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장

감사장

G ㅇㅇ 1 2,572 2022.09.05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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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사장의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김사장은 성격이 몹시 급하다. 또 인정머리가 없는 인간이다. 김사장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그의 공장에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 것인 양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24시간 쉬지 않고 기계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2교대로 일을 하는데 일의 특정상 여름에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일이 별로 없는 여름철에는 직원들을 일찍 퇴근시켜도 되지만 김사장은 끝까지 12시간을 공장에 있게 했다. 그러니 야근을 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었다. 죽일놈의 김사장새끼.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겨울철에 한참 일이 바쁠 때, 한 외국인노동자인 베터가 실수로 기계에 손가락 하나가 잘리는 일이 일어났는데 급히 달려온 김사장은 어처구니없는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마치 접시를 깨트려 손가락이 살짝 베인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았다. 기름때가 찌든 바닥에 피가 주르륵 흘렀다.

"야! 걸레 갖고 와서 여기 닦어."

그러고는 끝이었다. 나중에 베터의 친구인 알렉스가 베터의 손가락을 찾아봤는데 어찌된 지 손가락을 찾을 수 없었다. 알렉스는 수상하게 여겼지만 없는 걸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사라진 이유는 김사장이 아무도 모르게 가져가서 불에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태웠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아, 내가 김사장의 얘기를 하려는 주내용이 이것은 아니다. 그저, 그냥 김사장이 이런 인간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기 위해 김사장의 대한 얘기를 잠깐 한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얘기하자는 것은 김사장과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최철우의 이야기다. 최철우의 나이는 25살로 군 제대를 하자마자 용돈이나 벌어 볼 생각으로 일자리를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김사장의 공장이다. 벌써 일한 지 5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2개월분의 월급은 아직 받지 못한 상태이다. 2개월이나 월급을 받지 못하면 보통사람 같으면 노동부에 신고를 하거나 못 받은 돈 만큼 김사장을 패주겠지만 최철우는 그러지 못했다. 김사장이 바로 최철우 아버지의 친구였고 그것도 바로 옆집에 살았기 때문에 설마 안주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최철우는 아침 일찍 김사장의 차를 타고 공장으로 향한다. 본심인지 모르지만 김사장은 툭하면

"이거이거, 월급에서 까야해. 요즘 기름값도 많이 올랐는데."

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최철우는 생각했다. 지는 안 타나? 아니면 돈이나 줘놓고 그딴 말을 하던가. 하여튼 김사장은 최철우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재수 없고 짜증 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어쩌리.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해야 하지 않는가.

최철우가 열을 받는 것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7시까지 집 앞으로 나와야 한다는 점인데 그것은 무려 두 시간이나 일찍 나오는 것이다. 공장은 이곳에서 차를 타고 50분 정도 되는 거리이다. 그렇다면, 8시에 나와도 무방할 것인데 김사장은 기어코 7시에 출근을 하고야 말았다. 최철우가 졸린 눈을 비비고 대문 밖을 나가보면 김사장은 벌써 봉고차에 시동을 걸고 최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여, 타!"

김사장은 최철우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늘은 작업 할 게 많으니까 가자마자 작업해."
"네…."

속은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그 말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역시 중이기 때문이다. 최철우는 이럴 때면 목탁을 치면서 염불이라도 외우고 싶었다.
히터는 틀었는지 안 틀었는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약해서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오돌오돌 떨리는 다리를 꽉 붙잡고 있는 최철우의 손은 보기에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김사장이 얼마나 영리하고 순발력이 있는 사람인지는 그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김사장의 운전의 법칙에는 고질적인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절대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다는 점. 최철우가 보기에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단속하는 경찰도 별로 없어서 그런지 최철우는 한번도 단속에 적발된 것을 보지 못했다. 5개월이나 보지 못했으니 그 전에도 걸린 적이 없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담배를 거의 물고 운전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사장이 골초는 아니었다. 밥 먹고 나서 한대나 피울까, 다른데서는 피우지 않는데 운전을 할 때는 그렇게도 담배를 피워댔다. 약간 오버해서 말하면 그가 버린 담배꽁초 때문에 산 여럿이 옷을 홀라당 벗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담배 피울 때는 운전석 창문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김사장은 엄청난 과속을 했다. 앞에 있는 차를 추월을 하는 건 물론이고 앞에 단속카메라가 있으면 급브레이크를 밟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돈에 환장한 김사장이 과속따 위로 돈을 낸다는 건 끔찍한 것이다. 조금만 천천히 달렸으면…. 최철우는 속이 울렁거리고 뭔가 나올 것 같은 대단히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목젖 밑이 바다가 출렁거리는 것처럼 출렁거렸다. 이러다 진짜 토하는 거 아닌가? 김사장의 차는 담배연기만 뺀다면 꽤 깨끗한 차였다. 세차도 자주 했는데 셀프세차장에서 천원이면 완벽하게 세차를 해냈다. 물론 혼자 가는 법은 없었고 꼭 두세 명씩 데리고 공장 근처 셀프세차장으로 갔다. 최철우는 잠시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봤다. 아침에 먹은 내용물들이 소화가 덜 된 체 내 몸 밖으로 나와 차 유리창을 덮쳤다. 그리고 몇몇은 운전석에도 튀었고 김사장 얼굴에 조금 묻었다. 최철우는 결론을 떠올리기가 너무 쉬웠다.

