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단편) 바스러지다

(공포단편) 바스러지다

G ㅇㅇ 1 1,871 2022.09.11 01:17

하루살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가만히 바라보는 동안 그것은 창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한 번, 두 번 그것은 날개를 파닥였다. 여리고 약해 보이는 날개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리고 천천히ㅡ 고요함이 찾아왔다. 하루살이의 움직임이 멎었다.
 
 
난 기억한다. 수경이의 꼬깃꼬깃 접힌 유서를 말이다. 수경이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다음날 학교가 들썩였고 교실에선 우는 애들이 보였고 방송국 사람들도 보였고... 애들 여러명이 수경이 책상 앞에서 무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한 두장이 아니었다. 꼬깃꼬깃, 구겼다가 펴면서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몇 십장 같은 내용의 종이가 바닥에 나뒹구러져 있고 몇 개는 취재하는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죽어서 귀신이 될 거야.
 
그 한 줄 뿐인 유서였다. 평소 조용히 책 읽기를 좋아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문장실력이 좋았던 수경이. 그 빼어난 어휘력을 빼 놓고 그 말 밖에 적어 놓지 않았다. 어쩌면 제일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수경이. 그러고보니 난 그 애와 참 많이 같은 반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참 낯선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가식적으로 변했다. 전혀 그럴 줄 몰랐다, 너무 슬프다, 그런 말들을 하면서 아이들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눈물은 자기 연민에서 오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럼 울어야 하는 건 수경이지, 그 애들이 아니었다.
 
수경이는 엄마가 없었다. 죽은 건지, 아니면 집을 나간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애들이 그 아이를 괴롭혀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도둑질...
 
 
-엄마 없는 년들은 다 이딴 식이니? 도둑년.
 
처음 수경이가 애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때 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 웃음소리는 수경이의 변명소리보다 컸다.
 
-상습적이구나? 왜 자꾸 물건에 손을 대니?
 
담임 선생님이 애들이 다 보는 데서 수경이 가방을 들어보이면서 나무랄 때 난 창가에 고개를 기대고 졸음을 참고 있었다. 하루살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가만히 바라보는 동안 그것은 창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한 번, 두 번 그것은 날개를 파닥였다. 여리고 약해 보이는 날개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리고 천천히ㅡ 고요함이 찾아왔다. 하루살이의 움직임이 멎었다.
 
-너지?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을 했다. 그 다음부턴 진실이든 거짓이든 다 거짓말로 취급받았다. 사람의 인식이란 가장 무서운 독이다. 사람의 편견이란 사람을 소외시켜 버렸다. 애들의 시선은 단정적이 되었고 아는 사실을 일부러 물어보는 듯한 취조는 단도직입적이 되었다. 너지? 그 때 수경이는 울면서 아니라고 했고..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만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기 때문에.
 
 
"조용하고 말없던 애라서 잘 모르겠어요."
 
현수가 취재진에게 툭 내뱉듯이 말했다.
 
"고등학교 와서 자살하는 애가 한 두명인가?"
 
귀찮다는 듯이 덧붙인 게 그 말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현수 그 애는 그렇게 말해선 안됐다. 그 애는 주동자였다. 수경이를 철저히 소외시켜 버린. 어딘가에서 벌써 흰 국화를 구해 온 애들 몇 명이 훌쩍이면서 수경이 책상 위를 수놓았다. 평소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한 번도 대변을 해주지 않았던 애들이. 그제서야 책상이 환했다.
 
 
난 지금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난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내가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식대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체육시간. 그 날은 무척 더웠다. 땀이 옷에 베이는 게 싫어서 난 운동장을 돌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기합에 맞춰 애들이 운동장을 도는 가운데 수경이가 비실비실 내 옆으로 다가오면서 물었다.
 
-너 왜 안 뛰어?
 
-더워서. 넌?
 
-....나도 더워서.
 
