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채팅

기묘한 채팅

G ㅇㅇ 1 2,152 2022.09.05 02:55

'아'

 

몸을 일으키자 짧은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얼마나 잔걸까.

 

나는 시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30
시계는 중천에 뜬 해가 무색할만큼 잠을 자 버린 나를 비웃고 있는 듯 깜빡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라는 참으로 무거운 신분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험 후에는 이런 늦장을 피워도 되는 마땅한 핑계가 생기는 것이 학생의 좋은 점이라면 좋은점 아닌가.
'달걀 삶아놓은거에 우유 꺼내서 아침 먹을 것'

 

어머니가 남겨놓은 쪽지가 침대 맡에 놓여있다. 바쁜 일상에 떠밀려 제대로 된 아침을 먹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달걀 3개와 이제는 맛이 약간 변질되어 갈 즈음의 우유를 한잔 따라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험 이후에는 현실과 격리된 꿈속을 헤매이다 그것마저도 질리면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 시간을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메신저를 열자, 몇몇 친구가 접속하고 있었지만, 이내 꺼버렸다.

 

Starcraft를 실행해서 몇 게임을 하고나니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났지만
다르게 보면 아직도 오늘 하루가 끝나려면 무려 20시간이나 남은 셈이다.
그 때 예전에 자주 들르던 채팅 사이트가 생각났다.

 

컴퓨터를 막 샀을 때는 채팅에 한창 재미를 붙였었지만, 결국은 아침밥 대신의 달걀과 우유처럼 물리기 마련이다.
내가 김씨라는 점에서 착안한 treasure-k라는 대화명으로 채팅방에 접속했다. treasure라니, 나같은 놈에게는 trash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에 순간 실소가 흐르면서 입술이 뒤틀렸다.

 

몇몇 채팅방을 들락날락 거리자, 곧 채팅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채팅이란 것이 지저분한 통신어로 시작해서 거의 변함없는 무의미한 대화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채팅의 지루함이 터지기 직전의 팽팽한 풍선처럼 극에 달했을 때 흥미로운 방제가 눈에 띄었다.

 

'경고 : 반드시 죽어본 사람만'
죽어본 사람만이라니? 참, 그럼 자기는 죽어봤단 말인가? 그것은 참으로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지만, 어쩐지 끌리게 만드는 방제였다.

 

분명 어떤 미친 녀석이 말장난이나 하자고 만들어 났을 것이다. 나는 그 녀석과 함께 신나는 한 바탕 놀음이나 벌이자는 생각으로 방제를 마우스로 가볍게 눌러주었다.


treasure-k(treasure-k)님이 입장하셨습니다.


treasure-k ▶ 안녕하세요 ^^
Mangler ▶ 네. 안녕하세요. 분명 경고는 보고 들어오신거겠죠?
treasure-k ▶ 물론이죠.^^
treasure-k ▶ 님도 죽은 사람인가요? (분명 그럴테지만)
Mangler ▶ 물론입니다. 저는 육신의 영혼을 잡아들이는 일을 관장하지요.
treasure-k ▶ 아 그러시구나? 전 오늘로 죽은지 100일 되요 ^^ 초 켜놓고 축하파티라도 열 생각이에요 ^^
Mangler ▶ 호, 축하연이라.... 좋은 생각이군요. 축하연.
treasure-k ▶ 그럼요. 저랑같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친구2명하구요, 죽은 지 100일째 되는 사람끼리 모여서 파티 열꺼에요 ^^
treasure-k ▶ 님도 오실래요? 존 레논이 축하공연도 하거든요 ^^
Mangler ▶ 그렇군요.
treasure-k ▶ 님도 오세요. 님은 오늘로 죽은지 얼마나 되시죠?
Mangler ▶ 저는 항상 죽어있었죠. 삶을 누려본 적이 없었으니까.
treausre-k  ▶ 섬뜩하네요. 왜 삶을 누리지 못했어요? 지은 죄가 많았나요?
Mangler ▶ 아니요. 영혼을 잡아들이기에는 죽어있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죠.
treasure-k ▶ 무슨 말씀?
Mangler ▶ 만약 강도가 당신 집에 들어와 당신을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합시다.
treasure-k ▶ 그렇다고 하죠.
Mangler ▶ 그러면 경찰은 그 강도를 쫓아 잡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treasure-k ▶ 당연하죠;
Mangler ▶ 그렇다면 더 이상의 살인이 불가능하거든요.
treasure-k ▶ ????
Mangler ▶ 하지만 죽은 상태로 있다면 육신을 해치고 영혼을 잡아들이는 일이 어렵지않죠.
Mangler ▶ 죽은 사람을 가두거나 사형시키는 일은 아직까지 없으니까요.
treasure-k ▶ 그렇다고 하죠;; 그래서 당신은 몇이나 죽여봤는데요?
Mangler ▶ 이 방에 접속한 사람.. 전부 다.
treasure-k ▶ 아이구 무서워라. 온 몸이 떨리네.
Mangler ▶ 크크
treasure-k ▶ 이제 말장난 지겨워졌어요. 전 이만 갈게요


나는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창이 꺼지지 않았다.
채팅창에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Mangler ▶ 나갈 수 없어요.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왜 말을 듣지 않지? 또 저 미친녀석은 그걸 어떻게 안거야?
나는 채팅을 이어나갔다. 최대한 태연하게.

treasure-k ▶ 아하하; 컴퓨터가 워낙 구려서 하하.
Mangler ▶ 피를 보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죠.

나는 내 팔이 무시무시하게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경고 : 반드시 죽은 사람만'
나는 경고를 무시했다.
그는 연이어 말하였다.