곧바로 모가지가 잘리고 밀린 월급조차 받지 못한다. 잘리는 곳은 바로 이곳. 차에서 내려진다. 그리고는 집으로 터벅터벅. 가는 도중 한번 더 토하지 않을까.

한때 -막 안전벨트의 대해 벌금이 생겼을 때- 최철우도 그저 벌금 때문에 안전벨트를 했지만 이젠 정말 뭔가가 위협이 느껴져서 안전벨트를 맸다.

가까스로 공장에 도착했다. 이젠 일해야지.

최철우는 눈이 작고 무거운 물체가 누르는 것 같이 압박이 느껴와서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려웠다. 그 덕에 머리까지 아파서 오늘 일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련지 걱정이 되었다. 공장에 들어가니 중국인 둘이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들어 온 중국인이었는데 아직까지는 불만이 없는 듯 착실하게 일했다.

최철우는 선반 밑에 있는 목장갑뭉치를 꺼냈다. 기계가 뜨거워서 목장갑을 두개씩 껴야 화상 입는 걸 방지 할 수 있다. 김사장은 그것조차 아까워하는 눈치였지만 이것만은 양보 할 수 없었다.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기계를 끄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눈뜰 새도 없이 바쁘다. 점심시간까지 한번의 쉬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 MP3를 듣는 것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일을 할 때는 최철우와 얘기를 나눌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인으로는 이렇게 기계를 돌리는 사람이 최철우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국인은 포장작업을 하거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죄다 중국인이니 뭐 말이 하나도 통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라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 점심시간도 후딱 다가왔다. 이런데서 좋은 밥아 나오길 바란다면 도둑심보임에 분명하지만 그래도 일주일 내내 콩나물에 김치가 고작이면 너무 한 것이 아닌가. 국은 어찌나 짠지. 그런데 김사장은 어딨어? 최철우가 이곳에 와서 김사장을 이곳에서 본 적은 없었다. 뭐, 뻔하지.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최철우의 호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최신형 핸드폰이었는데 이 핸드폰을 사느라 한달 월급을 거의 날렸다.

「안녕하세요. 좋은 땅이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최철우는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땅 살 돈이 있으면 이딴데서 이러고 있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매우 어색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 언어발달장애가 걸린 로보트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아... 아... 아...

꿀맛 같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서 기계를 켰다. 커다란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뜨거운 김이 푸- 하고 빠져나왔다. 기계 위에 올려놓은 두겹으로 쌓인 장갑을 들었다. 두겹이기 때문에 한번에 손에 넣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다시 빼서 하나씩 손에 넣었다. 기계 옆에는 공기총이 있는데 멋도 모르고 얼굴에 쏘면 강력한 공기바람 때문에 멍멍하다. 최철우는 그 공기총을 집어 들고 기계 주위를 쏘았다. 찌꺼기들을 모두 없앤 최철우는 리셋버튼을 눌렀다. 30초정도 있으면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역시나 정신 없이 움직이다 보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두시간만 더 하면 일이 끝난다. 저녁을 먹으려고 장갑을 벗고 있는데 김사장이 작업장으로 들어왔다. 원래 작업장에 자주 들어오지만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들어 온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자자, 그만 하고 밥먹으러 가자고."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김사장이 이런 적은 처음이었고, 그가 우리를 데리고 향한 곳이 고깃집이라는 것은 최철우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연말에도 회식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사장이 어디 커다란 목돈이 생겼나? 갑자기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최철우는 꼭 자신에게만 고깃집을 데리고 가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막상 고깃집에 가서 최철우가 앉으려 하자 김사장은 미안하다는 듯이 최철우에게 말했다.

"아, 맞다. 철우야, 미안한데 공장에서 내 차키좀 가져와라."
"네. 어디에 있죠?"
"사무실 3층 사장실에 가보면 책상에 있을 거야."
"네."

그리하여 최철우는 따끈따끈한 고깃집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하고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 해는 이미 넘어가서 조명하나 없는 공장은 왠지 옛날에 유명했던 조폭들이 인육을 즐겨 먹었다는 공장이 머릿속에서 불쑥 떠오르게 만들었다. 사무실은 공장 바로 옆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잘 청소 된 계단은 올라 갈 때마다 뿌드득 소리를 냈다.