수경이는 나처럼 능글맞지 못했다. 대충 변명을 대 가며 벤치에서 쉴 수 있는 능글맞음이 그 애한텐 없었다.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아이였다. 그 애의 발목이 부어 있었다. 걷지 못한 만큼 부어 있었는데 그 애는 내가 자기 발목을 쳐다보는 걸 알았는지 일부러 힘차게 흔들어보였다. 현수와 그 애 친구 몇 명이 복도에서 웃는 소리를 아까 들었었다. 또 발을 건 게 틀림없었다.
 
-오늘 날씨 많이 덥네.
 
그게 내 대꾸였다.
 
 
난 책상에 앉아 발을 흔들어 보았다. 여전히 수경이, 수경이 그 애 이름을 단짝친구처럼 부르면서 우는 애들때문에 정신이 산만하다. 문득 시선이 창 밖으로 갔다. 하루살이가 아직도 붙어 있었다. 입도 가지지 못한 불쌍한 존재. 너는 왜 태어났을까...?
 
수경이가 죽기 일주일 전,그 날 음악실에 가기 전, 나는 리코더를 사물함에 놓고 간 걸 알았다. 애들보고 먼저 가라고 하고서 교실로 뛰어갔다. 계단 하나 계단 둘. 코너를 돌면 거기에 우리 교실이 있었다. 늦었구나 생각하며 교실로 다가섰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현수와 애들 몇 명이 웃고 있었다. 애들 중 하나가 무언가를 품에서 꺼냈다. 그리고 몸을 숙여서, 수경이 책상 안으로 깊숙하게 그것을 밀어넣었다. 그러면서 또 깔깔 거렸다. 그 때 내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돌아보았을 때-
 
거기엔 수경이가 서 있었다. 수경이는 묵묵하게 교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머쓱한 듯, 그애가 웃었다. 그리곤 벽 너머로 사라졌다.
 
 
수경이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을 했다. 전에 과학선생님이 가장 편하게 죽는 방법이 투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난간에게 발을 떼는 순간 심장이 멎는다고 했다. 그것과 수경이의 자살방법이 관계가 있는진 몰라도 아무튼 생각이 났다, 갑자기.
 
그리고 그 떠들썩했던 하루가 지났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은 죽음이었다. 애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책상은 치워졌다. 고독한 책상이었다. 국화가 시들었지만 치울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 책상이었다. 책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토록 조용했던 그 애가 의식되기 시작했다. 그 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애를 끝까지 고독하게 만들었던, 그 애의 책상에서 나왔던 선생님의 금반지..선생님이 수경이 뺨을 때리고 애들이 소리를 질러대던 그 날이 지나고 선생님이 다시 부주의로 그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다만, 후기를 말하고자 한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난 애들이 다 가고 나서까지 야자를 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딴 애들보다 멀었다. 엄마가 늘 데리러 와야 했다.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난 빈 교실에서 교과서만 끄적이고 있었다. 빈 교실은 공허하고 조용했다.
 
혼자 있을 때 사람의 감각은 특히 예민해진다. 내게 그 발자국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닌가 한다.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숙여졌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옆 반에 누가 있었을수도 있다. 아니면 수위아저씨..아니면 엄마? 아니, 엄마가 그 시간에 올 리는 없었다. 발소리는 복도 끝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죽어서 귀신이 될 거야.
 
그 애의 유서가 스치듯이 생각난 것이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난 갑자기 심장이 덜컹거리면서, 무서워졌다. 그 얘기가 생각났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아이가 귀신이 되어 돌아왔는데 떨어지던 모습 그대로 피투성이가 되어 콩콩콩, 머리를 찧으면서 다닌다고..
 
"저벅"
 
그 애는 죽기 전에 내 생각을 했을까..? 나였다면 필시 그러했겠지. 나였다면 증오했을 것이다. 난 거대한 비밀을 마주한거나 다름이 없었다. 현수와 애들 몇 명이 수경이를 도둑으로 몰아가고 반 애들 귀중품을 수시로 빼돌렸다는 것을. 하지만 난 그 애를 위해 한 마디도 해 본 적이 없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저벅-"
 
만약 그렇다면...
 
"저벅"
 
처음으로 그 애가 불쌍해졌다. 갑자기 서글퍼지면서, 울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애라는 걸 알았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단순한 연민, 아니면 동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평소에 난 그 애가 혼자인 걸 보았지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범죄자였다.
 
