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땅에서 산다. 땅에는 시간이 흐른다. 사람은 시간을 살며 생로병사의 한 축을 겪는다.

팔자를 열면 땅은 지지다. 지지는 시간의 흐름이다. 사람은 년월일시의 지지를 순차적으로 겪으면서 산다.

지지는 살아가는 환경의 흐름이다.

그러나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더라도 어떤 인간이 갖고 있는 고유한 정신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잘 살 건 못 살 건, 힘들 건 아프 건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 꿈을 갖고 산다.

정신은 천간이다. 천간은 빙글빙글 돈다.

 

어린 나이에 년지를 살아도 네 개의 천간은 여전히 거기 있고

청년이 되어 월지를 살아도 네 개의 천간은 여전히 거기 있다.

 

물론 천간 또한 해당 시기에 나타난 천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린 나이에는 년간의 영향을, 나이 먹으면 시간의 영향을.

그러나 천간은 공기와 같아서 서로 얽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비록 정신이 고유하다고는 하나 사람은 땅 위에 살아간다.

따라서 살고 있는 환경이 정신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시간의 흐름 따라 정신이 변할 수도 있다.

정신은 빙글빙글 돌며 지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는다.

 

커다란 팽이를 생각해보자. 팽이는 빙글빙글 돈다. 팽이의 위, 폭이 넓은 곳에는 천간들이 돌고

팽이의 심은 순차적으로 지지의 년월일시를 지난다.

팽이의 심이 각 지지를 지날 때 그 각각의 지지의 힘은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시지를 지날 때 시지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물론 시지를 깔고 앉은 간의 영향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를 지나는 사람의 정신은 시간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시간이 제대로 시지의 힘을 받는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이다.

경우에 따라 시지가 월간의 통근처가 되어 시간보다는 월간이 더 힘을 받을 수도 있다.

 

사주 하나를 보겠다. 천간만을 본다.  

 

乙 己 辛 丁

 

이 사람은 유년기에 정화 인성을, 청년기에 신금 식상을 천간에 띄워놓았다. 그리고 장년기에 관을 보았다.

이 사람은 유년기에 정화라는 정신을 향하고, 청년기에 신금이라는 정신을 향하고, 장년기에는 을목이라는 정신을 향한다.

년월의 정신을 발판삼아, 시의 정신으로 넘어간다고 하면, 인성과 식상을 추구한 결과로 을목 관성을 마지막으로 좇아간다는 얘기도 된다.

 

태어나고 정화 인성을 보아 이 사람은 공부에 뜻을 둘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신금 식상을 보니, 공부한 것으로 진로를 펼쳐나가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일간은 이를 수렴하여 마침내 관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추상적인 얘기이고 이 사람이 요리를 한다고 치자. 인성을 보았으니 인성은 공부다. 공부한 대로 요리한다. 이 사람은 뭘 하든 일단 자료수집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식상을 보니, 식상은 꾸미는 성질이다. 처음엔 공부한 대로 하다가 점차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십간론상으로 정화와 신금은, 정화가 신금을 녹이는 관계이다. 이 사람의 배움이 이 사람의 시도를 녹인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배운 것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래서 시도는 흐지부지해진다. 그리고 관을 보니 결국엔 남 눈에 의존하는 스타일이다. 관은 권위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요리사의 의견을 따를 것이다.

 

이제 지지와 연결시켜 보자

 

乙 己 辛 丁

丑 卯 亥 卯  여명 24세

 

천간은 빙글빙글 돌며 년월일시를 순차적으로 지난다. 이 사람의 년월일지를 보면, 재관의 흐름이다. 천간에는 인성과 식상을 띄워 놓았으나 년월일지를 지나는 동안, 신금과 정화는 지지에 통근하지 않는다. 이 사주에서 정화는 아예 뿌리가 없다. 시지가 되어서야 월간 신금은 힘을 받는다.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식상 신금의 정신은 나이 들고 나서야 발현이 된다. 월간에 신금이 나타나 청년 시절에 갖고 있었던 식상이라는 정신을 나이 들고 나서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이 사람이 년월주를 지나는 동안 지향하는 정신들, 즉 인성과 식상의 정신은 좀처럼 땅에 통근하지 못하고 있다. 즉, 인성을 보아 공부를 하려고 하고, 식상을 보아 배운 것으로 진로를 개척하려고 하였으나, 지지를 보면 재관이라 돈 벌고 남자 만나느라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동떨어지게 된다. 뭘 하려고만 하면 남자들이 대쉬해오고, 집에서 돈 벌어오라고 해서, 환경이 잘 안받쳐준다는 얘기가 이런 사람들이 곧잘 하는 얘기다.

 

시간 을목은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년지 묘목을 보아 통근한다. 따라서 날 때부터 관에 대한 지향성이 강해진다. 그러나 당장의 청년기에 해당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월간에는 신금을 띄워놓았으므로 지금은 통근되지 않은 신금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그러나 이 사주의 년월간이 지지에 통근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만 읽어줄 수는 없다. 이 사주가 만약 여름에 태어났다면 정화가 신금을 녹이는 기세가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