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학의 신비

성명학의 신비

G 케니 2 175 09.12 08:29

흔히 作名을 말하면 덮어놓고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강아지도 제 이름을 지어놓으면 주인이 부를 때는 물론, 남이 불러주어도 제 이름을 불러주어야 돌아보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作名을 미신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식하다는 말 밖에 달리 돌려줄 말이 없어보인다.

특히 되레 기독교의 부흥집회에서 조차 부흥사들이 단골로 잘 써먹는 설교가 있다. 나무 두 그루를 심어놓고 한 그루에는 덕담(=복음)을, 다른 한 그루에는 악담(=저주)를 하면 그 나무조차도 성장과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본 가톨릭교회에서는 나무 대신 물(=음용수)을 두고 말하길, 덕담(=복음)을 계속 들려주면 성수(=거룩한 물=6각수)가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보았다.

칭찬을 강조하는 예화설교에서 곧잘 인용되는 대목인데 사람의 이름도 그가 죽을 때까지 남이 얼마나 불러주는 것일까 하고 한번 세어본다면 아마 수억번도 더 될 것이다.

어찌 이름이 갖는 의미를 예사로 볼 것인가.

그러면 또 혹자는 말하길, 그렇다면 누구라도 좋은 이름만 따라 지으면 되겠네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유치한 시빗조가 이닐수 없다.

누가 무인도에서 역대 대통령들 이름을 죄다 갖다가 지어붙이면서 산다면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하기사 무인도이니 자기 혼자서 통반장은 물론 대통령을 자처해도 될 것이다. 누가 대통령 아니라고 시비할 사람도 없을 게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는 作名과 아울러 자기의 입지(=포지션)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적, 물적 역학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왕建이 삼한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있어서는 그야말로 무혈로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당시 삼한의 사정을 보면, 천년왕국 신라가 노쇠해져서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위치마저 영동, 영남을 차지하고 있어서 마치 오늘날 어느 당의 만년 텃밭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궁예와 견훤은 그들도 본래는 영남에서 자랐건만 역시 중부와 호서에서 서로 자칭 황제라 하며 할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황제의 곤룡포 색깔은 노랗고, 왕의 곤룡포 색깔은 빨갛다. 그래서 역대 중국의 천자들은 감히 제후들이 노란색을 쓰지 못하게도 했었다.

마치 오늘 날 어느 두 당들이 노란색을 서로 자기네들의 상징색이라고 다툰 것을 보면 어쩜 그리도 닮았을까.

'옴마니 밤메홈'을 부르짖으며 궁예를 일러 미륵(=기독교의 메시아 격)이라고 했던 그 세력 안에서 왕建이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승계한 것을 보면 참 역사는 얄궂으리 만큼 반복되는가 싶기도 하다.

그냥 따라 지은 作名도 신비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작명과 어우러진 힘의 균형관계가 필연적으로 예사롭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앞으로도 지켜볼 수가 있을 것이다.

Comments

이름에 먹칠을해서도 아니되거니와 유명무실해서도 아니되지요.
궁예 왈; 옴~마니 반메~홈!
              내가 왕이될 상인가~?
              왕이될 상이냐말이다!
              이 세상에 마가~끼었도나!
              특이한,고뿔 역병이 츨몰하여 번졌도다!
              역병을 물리쳐줄 신출귀몰한 작명을 부탁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