벽이 오고, 아침이 왔다.
그리고 태양이 세상에 나왔고, 금방 사라졌다.
거실에 있는 어항속의 붕어들의 헤엄치는 속도가 빨랐다.
물은 점점 탁해졌다. 그리고 하얀배를 위로 향한채 물에 떠있게 되었다.
붕어가 썩어가는 시간에 물은 증발했다.
창문밖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그쳤다.
계절은 바뀌었다.
그리고 또 바뀌었다.
거실 곳곳에는 거미줄이 쳐져있었고, 벽지에는 푸른곰팡이가 생겼다.
방바닥에는 돈벌레와 바퀴벌레가 돌아다녔다.
시계는 멈추지 않았고, 어항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59분이 흘렀다.

모든것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제찬의 검지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리고 손전체를 움직였다.
힘겨웠는지 한동안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1분이 또 흘렀다.

"으...으으윽.. 아..아악!!"

괴성을 질렀다.
많은 시간을 엎드려 있어서 몸전체의 뼈가 굳은 듯 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있었다.
제찬은 한번 더 괴성을 질렸다.

"아악.. 악"

몸을 뒤집었다.
이젠 얼굴은 천장을 향했다.
허파와 심장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동안 쉬지 못한 공기를 몸안으로 들여 넣었다.
오랜만에 공기를 만나자 굳어버린 피도 풀러 움직였다.

제찬은 눈을 쉴새없이 깜빡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파랗게 뒤덮어버린 곰팡이였다.

자리에 일어나려 했지만, 굳은 뼈는 그리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관절을 하나씩 움직일 때마다 '뚝'소리를 냈다.
마침내 상체를 일으켰다.

손등이 가려웠다.
낫설은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방바닥 전체에는 갖가지 벌레들이 기어다녔다.

노린내 풍기는 벌레.
다리가 수십개인 벌레.
기형인 벌레.

목을 움직여 주위를 둘러봤다.
쇼파는 벌레들이 갉아먹고, 썩어 방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거지?'라고 제찬은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었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자리에 일어서려고 했지만, 자빠졌다.
몇번이고 일어서려고 했다. 마침내 척추를 곧게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천천히 걸었다.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아, 비틀거렸다.
제찬의 앞에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있었다.

이때 기억이 났다.

"저.. 저 약을 먹고 죽었을 텐데.."

그 다음은 없었다.
약을 먹고 죽었다.
그러나 제찬은 지금 살아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고, 걷고 있었다.
현관쪽으로 걸었다. 그러고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잘 돌아가지 않았다.
어깨를 문에 기대고 손잡이를 돌렸다.

"탕!"

문이 힘이 실려 큰소리를 내며 열렸다.
넘어지려 했지만, 벽을 잡았다.
천천히 제찬의 고개가 올라갔다.
눈은 집중을 하며 밑부터 앞까지 광경을 봤다.
정면을 향했다.

자기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제찬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였다.

"이..이게 뭐지. 어떻게 된 일이야. 이럴수가."

제찬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이였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무너져있었고, 사람들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어있었다.
온 몸이 검게 변해 죽은 사람과 온몸에 반점이 생겨 죽은 사람도 있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고,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

제찬의 코를 간지럽히는 시체썩는 냄새는 역겨웠다.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기다란 복도는 여전했다.
낫설었다. 꼭 다른 세상 같았다.
하늘은 검은 안개로 뒤덮혀 태양빛을 막고 있었다.

복도를 걸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살폈다.
무너진 건물 옆에는 시체가 쌓여있었다. 시체산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땅바닥은 피로 물들어있었다.
바람은 북쪽으로 불고 있었다. 제찬은 바람과 함께 날아온 신문한장을 잡았다.



『2050년 6월 7일』

[흑사병 다시 발생]

[3차 대전 전 세계 패망]


"2050년이라고? 뭐가 어떻게 된거야."

제찬은 다시 읽어보려고 했지만, 바람때문에 놓쳤다.
바람이 밀어내치는 신문은 저 멀리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제찬은 미로숲속에 서있었다.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출구는 없었다.
앞이 아니면 뒤로 가야한다.
제찬은 고민한다.

어디로 갈까.
어느곳으로 가야 출구가 나올까.

확실한 곳은 없다.
하지만 선택해야 한다.
제찬은 일단 앞으로 가기로 한다.
이리저리 헤매었다.
앞만 보고 걸었다.
몇일이 지나도록 미로숲을 돌아다녔지만, 출구는 찾을 수 없었다.

