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관살에 관한 글

사주 관살에 관한 글

G ㅇㅇ 1 2,720 2022.09.16 18:38

오행의 생극제화의 관점에서 관살은 비겁을 극하는 오행을 뜻한다. 여기서 비겁을 극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비식재관인의 오행 가운데 비겁만을 나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사람의 몸이 음양오행의 설계도 위에 구성되듯 관살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비겁을 곧장 나로 해석해버리면 나를 극하는 세력은 되도록이면 없는 게 좋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이 말은 남자가 여자를 극한다고 해서 여자는 되도록이면 남자를 멀리하는 게 낫다는 얘기와 같다. 자식이 남자를 극한다고 해서 남자한테 자식을 키우지 말라고 하는 얘기와 같다. 비겁이 나이고, 관살을 나와는 별개로 띄워둔 채 나를 스트레스 주고 힘들게만 하는 세력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

 

비겁도 나이고, 관살도 나이다. 식상도 나이고 재성도 나이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이룬다. 비겁은 나를 이루는 재료 가운데 의지와 정열, 열정과 욕망, 본능과 주관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관살이 비겁을 극한다는 것은 내가 내 맘대로만 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조절장치의 역할을 관살이 한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남자가, 남자에게 자식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관살이 일간을 극한다고 하지만 다른 오행과 마찬가지로 나의 일부분으로 봐야 한다.

 

관살은 비겁을 직접적으로 극한다. 대놓고 극한다. 대놓고 극한다는 것은 비겁이 어떤 의지를 가졌을 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지마. 저러지마. 관살이 강한 사람들은 항상 자기 검열을 한다. 자신의 의지에 대해 검열을 한다. 방향은 자신에게만 향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타인에 대해서도 검열하려 한다. 이러지마 저러지마.

 

야! 너 그거 하지마! 싹둑 베어버린다.

 

벤다라는 것. 베인다라는 것. 이것을 단순히 칼을 겨누고 목숨을 뺏는 의미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관살이 일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강한 경우 이런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것이 아닌가. 또는 타인을 살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렇기도 할 것이다. 방향은 내외를 관통한다. 자타불이. 자신을 극제하려는 것만큼 타인을 극제하고,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두고 싶은 만큼 타인을 제재하려 하지 않는다.

 

현대는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쉽게 칼을 겨눌 수는 없다. 대신 현대는 논리로서 말로서 상대방을 베거나 자신을 벤다. 유독 차가운 핀잔을 잘 던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한 마디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사람들은 관살을 쓰는 사람들이다. 현대는 말로서 글로서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고 베어버리는 방식으로 관살을 풀어낸다.

 

TV를 보자. 참으로 유혈이 낭자하다. 어느덧 상대방을 까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시작을 열고 닫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상대방을 깐다라는 것. 이것 또한 관살이다. 스스로를 망가뜨리거나 타인을 망가뜨리거나. 오래전 개콘에서는 마빡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옥동자 정종철은 쉴 새 없이 자신을 망가뜨린다. 그러나 이건 어떤 가상의 죽음-자살이다. 사람들은 웃는다. 자신은 망가지고 싶지 않아도 타인이 망가지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온다. 여기에는 어떤 비열함이 숨어 있는 것일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느덧 일상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까느라 여념이 없는 사태를 보게 된다. 관살은 일종의 살기殺氣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어느 곳에든 살기가 횡행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맘 놓고 까기만 할 수 있는 사람 없고 계속 까이기만 하는 사람 또한 없다. 다시 한 번 자타불이. 사주에서의 일간은 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형제, 동료이기도 하다. 타인을 극제할 때, 일간은 자신의 위치에 잠시 다른 친구를 갖다놓았을 따름이다. 누군가를 극제하기 위한 표현은 언제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타인을 쓰러뜨리느라 평가한 가치의 기준 그대로 자신 역시 평가당하게 되어 있다.

 

X 我 X X                X   내 친구 미영이 X X             X 我 X X

X X  X X    --->      X          X            X X   --->   X X X X

 

관살은 나의 의지를 대놓고 극한다. 그렇다면 관살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의지를 극하려면 그럴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은 어느 시기 총과 칼이 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서 인간의 의지를 대놓고 극하는 것은 국가가 제시하는 법이라든가 공공성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 공공성이란 다른 사람의 눈치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이것은 막강한 힘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의지를 가질 수 있으나 의지는 언제나 타인의 눈치를 보고 이래도 되는가 스스로를 검열한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빌어오면 인간은 무의식이자 충동의 보고인 이드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검열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슈퍼 에고에 항상 눈치를 봐야 한다. 관살은 프로이트적 의미에서는 슈퍼에고라 봐도 좋을 것이다.

