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살과 약속

관살과 약속

G ㅇㅇ 1 2,505 2022.10.02 11:27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다. 내가 그런 성향을 띤다는 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간섭 받기 싫어하는 사람이 남을 간섭하지 않듯. 선물주길 좋아하는 사람이, 대부분 선물받길 좋아하는 사람인 것과도 같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친구들 중에는 약속에 대한 감각이 전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이렇다. 토요일 오후 5시에 약속을 잡았다고 하면, 나는 보통 4시 40분 즈음에 도착한다. 그리고 저쪽에 전화를 하면,

"형 오늘 빨리 왔네요. 나는 지금 출발함."

"어딘데? 무슨 역이야?"

"이제 출발해요."

"그러니까 무슨 역이냐고?"

"음......"

"아직 집이니?"

덜덜.

뭐,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가 많다. 나는 그때부터 줄창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샤갈. 5시 정각에만 도착했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20분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마냥 오가는 버스를 지켜보거나, 담배를 태우는 간격이 점차 좁혀지거나, 일 없이 시간을 보내노라면 나는 어느덧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건 뭐 나를 존중하는 마음 자체가 없구만. 어느 땐 진짜 화가 나서 얼굴이 굳어져 있을 때도 있다.

"형 왜 그래요?"

"그걸 모르고 묻니? 하복부 우측 부근에 둔탁한 충격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제발 더이상 나를 건드리지 말아다오."

기껏 오랜만에 만나서는 숙연한 분위기로 운을 떼고 싶지 않은 나의 절절한 바램을 시몬 너는 아느뇨?

 

이제는 나도 내성이 생겼다. 집을 나서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한다. 휴대폰 뒀다 뭐하랴. 인간은 결코 쓸데없는 발명에 목을 메지 않는다. 일찍이 허경영도 말하지 않았나. 콜미, 콜미, 롸잇나우.

비록 약속시간을 정해놓았더라도 상대방이 출발할 시간을 확인하고나서야 나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때문에 상대방이 늦어지거나,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하거나 하는 일 없이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디니?"

"이제 출발해요."

"아직 집이지?"

"음 . . ."

"솔직하게 말하렴."

"네. 방금 일어났어요."

"그럼 한 30분 후에 출발할게."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꼭 당하고 나서야 방책을 마련하는 건 인류의 오랜 특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새삼 인류라는 단어에 동질감을 느낀다. 아아 나도 역시 인류의 한 갈래인 것이다.

 

이렇게 방책을 세워놓고, 쓸데없이 열받는 일이 없어지고 보니, 새삼 지나간 나의 과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어떻게 보면 나도 전혀 잘못이 없는 건 아니었다. 5시 약속이라고 해서 무작정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5시를 수성하고자 했던 것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내 주변 친구들의 성향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벤쳐기업의 주가처럼 유동적인 그네들의 성향을 알면서도 나는 '약속 시간 하나는 기막히게 지키고 만다'라는 나의 주의를 관철하느라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아,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이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주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주의를 따르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약속 시간이란 '대충 그 무렵'의 의미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오후 5시는, 내게는 철 같은 오후 5시지만, 그들에게는 대충 오후 5시쯤으로 인식된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 철 같은 오후 5시를 지키려고 했던 걸까.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러가지 소리들이 들리지만 다음과 같은 메세지가 유독 귀를 사로잡는다.

"그네들이 늦으면 승질낼 수 있거든. 지키기로 한 것을 지키면 나 스스로 떳떳할 뿐만 아니라 남을 벌 주거나 칭찬 할 수 있는 권리조차 생기거든."

 

두둥.

 

문득, 대학 농활이 생각난다. 나는 원래 잠이 많다. 게다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지금도 하루 여덟 시간 수면은 절대 사수하고 있다. 대학 시절에도 그랬다. 그런데 농활만 가면 이상하게도 모두가 기상하기로 약속한 새벽 6시에 잠을 깨는 것이다. 그것도 1,2학년 때에는 별로 책임질 일이 없으니 요령도 피우곤 했는데, 4학년이 되고 고학번이 되니 밑에서 보는 눈들이 있어서 여름 농활 9박 10일간 새벽 6시면 칼 같이 눈이 떠졌다.

눈을 떠서는 팔짱을 척 하고 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얘들아 안 일어나니?"

그리고 저녁에는 밥 먹고 나서 뭐라고 한 마디도 한다.

"요즘 들어 기상시간에 일어나지 않는 친구들이 많더군. 에헴."

나는 켕기는 것이 없으니 맘 놓고 까도 된다.

"특히, 민수랑 정아. 너무 늦게까지 술 먹지 말고 적당히 잤으면 좋겠네."

에헴.

 

그러나 열흘 연속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건 낮동안 땡볕에 나와 일하는 것보다도 더 빡센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꼬박꼬박 일어나고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늦게 잠이 들더라도 의지의 한국인으로 기상시간을 지켰다.  

 

좀 빡세긴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여러가지 지켜야 할 것들. 다양한 약속들. 바람직하다고 할 만한 것을 지키면 켕기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까지 생긴다. 이건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느니, 선거날엔 투표를 해야 한다느니, 주먹보다는 대화와 타협과 같은 여러 사회적 약속에 국한되지 않는다. 외모를 보자. 못 생긴 사람이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기보다, 잘생긴 사람이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 더 권위가 생기는 건 도대체 왜일까?

 

누군가는 이런 것들이 우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부분에 유독 민감하고 어떻게든 지키려고 애쓴다. 여기서는 시간 약속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기로 하자. 나는 위와 같이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이 반드시 그것을 못 지키면 폼이 상한다거나, 그것을 지켜야만 남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걔 중에는 때로 웃음이 나오는 약속에는 웃지만 그저 순수하게, 약속을 지킨다는 건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Comments

G 2022.10.03 11:41
왜 이렇게 늦었어,쓰발!
약속시간을 정했으면,지켜야할것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