제찬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온통 주위에는 시체와 무너진 건물들 그리고 벌레들 뿐이였다.
평소에 자주 다녔던 길이지만, 낫설었다.
안개를 헤치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마에는 아까부터 주름이 가득 했다.

제찬의 발에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사람의 배였다.
발에 무게중심이 실리자 배는 쑥 들어갔다. 그러자 입안에서는 누런액체가 나왔다.
그 중에는 지렁이처럼 생긴 것이 나와 꿈틀거렸다.
그것을 본 제찬은 온 몸이 꿈틀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빨리 피하고 싶었다.
집으로 향하려고 뒤를 돌아 봤지만, 뿌연 안개만 보일 뿐이였다.
제찬은 생각했다.

나처럼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나요!?"

자기가 낼 수 있는 소리중 가장 크게 질렀다.
소리는 멀리 퍼져나갔다.
어딘가 있는 벽에 부딪쳐 소리가 되돌아왔다.

"아무도 없나요!? 아!!!악 아무도 없냐고요."

그러나 대답을 해주는 것은 메아리밖에 없었다.
제찬은 뛰었다.
집에 가면 더 많은 것을 알것 같았다.
안개가 길을 막고 있었지만, 무작정 뛰었다.


"헉..헉...헉헉..허..어.."

제찬은 이렇게 달려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급하게 와야 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달렸을까.
세상에는 이젠 아무도 없다.
어렸을 때 영화속에서만 보던 일들이 현실로 일어났다.
그것도 하룻밤 자고나니 50년이 지나버린 것이다.

노파가 준 그 약은 도대체 무엇일까.
만약 약을 먹지 않았다면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고.
억울했다. 이런 일을 왜 내가 당해야 하는거지.

숨은 목까지 찼지만, 계속 달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았지만, 앞도 안 보이는 길을 생각을 더듬으면서 달렸다.
이윽고, 높게 뻗은 제찬의 아파트가 나타났다.
안개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아파트를 보자, 뛰는 것을 멈추었다.

쿵-쿵쿵쿵

목뒤 맥박은 머리뼈를 울릴정도로 심하게 뛰었다.

긴 복도를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철로 만들어진 문이 닫혀질 때 내는 소리는 고요했다.
집 안에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보자 뒤통수가 저렸다.
더러운 집을 보자 신발은 벗지 않기로 했다.

"제기랄! 무슨 놈의 벌레들이 이렇게 많어."

벌레들이 터져 역겨운 액체를 보기 싫었기에 이리저리 피해서 침실로 갔다.
그나마 침실에는 벌레들이 적었다.

"휴..."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침대위에 있는 몇마리의 벌레들을 손으로 밀친 다음 누웠다.

눈은 천장을 향했다. 수많은 거미줄이 쳐져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졸음은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 강했다.
제찬은 그 강인함 앞에 무릎을 꿇었고 결국 눈은 감고 잠속에 빠졌다.

어둠속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제찬이 눈을 떴을 때는 거미가 눈앞에 달려있었다.

"악!!"

짧고도 굵은 소리를 냈다.
줄 하나로 온몸을 의지하는 거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침대에 내리꽂은 거미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빠른속도로 침대 끝으로 기어갔다.
그러고는 밑으로 곧 사라졌다.

창문은 햇빛이 잘 들어오게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제찬의 눈에는 자그마한 오디오가 보였다.
버튼을 누르니 그 안에는 클래식 시디가 들어있었다.
재생을 눌렀다.

[월광소나타]

50년이나 흘렀지만 음은 깨지지 않았다.

이 음악이 이렇게 슬펐었나.
역사의 흐름을 말해주는건가.
피아노 건반이 하나씩 누를 때마다 제찬은 정곡을 찔린듯 아팠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식욕을 돋우는 침이 입안에 고였다.
외로움속의 배고픔이 제찬을 괴롭혔다.

제찬은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섰다.
힘든 몸을 이끌며 현관을 나섰다.

째깍.째깍.째깍.째깍.

멈춘 줄 알았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계소리가 들리자, 벌레들은 간간히 뚫어져있는 구멍속으로 들어갔다.
거미는 거미줄을 없앴다. 그러고는 자신도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제찬의 눈은 변해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숨도 빠르게 쉬었다.

"나도.. 어쩔..수 없잖아."

톤이 느린 말투였다.

"정..말 어쩔수..가 없어. 나도... 허.헉.. 살고... 싶단.. 말..야."

제찬의 다리밑에는 검은사람이 엎어져있었다.