 

관살은 항상 나를 검열하고 있다. 일간에 비해 관살이 강할 경우 일간은 언제나 주눅이 들어 있다. 남 눈치를 봐야 하고 자신의 요구나 욕망은 언제나 뒷전이다. 이런 사람은 일단은 희생정신은 있는 것이라 평가받을 것이다. 반면 관살에 비해 일간이 강할 경우, 일간은 눈치 없이 행동하고 자기 마음대로 군다. 나아가 윗사람이라 하더라도 우습게 생각할 것이며, 언제나 자기 스스로를 윗사람보다 더 윗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는 권력 자체를 우습게 생각할 수 있다. 일간이 관살보다 강하다해서 꼭 무례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결코 어떤 권력 체계에서 가만히 시키는 일만 하고 살다가 가지는 않을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런 사람이 꼭 자기는 충성해봤자 돌아오는 것이 없다며 푸념하고 어떤 책무와 위치를 맡기든 자신의 능력에 비해 모자란다며 서운해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문제는 항상 내가 최고라는 그 마음가짐 자체에 있다.

 

사람은 꼭 칼과 총에 맞는다고 해서 베이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짧은 말 한마디에 깊은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인간이란 어떤 말에 상처받나. 가을의 갑목이 경금을 볼 때와 신금을 볼 때를 생각해보자. 둘 다 똑같은 관살이다. 그러나 갑목은 경금에 의해서만 깔끔하게 베어져 재목으로 쓰이고 신금은 상처만 낸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자꾸 다른 사람이라고 평가 받을 때 인간은 상처 받는다. 가을의 갑목은 경금을 무조건적으로 밝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의 갑목은 베어지길 원한다. 목수가 도끼를 들고 산을 오른다. 목수는 재목이 될 만한 나무를 고른다. 그리고 벤다. 이 때에 나무의 입장에서는 고맙다고 느껴질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바르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에는 베이더라도 상처가 아니라 오히려 영광이다.

 

이처럼 현대에서 벤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건 마치 도끼 자루 손에 든 목수의 눈에 뜨이는 아름드리 나무처럼 바르게 가치를 매김 받는다는 것과 같다. 예능 프로에서 서로를 깔 때 무조건 욕하고 헐뜯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베거나 베일 때 우리는 통쾌한 느낌을 가진다. 일상에서 우리는 그 순간, 그 상황, 그 사람, 그 시간, 그 공간의 여러 느낌들을 받는다. 그리고 아 이 순간이 어떻구나 하고 가치 판단을 내린다. 그때 우리는 그 순간을 베고 있는 것이다. 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무수한 까기 프로그램들은 서로를 가치 매기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사람은 가치가 매겨짐으로써 죽는다. 그리고 매겨진 가치에 따라 쓰임을 얻음으로써 다시 산다. 옥동자는 솔직히 못생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얼굴을 재능 삼아 스스로를 적재적소의 위치에 가치 매겨서 위치시켰다. 제대로 가치 매겨질 때, 그 관이 크냐 작냐 일간이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는 영광을 얻었던 것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관살의 의미는 이러한 것이다.

 

이 시대 이 사회를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일은 우리에게 관살로 다가온다. 마음 내키는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그건 그대로 또 의미가 있다. 타인의 눈치를 본다라는 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적당한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올바른 가치가 매겨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관살은 의무이자 책임감이자 희생정신이자 스트레스일 수는 있지만, 사실 누구나 제대로 베어지길 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칭찬보다는 고칠 수 있는 점 좀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과 연관하여 따끔한 일침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란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제대로 가치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 그리고 평가받기를 원하는 것. 나는 이것을 관살의 작용이라 본다.

Comments

G 2022.09.18 05:49
남들 시선 평가 피드백 간섭등이 두렵고 싫은.억지강제하면 내키지않고 엄두가안나는.내 자신을 감추고싶은,관다신약을 지닌 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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