사장실은 처음 들어 와본 것이었다. 여느 사장실과 다른 건 없었다. 최철우는 책상에 올려져 있는 차키를 훔치는 것처럼 잽싸게 가지고 내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고깃집으로 향하던 최철우는 문득 이것이 굉장히 화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나를 시킨 거지? 내가 가장 어린것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데! 내가 자기 친구 아들이면 조금이라도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최철우는 심장 밑쪽부터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발가락을 꽉 움쳤다. 미칠 듯한 폭발이 온 몸 곳곳에 일어났다. 쾅- 콰아앙. 최철우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피가 이리저리 튀고 내장들이 길게 몸 밖으로 늘어진다. 하지만 최철우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장들을 몸속으로 집어넣고 찢어진 살가죽들을 붙였다.

설마 했더니 그 설마가 맞더라. 고기를 먹고 남는 시간은 공장에 가서 작업을 해야했다.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김사장과 같이 퇴근을 했다. 역시나 김사장은 그 운전습관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행에 옮겼다. 최철우는 집에 가면 곧바로 쓰러져서 잠을 잘 테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다시 공장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최철우는 누워서 형광등만 멍하니 바라보며 김사장을 생각했다. 결코 사랑 따위의 감정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직장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열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그냥. 최철우는 자신도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복수라는 단어를 되새기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침내 최철우는 하나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것은 소심하고 큰 용기가 없는 최철우에게 기가막힌 계획이었다. 일단 최철우는 핸드폰을 열어 몇 개의 단추를 눌렀다.




2





김사장이 샤워를 하고 속옷을 입고 있을 때 세면대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김사장공장의 물건을 받는 공급업체인 최사장이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전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여보세요."
"어, 김사장. 요즘 김사장 물건이 인기가 좋아."
"어유,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무슨 일이긴…. 김사장 거… 지금 물건의 두배 되나?"
"지금의 두배요?"
"그래. 없어서 못 팔 정도야."

두배라니. 구미가 당기는 요구였지만 김사장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을 했다. 만에 하나 물건을 제때 주지 못하면 신용을 잃기 때문이다. 신용을 잃으면 회사로써는 많은 피해를 볼 수 있다. 지금 직원 가지고는 아무리 해도 두배는 무리였다. 그래도 김사장은 요구에 승낙하는 걸로 했다.

"좋습니다. 언제까지 하면 되지요?"
"정말 할 수 있겠나?"

전화를 끊자마자 김사장은 용역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 이영식에게 전화를 했다.

"나야."
"형님…. 어쩐 일로…."

이영식은 불안한 말투로 말했다. 혹시 돈이나 꿔달라고 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요즘 하는 일은 잘돼?"
"뭐, 다 그렇죠."
"내일까지 열 명만 보내 줄 수 있어?"
"열 명이나요?"
"그래. 좀 젊은애들로 보내 줘."
"요즘 젊은애들이 힘든 거 하기 싫어해서 구해질까 모르겠네요. 이력서 낸 애들에게 연락 해볼게요. 그런데 임금은 얼마 주실거에요."

김사장은 생각에 잠시 잠겼다가 말했다.

"하루 3만원."
"네?"

이런 쪼잔한 자식. 얼마나 부려먹을 것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사장이 10명이나 구해달라는 것으로 봐서는 모르긴 몰라도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건 너무 적지 싶은데…."
"적긴 뭐가 적어.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것 보다 한푼이라도 버는 게 낫지. 하여튼 요즘 젊은것은 너무 편한 것만 좋아해서 문제야."
"알았어요. 구해볼게요."

아마도 하루 3만원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영식은 그렇게 생각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차에 시동을 걸고 최철우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내일부터는 6시 30분까지 나오라고 해야겠다고 김사장은 생각했다. 그러나 10분이나 지나도록 최철우는 나오지 않았다. 가끔씩 늦게 나오기는 했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이 자식 이렇게 하고도 돈 받기 원하다니!

5분이 더 지나고 안되겠다 싶어 나가려고 할 때 최철우가 집에서 어영부영 기어 나왔다. 차에 올라 탄 최철우는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안전벨트를 맸다. 김사장이 막 화를 내려 할 때 최철우는 코를 골았다. 기가 차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운전을 하며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김사장은 최철우가 듣건, 말건 혼자 중얼거리듯 최철우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6시에 나와. 일이 많아. 대신 5천원 더 줄게."