제찬은 집안에 벌레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검은 남자의 팔을 두손으로 잡고 끙끙거리며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거실 가운데까지 끌고서 내려놨다.

이 남자에서만 썩은내가 나지 않았다.
배가 뒤집어지는 듯 했다.
제찬은 남자를 맛있는 음식 보듯 했다.
침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면 흙이라도 먹을 수 있을것 같았다.
침을 줄줄 흘리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에 얼굴에는 침이 뚝뚝 떨어졌다.

볼을 타고 흐르는 침은 땅바닥을 젖히고 있었다.
제찬의 눈동자는 이미 돌아가 있었다.
앞은 보이지 않고 빨간빛만 감돌고 있었다.

손은 서서히 내려가 남자의 얼굴을 눌렀다.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떨고 있었다.
얼굴에서 떨리는 손을 떼고 팔을 잡았다.
제찬은 몸을 굽혀 입을 벌리고 팔 한쪽을 물었다.
그리고 턱의 힘과 송곳니로 표피를 뚫었다.
심장의 활동은 멈춰서 피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혓바닥을 굴러 찢어진 살을 핱았다.
비릿한 맛이 침과 섞여 입안에 돌고 있었다.

이젠 살을 잡아당겼다.
의외로 쉽게 뜯어졌다.
씹을 때마다 비릿한 냄새때문에 오래 씹지못하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엄지손가락 크기만하게 구멍이 생겼다.
한번 더 반복했다. 가끔 근육을 건드릴 때는 검은 하늘로 향했다.
그럴때마다 제찬은 움찔했다.

검은 빛은 이젠 거의 사라졌다. 빨간 팔이 되어 버렸고, 곧 뼈만 남게 되었다.
뼈는 검은 색 몸때문에 더욱 흰빛이 돌았다.
제찬의 내장은 바삐 돌아갔다.
소아액은 펑펑 내뿜었고 살은 스며들어갔다.

제찬의 입주위는 피가 묻어 있었다.
이젠 눈은 제대로 돌아와 있었다.

"인육이 가장 맛있다고 하더니 사실이군."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크크. 이거 땡기는데?"

째깍.째깍.째깍.째깍.

제찬은 자신이 변해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배가 부르자 모든 것이 즐거웠다.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만이 살아남은 것이 신기했다.

"이젠 내 세상이야. 하하"

눈커플이 무거워졌다.
침대로 가서 몸을 맡겼다.
포근했다.

"내일은 다리를 먹어 볼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남자는 더 이상 검은색이 아니였다.
이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두렵지.
죽고 싶지.
넌 괴로울거야.

고막이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뚜렷하게 머리에서 들렸다.

죽어야돼.
넌 너무 잔인해졌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아악!! 제발 그만해."

양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죽어'라는 소리는 계속 울렸다.

-기분을 좋게 해주는 약이예요.

"이..이 목소리는."

그 목소리만 생각하면 머리가 터져버릴것 같았다.

'째각'거리는 시계소리도 합쳐서 제찬의 머리속에 울렸다.

제찬의 눈은 쉴새없이 돌아갔다.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그게 자신의 뜻은 아니였다.

"우..우우우."

제찬은 발작을 일으켰다.
눈의 활동은 멈췄고, 입은 거품을 물고 있었다.

"커억.. 어..어"

허리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공중으로 향했다가 바닥에 부딪쳤다.
몇번을 왕복하니 '뚝'소리를 내며 허리가 비이상적으로 돌아가있었다.

요동은 멈추었고, 제찬은 정신이 돌아왔다.

"으악! 악.. 아아.."

정신이 되돌아오자 고통은 모두 입력되어 제찬의 머리속에 들어갔다.
머리전체는 핏줄이 서있었다. 녹색빛의 핏줄은 머리를 뚫고 나올것 같았다.
얼굴은 빨개졌다. 눈은 충혈되어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고, 입술은 떨고 있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다시 잃고 말았다.

째깍.째깍.째깍.째깍.

제찬은 정신을 잃었어도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발 깨어나지 말아라.
이대로 잠들고 싶다.
세상의 종말끝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싶다.

제찬이 정신이 잃은 시간에 집에서는 변화가 생겼다.
던져서 산산조각이 난 병조각들이 모아져 새로운 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액체가 나와 가득 채웠다.

인간은 그리 쉽게 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제찬은 자연스레 깨어났다.
아까보다 고통은 심하지 않았다.

"죽고 싶다고. 제발 죽여줘."

죽어.
죽어.

소리는 다시 제찬의 머리에서 울렸다.