"저벅"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저벅"
 
그것이 발을 살짝씩 끄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을 때 발소리는 닫혀있는 우리 반 문 앞에 멈춰 있었다. 창 밖으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칠듯이 쿵쾅대는 맥박을 느끼면서 문으로 다가섰다. 나 답지 않은 모험심이었다.
하나 둘 세고 나서....문을 여는 거다. 괜찮아..내 과민반응일 뿐이다.
 
그 순간 무언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육감적으로 난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창문으로 희끄므리한 것이 보였다. 난 마침내 알아보고야 말았다. 하얀 얼굴의 수경이가 문 옆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꺄아아악!!"
 
뒷걸음질 친다는 것이 난 그만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막상 닥친 공포에 어떻게 대항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비명만 질러댈 뿐이었다.
 
"드르륵-"
 
낡은 교실 문이 열렸다. 난 순간적으로 호흡을 멈춰버렸다. 교실안으로 들어오는 발이 보였다. 퉁퉁 부어있는 발이었다. 고정된 시야 안으로 그 발이 보이고 그것이 내 앞에 서는 것이 보였다.
 
 
".....너도 있었구나."
 
눈을 질끈 감았을 때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평소처럼 단정한 교복을 입은 그 아이가 책상 사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 내 책상이 어디 갔지...?"
 
그 애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리코더를 두고 갔는데....."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 그 애는 뒷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그 애의 부은 발목이 사라졌다. 문이 닫히자 다시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복도로 가는 저벅저벅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멍청한...멍청한 기집애! 그 애는 그 날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비굴하게 모른 척 했던 그 날, 그 애도 리코더를 가지러 왔던 거다. 그리고 그 애도 보았겠지. 하지만 그 애 역시 나처럼 멍청했음에 틀림없다. 나약하고, 나약한 아이.
 
"수경아!"
 
내가 뒷문으로 쫓아 나갔을 때 불이 모두 꺼져 있는 오른쪽 복도로 그 애의 뒷모습이 보이는 가 싶더니 이내 어둠속에 삼켜져 버렸다.
 
"귀신이 됐으면.....복수를 해야 할 것 아냐! 원한을 풀고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울분을 토하듯이 소리 질렀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민주야? 거기서 뭐하니?"
 
계단에 선 엄마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만들어 낸 환영이었는지도 모른다. 귀신이 되어 복수한다는 뻔한 레퍼토리에 그 애는 순응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애는, 그저 귀신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무 영향력도 받지 않는 귀신이.
 
귀신이 된다해도 그 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만일 정말 그런 게 가능해서, 그 애가 귀신이 된다해도 그 애는 괴담집에 나오는 원한령들처럼 잔혹해진다거나, 복수를 한다거나 그런 걸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심성이 그러했다. 그런 복수심이 있었다면 난간에서 발을 떼기 전에 애들에게 소리 한 번이라도 질러 보았을 것이다.
 
 
지금 난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생각대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과는 다를 수도 있다. 애들은 평소와 다름이 없고 책상 하나가 줄었을 뿐이다. 수업이 따분해졌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 보니 창문에 전의 하루살이가 아직도 붙어있는 게 보였다. 참 오래 붙어있다 생각하며 창문을 툭툭 쳐보니 힘없이 떨어져버렸다. 그것의 파편 몇 개가 창문에 아직도 붙어있다. 바스러졌다. 날갯짓을 멈춘 후 죽은 것이다.
 
가만히 그것의 시체를 바라보는 동안 다른 하루살이 하나가 창문에 와 붙었다. 난 창문을 세게 쳤다. 놀란 하루살이가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난 아직도 그 애의 유서를 기억하고 있다. 그것을 기억하는 이유는...
입도 가지지 못한 가련한 존재. 하루살이가 몇 번이고 날아온다 해도 난 몇 번이고 창문을 흔들어 줄 것이다. 날갯짓을 멈출 수 없도록 말이다.
 
그것은 결국-
 
 
내 앞에서 바스러지는 건 보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Comments

G 2022.09.11 0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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