최철우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정신이 멀쩡했다. 지금 최철우 머릿속은 온통 복수라는 단어가 둥둥 떠 있었다. 지루한 복수극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최철우 자신조차도 언제 시작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착하고 최철우가 내리자 김사장은 이영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한번 전화했기 때문에 이영식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것임을 생각도 못한 김사장은 잔뜩 열이 올라서 사장실로 올라가려다가 공장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사장은 공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면장갑을 끼고 목장갑 두겹을 더 꼈다. 손움직임은 매우 둔하고 불편했지만 기계가 손을 익혀서 먹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리셋버튼을 다시 누르고 나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들을 바라봤다. 느렸다. 돈을 주기가 아까울 정도로.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김사장은 발신자번호를 보고는 마치 그곳에 「열명을 구했다」라고 쓰여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환희에 찬 목소리. 그리고는.

"당신이야?"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결혼했지만 김사장에게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사랑하는 자식이 있었다. 하지만 김사장과 같이 살고 있지 않았다. 별거를 했다거나 이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두아들 교육을 위해 잠시 미국에 가 있었다. 아내는 자신있게 말했다. 미국에서 공부시키면 다 된다고.

"현수와 도연이도 잘 있지? 그런데 지금 미국 밤 아니야?"

짧고 달콤한 몇분의 통화가 끝나고 김사장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갔다. 한시간이던 점심시간을 20분으로 단축시켰기 때문에 직원들은 벌써 공장에서 기계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최철우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또 늦게 나온 것일까. 다음 날 아침에 그토록 6시까지 나오라고 했건만 이번에는 20분이나 늦게 나온 것이다. 최철우가 안전벨트도 매기도 전에 김사장은 출발을 했다. 그와 동시에 담배연기가 최철우를 덮쳤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최철우는 담배연기를 맛보아야 했다.

그러는 도중 김사장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최사장이었다.
물건을 재촉하는 공급업체. 일손은 없고 초초해지는 김사장. 입술이 바싹바싹. 기계는 자꾸만 불량품을 뱉어내고 있고. 말라 비틀어버린 심장덩어리, 쿵.

재촉하는 전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왜 다른 용역사무소에 전화하지 않냐 하겠지만 그것도 이미 해버렸다. 그리고 하나같이 똑같은 소리를 했다. 너무 적습니다. 물론 돈얘기다. 그럼에도 김사장은 몇천원이라도 더 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았다.

이젠 김사장의 얘기도 거의 끝나간다.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명령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어떤이라도 좋으니 그 명령을 전해주었으면 죽음이 이리도 안타깝고 슬프지는 않으련만. 제 3자의 입장으로 보기에 더 슬픈 것은 김사장의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튿날 아침, 최철우는 역시나 늦게 나왔다. 이에 격분한 김사장은 얼굴이 빨갛게 닳아 올라으며 목구멍이 찢어지라 소리치며 최철우를 꾸짖었다. 내일 아침까지 물건을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내일 새벽까지는 물건을 모두 만들어야 했다. 어제 퇴근을 하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일당을 무려 2만원이나 올려서 열다섯명을 고용했다. 2만원의 차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사장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출발한지 30분이 지나면서 앞차를 추월하려다가 살짝 들이박고 너무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만 전복이 되고 말았다. 김사장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안전벨트를 맨 최철우는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다. 극과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최철우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3

 

 




김사장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최철우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과연 계획만으로 가능할까? 아무리 급한 성격이라도 조금 늦게 나갔다고 사고가 날 정도로 차를 몰았다는 것이 약간 억지라고 생각한 최철우는 계획을 세운 그 날, 덫을 놓기 위해 어느곳에 전화를 했다. 최사장이었는데 전화번호는 그 날 사장실에 갔을 때 가져 온 명함이었다. 계획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오고 있었다. 여기서 약간 모순이 있는데 그건 상관하지 않기로 하자. 머리 아프니까. 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최철우는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사에서 일하고 있는 최철우라고 합니다. 김사장님과는 잘 알고 있는 사이고요. 김사장님께서 물건이 많이 남아서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차마 최사장님께 말씀 드릴 수 없었나봐요. 저한테 부탁하셨습니다. 물건을 더 받을 생각 없으신가요?"

김사장의 물건은 인기가 있는 물건이었다. 최사장도 물건을 더 받기 원했지만 취급하는 곳이 많아서 많은 물건을 받기 어려웠다. 그중 가장 많은 물건을 받기는 하지만……. 최사장은 흥쾌히 그러겠다고 지금 당장 김사장에게 연락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철우는 급하게 말했다.

"그런데, 김사장님의 자존심 아시죠? 이런 말 부탁드려도 괜찮으신지 모르겠지만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연락하셨으면 합니다."

알겠네.
그리고 모닝콜을 평소보다 15분 늦게 설정했다. 최철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김사장을 죽였다. 그러나 살인은 아니었다. 김사장은 자신의 잘못을 죽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최철우와 나, 그리고 당신들이다.

Comments

G 2022.09.05 06:47
악행 악인 악덕함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