이젠 비명도 지르기 싫어졌다.

병은 넘어졌다.
엎어져서 고통을 꾹꾹 참고 있는 제찬의 얼굴로 굴러와 건드렸다.

힘겹게 얼굴을 돌려 병을 봤다.

이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없는 힘까지 끌어내어 병을 잡았다.


이젠 끝이야.
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간이였어.
지금은 이렇게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내가 죽으면 하늘이 슬퍼해주겠지.
말라버린 나무들이 슬퍼해주겠지.

제찬은 병의 뚜껑을 열었다.
일어서지 못했기에 엎드려서 병안에 있는 액체를 입안으로 모두 털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대부분을 입안에 넣었다.

쓴맛을 각오하고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아니였다.
달콤함.
혀전체에 달콤함이 퍼졌다.
은은한 맛이였기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모든 액체를 삼켰다.

이젠 고통을 호소하며 죽겠지.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정신은 더욱 뚜렷해지고, 허리의 고통도 씻은듯이 사라졌다.
예상 밖에 일이 일어나자 어색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는 돌아가있었지만, 고통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움직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중추신경은 모두 허리에 향해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통은 중추신경에 집중되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쇼파에 앉아버렸다.
힘이 가해져서 앉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편안하게 쇼파에 누웠다.
지그시 눈을 감고 쾌락을 즐겼다.

아름다운 여인이 제찬의 허리를 애무하고 있다.
철렁거리는 긴 생머리가 제찬을 간지럽혔다.

"아하... 아항"

축축한 여인의 입술이 제찬의 얼굴로 다가왔다.
체리향이 풍겨 나왔다.
제찬은 여인과 입맞춤을 했다.
달콤했다.

여인의 혀는 물기가 부족한 제찬의 입술을 적셔줬다.


"그렇군. 아픈것이 기분이 좋아지네. 키킥"

제찬은 뾰족한 송곳니로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
선홍빛의 피가 흘러나왔다.

"크..크....크크.."

피가 나오는 양이 늘자 제찬은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 좋단말야. 하하."

흥분되었다.
제찬은 정확한 발음이 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너무 좋은데.. 팔 한번 잘라볼까?"

제찬은 부엌에 가서 칼을 가져왔다.
다른 것들은 모두 녹슬었지만, 이것만이 깨끗했다.

스윽.. 스윽..

제찬은 왼쪽 손목을 천천히 잘랐다.
쇼파 밑으로 다섯개의 손가락을 가진 손이 뚝 떨어졌다.
몽둑한 손목에는 검붉은피가 뚝뚝 떨어졌다.

"카카.. 하하하.. 키키키키키...크크크크크크"

제찬은 숨이 막힐정도로 웃어 댔다.
그러나 기분만 더 좋아질 뿐이였다.

"아이.. 간지러워."

오른쪽 손으로 왼쪽 손목을 긁으면서 말했다.
제찬은 칼을 다시 들어 눈에 꽂았다.
간신히 뇌를 건드리지 않았다.

제찬의 이마는 매끈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 늘 있었던 주름은 아까부터 없었다.
달콤함을 느꼈을 때부터.

"잠깐!"

제찬은 웃음을 멈추고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이러면.. 안되잖아. 이런.. 바보같이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는걸까.

"목을 자르면 더 기분이 좋을텐데, 왜 엉뚱한 팔만 잘랐을까. 크크크. 이런 바보같이 크크크."

제찬은 눈에 꽂아 있던 칼을 뽑았다.
그러자 눈은 반쯤 튀어나왔다. 피는 제찬의 볼을 타고 턱밑으로 떨어졌다.

피눈물이라는 것이 이런것일까.

칼을 날카로운 부분을 세우고 목에 갖다 댔다.
힘을 주어 좌우로 움직였다.

스윽.. 스윽..

살이 천천히 갈라졌다.
곧 목 뼈를 드러내고, 성대를 잘랐다.

"크크크크."

칼질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무리 짓지 못하였다.























"최형사님 이번 사건 아무래도 자살인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일들을 모두 자기 혼자 했단 말이야?"

"저도 그게 믿기지 않습니다. 저렇게 자살했다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그러나 칼에서는 사망자의 지문밖에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자기 눈을 찌르고 팔을 자르고 목까지 자르냐고. 그때 사망자 옆에 있던 그 병은 뭔가?"

"그냥 피로회복제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점은."

"뭔가?"

"잘려진 사망자 이마에는 주름이 심하게 져서 줄어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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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2022.10.04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