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과 관살

비겁과 관살

G ㅇㅇ 1 2,631 2022.10.02 11:25

비겁은 관살에 의해 제어된다. 비겁이 지기 싫어하는 속성, 고개 숙이기 싫어하는 숙성, 뻗어나가는 의지의 속성이라면, 관살은 그 의지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겸허함을 가르친다. 세상이란 네 맘대로만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자기 맘대로 살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사회와 역사 이후의 인간은 자기 맘대로만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인간은 때로는 왕의 질서 아래, 지금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법질서 아래 살고 있다. 사회 이후의 인간은 마치 낙원으로부터 추방된 아담과 이브처럼 원시의 자유를 박탈당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자유를 잃었다 해서 단지 갑갑하다고만 할 것인가. 어떠한 질서 아래 통합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인간 세계는 질서화되고 조직화되면서 효율이라는 것을 획득하게 되었다. 무형의 의지는 어떤 틀이 부여되면서 비로소 뻗어나갈 계기를 얻게 된다.

 

예를 들면,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농구를 하기 전에는 그냥 건달일 뿐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체력과 강력한 운동량을 가졌지만 그것을 주먹질에만 소용했다. 강백호는 어딘가로 뻗어나갈지 모르게 들끓는 에너지 덩어리 같았다. 그는 농구를 하면서 어떤 질서 아래 통합된다. 그는 농구라는 세계에서 선배를 만나고 동료들을 만나고 자신의 소명을 부여 받는다.

 

예를 하나 더 들면, 밀가루 반죽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빵 틀에 따라 붕어빵도 되었다가, 바나나빵도 되었다가 한다. 계란빵이 될 수도 있었고 와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 틀에 부어지면 결국 단 하나의 빵이 된다. 밀가루 반죽은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수 많은 가능성 가운데 단 하나로 가능성에 제약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반죽인 채로 언제까지나 놓아둘 수도 없는 일. 틀에 부어지지 않으면 반죽은 언제까지나 형체 없는 반죽일 따름이다. 밀가루 반죽에게 관살은 빵 틀이다. 가능성은 접게 되지만 밀가루 반죽은 빵 틀을 통해 비로소 쓰임새를 얻는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여자에게 남자가 관이라는 것은 여자는 남자를 통해 비로소 쓰임새를 얻는다는 얘기일까? 남자에게 자식이 관이라는 것은 남자는 자식을 통해 쓰임새를 얻는다는 얘기일까?

 

난강망에서 삼춘 무토론을 보면, 삼춘 무토는 갑목으로 소벽하지 않으면 불령하다는 말이 나온다. 소벽은 막힌 것을 트고 깨뜨린다는 의미이미고, 불령하다는 건 영험함이 없다는 얘기다. 왕토인 무토를 갑목으로 트고 깨뜨리지 않으면 영험함이 없다는 얘기인데, 나는 이것을 밀가루 반죽론과 마찬가지로 이해한다. 혹은 무토는 무식한 강백호와 비슷해서 농구 정도 되는 격렬한 운동으로 인도해주지 않으면 쓰임을 잃고 영영 건달로 전락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관살은 판단을 독점하고자 하는 성질이다. 우리 사회에서 판단을 독점하려면 어떠해야 할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인물이 잘 나야 할 것이고, 대학도 잘 나와야 할 것이고, 실력도 있어야 할 것이고, 힘 있는 직장에 들어가서 등등등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한테 까이는 일보다는 부러움을 사며 남을 까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준들은 우리 사회에서만 통하는 기준들이고, 사실은 사회마다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이 기준은 그 사회 내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삶의 방식을 갖고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관살을 잘 쓰는 팔자로 태어났다 해서 무조건 좋은 직장에 들어가네, 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직장이란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니 직장을 거론할 뿐인 것이고, 오히려 관살이란 것은 어떠한 사회에 태어나더라도 그 사회안에서 요구되는 특정 가치 기준에 민감해진다는 속성 정도에 머무르는 듯 하다.

 

비겁이 지기 싫어하고 고개 숙이기 싫어하는 속성이고 재를 먹으면서 자신을 지키는 속성이라면, 관살은 살기로서 자신과 타인에 대하여 숙이도록 하고 희생하도록 하고 제압하도록 하는 속성이다. 비겁은 자신 하나에 만족하는데, 관살을 보면 자신에 대해서는 겸허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제압하도록 하는 공공성에 대한 감수성이 생긴다.

 

강백호는 힘이 세다. 그러나 농구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강백호는 여자만 쫓아다니면서 영영 건달로 남았을 것이다. 농구는 제도권 내의 스포츠다. 뿐만 아니라 인기도 있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열심히 농구해서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여 인정 받는다. 하지만 농구는 룰이 있기 때문에 그는 마음대로 욱하는대로 치고 받을 수는 없다. 그가 욱할 때마다 5반칙 퇴장은 예사이다. 강백호는 짜증이 나서 언제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그래도 그는 끝내 농구를, 룰을 버리지는 않는다.

 

관살은 이러한 룰 안에서 판단을 독점하고자 하는 성질이라 할 수 있다. 판단을 독점하려면 당연히 더 높은 레벨로 올라서야 한다. 일간이 관살을 바라본다는 건, 사회의 특정 룰 안에서의 삶을 지향한다는 것인데, 그 어느 곳이건 치열한 레벨 다툼이 벌어지지 않는 곳은 없다. 하지만 최상위 레벨이 되어 보다 강력한 결정권을 쥐게 될수록 그에게는 더 큰 책임감이 따르는 것이고, 그가 가진 책임감이 보다 사회의 핵심 권력에 가까울수록 그는 자신의 삶을 사회에 희생해야 하는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그렇다. 관살이란 곧 최고 레벨이 되어, 세상을 향하여 자신을 희생하라는 명령과도 같다.

Comments

G 2022.10.03 11:19
감독의 작전지시강백호!
그 자리에서 좀 더 파고들어서 압박수비를 펼치란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