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열병

G ㅇㅇ 1 1,868 2022.09.27 03:12

언제부터였을까.
확실하다고는 못하지만 지난 겨울에 열병이 난 후에 내게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그 날은 영하 20도에 가깝도록 굉장히 추웠다. 하지만 그 날은 여자친구와 사귄지 1주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깟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벤트를 생각했다. 선물로 금목걸이도 샀고 사랑의 세레나데도 연습했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다. 그녀를 만난 다음에 내가 준비한 이벤트를 보여주면 더 감동 할 것이다. 감동의 눈물을 찔끔 흘린 그녀와의 입맞춤. 창피하지만 1년이 되도록 아직 키스를 하지 못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남몰래 훔쳐 본 입술은 보는 것만으로도 상큼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몸속에 싱싱한 생선이 팔딱거려."

그녀가 이 말의 뜻을 알고는 있는지 부드럽게 웃어 넘겼다.
내가 정성껏 준비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 약간 실망했다. 한편으로는 선물이라도 주지 않을까 해서 기대감이 부풀었다.

창틀 사이로 살금 들어오는 추위가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정도니 밖은 안봐도 뻔했다. 내복은 입지 않았지만, 티를 세겹이나 껴입고 점퍼까지 입은 다음에 밖으로 나갔다.

굉장히 추웠다. 바람까지 불고 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는 되어보였다. 잔뜩 움츠려도 추위는 조금도 줄이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훈훈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삼류로맨스영화의 스토리냐 말인가. 1주년에 그녀가 헤어지자고 한다. 뭐,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나는 요즘 드라마에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내게 닥치자 그녀가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봤지만 결국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갔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는 죽은자의 손이 가슴을 한번 스윽 쓸어간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착잡한 마음에 깡소주를 두병이나 공원 벤치에 앉아 마시고는 잠이 들었다.

"죽지 않은 게 기적이다."
내가 눈을 뜨자 내 방이었고, 내 이마에 얹을 물수건을 짜던 엄마가 말했다. 하얗게 굳어가는 걸 동네 아주머니가 발견했다고 한다. 그 말이 어찌나 섬뜩한지 주먹을 꼭 쥐었다. 두꺼운 이불이 나를 덮고 있었지만 뼈가 시릴정도로 추웠다.

"한숨 푹 자면 나을거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기서 잔거니. 술은 왜 마신거야."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나도 그런 미친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소리 더 하려는 걸 보고 내가 눈을 감자 엄마는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엄마 말대로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꾸 그녀가 떠올랐고 그럴수록 내 몸은 활화산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팔팔 끓는 피가 터져 나올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런데 뜨거워질수록 나는 추위를 느꼈다. 가까스로 잠에 들고 다음 날, 늦게 일어나자 온 몸이 가뿐하고 날아 갈 것 같았다. 그녀는 잊었다. 깨끗하게.

문제는 그 뒤로 생겼다. 아니, 생긴 것 같다. 아직까지는 확신을 할 수 없으니까. 이상하게 내 몸이 다른 사람보다 온도가 높았다. 아, 그렇다고 아프다는 것은 아니다. 땀이 유달리 많이 나오는 사람이나 손발이 죽은 사람처럼 찬 사람처럼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내가 말하는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열병이라도 앓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름감기에 걸린 적 있었는데 그냥 열좀 있고 기침좀 하는 수준이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일은 내가 컴퓨터를 할 때 나타났다. 열심히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들겼는데 끈적거리는 것이 손가락에 묻어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옷에 문질러서 닦았는데 그 물질은 또 묻었다. 그게 뭘까, 하고 눈으로 확인을 하니 그건 키보드가 녹아 생긴 것이었다. 키보드는 작은 커품이 생기면서 내 손이 닿은 곳은 천천히 녹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나는 비명에 가까운 경악을 했다. 확실히 내 손이 닿으면 더 부글부글 끓면서 녹았고, 몇차례 확인 해본 결과 내 체온이 100도도 넘는다는 걸 알았다. 그 후, 감기가 다 나으니 온도는 정상으로 내려갔고 -그래도 보통인 보다 높지만- 내가 만지는 것도 타거나 녹지 않았다.

병원을 가도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내가 아파서 몸에 열이 나는 날이면 나는 온 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고 내가 손대는 것마다 탔다. 내가 이불을 건들면 연기를 내며 불이 붙었고, 책을 만지면 화르륵 탔다. 몸에 열이 생기는 날이면 나는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했고, 열이 내릴 때까지 옷을 전부 벗고 욕실에 물을 받아놓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내 체온이 100도가 넘기 때문에 물은 끓기 마련이지만, 나는 뜨겁다는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렇기 때문에 밖을 나가는 걸 조심히 했고 특히 겨울이 되면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온 몸이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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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2022.09.27 06:45
열혈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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