Mangler ▶ 그 새빨간 선혈이 두려움에 질린 눈동자 사이를 흐르는 것. 그게 바로 살인의 백미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집에는 나 혼자 뿐이었고, 그 미친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까닭모를 냉기가 내 온몸을 전율했다.

treasure-k ▶ 너 뭐야? 계속 장난할래? 너 죽어!
Mangler ▶ 아직 게임은 시작도 안했는데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죠.
treasure-k ▶ 이 개자식, 뭐라고 지껄이는거야? 재미없다구. 니가 날 죽이기 전에 내가 니 배를 갈라버리겠어.
Mangler ▶ 하하, 그건 제 방식이 아닌데요.
treasure-k ▶ 그럼 니 방식은 뭔데 ?
Mangler ▶ 지금부터. 시작하죠.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뻐꾸기 시계가 5시를 알리는 소리를 내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계속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내심 한순간이나마 겁을 먹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단순한 장난일 뿐인데......'

treasure-k ▶ 야!

나는 언제부턴지 반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두려움의 증거였다.

Mangler(Mangler)님이 나가셨습니다.


나가다니? 이렇게?
나는 그가 몇마디라도 더 할줄 알았지만 결국 싱겁게 끝나버렸다. 나는 그제서야 내 이마에 식은땀이 몇방울 맺혀있다는걸 알았다.

 

이런 말장난에 놀아나다니 나도 참. 나는 크게 한번 웃고는 기지개를 폈다. 눈가에 작게 눈물이 비져나와 흘렀다.
이제 컴퓨터를 꺼야겠군. 망할 놈의 자식때문에 기분 잡쳤어. <나가기>버튼을 눌렀지만 여전히 방은 나가지지 않았다.

 

다른 기능은 모두 정상인데 유독 채팅창의 <나가기>버튼만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떤식으로도 채팅방이 꺼지지 않았다. 나는 꺼림칙하여 컴퓨터의 코드를 뽑아버렸다. 모니터가 맥없이 검은화면으로 변하였다. 고개를 돌려, 침대에 몸을 날린 순간, 컴퓨터가 다시 켜지는 소리가났다. 분명 모니터는 부팅화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갑자기 모니터의 화면이 심하게 이그러지더니 귓가에 뭔가 짧은 미세한 소리와 함께 바로 채팅창이 떠올랐다.

Mangler ▶ 모든 긴장을 풀고 두려움을 심장 깊숙한 곳으로 접어두었을 때. 그 때가 실은 가장 두려운 시점이지.

나는 너무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를까 생각했지만, 목구멍밖으로는 아무것도 기어나오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으로 동영상 재생프로그램이 실행되었다. 컴퓨터는 제멋대로 하나의 파일을 실행시켰다.

 

-ten minutes later.

 

난 저런 파일을 저장한 기억이 없는데? 모니터화면으로 겁에 질린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질은 썩 좋지 않았지만 화면 속의 남자는 분명 나의 모습이었다. 머리가 피로 범벅된 나의 모습. 머리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몇 걸음을 떼다,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심장이 바닥까지 철렁거리며 떨어지는 오싹함이 온 몸의 신경을 마비시켰다. 당장 집밖으로 뛰쳐나갈생각도 했지만 마치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컴퓨터의 모니터가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지?

 

모니터는 천장에 거의 닿을 듯 말 듯하게 높이 솟아 올랐다. 모니터를 연결한 선이 책상에 걸렸고, 모니터가 천장에 가장 가까워 지자 책상이 앞으로 넘어지며 심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나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계속해서 모니터를 주시했다. 모니터는 계속해서 공중에 솟아있었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모니터는 계속해서 공중에 떠올라있었고, 화면에는 Mangler의 두려움에 대한 견해가 여전히 존재했다. 20분이란 짧은 시간은 이 놀라운 상황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내 마음을 가다듬고,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주위를 살피며 생각했다. 모니터를 두려움에 쳐다보고 있을때는 보지 못했던 창문과 현관문이 눈에 띄었다. 창 밖에는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왁자지껄한 소리로 욕을 하며 방금 끝낸 축구경기의 잘잘못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 뛰어나가자. 저 아이들 틈에 들어가자. 살아 숨쉬는 사람의 무리에서 죽은자의 보복을 피하자. 나는 현관으로 마구 뛰어갔다. 현관문을 열어 젖히며 바로 왼쪽으로 돌아 대문을 열면 바로 그 아이들이 눈 앞에 있을 터였다. 모니터는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현관문을 열어 졎혔다. 아니 그러고싶었다.

 

현관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이 잠기지도 않았는데, 마치 잠긴문처럼 몇번 덜커덩 거리기만 할 뿐, 내가 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미세한 움직임만을 보이는 문과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모니터를 연결한 선이 본체에서 빠져나오며 천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려움에 지쳤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진 않았지만 더 이상 두려워하기에도 지쳐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모니터는 매우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돌진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얼굴로. 모니터는 내 머리 바로 위까지 질주하여 나의 머리를 경쾌한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꼐 관통하였다.

 

나는 마치 모니터를 모자처럼 목 바로 위까지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 머리 위로 피가 흘렀고, 의식이 점점 흐려짐을 느꼈다.
이게 바로 그 채팅때문이란 말인가. 나는 나의 눈동자로 내 핏방울이 흘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안이 온통 붉은색으로 염색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이 온통 붉은색이야. 점차 그 생각이 흐려졌다. 이윽고 그 생각까지도 사라졌다.

 

미처 깨지지 못하고 모니터의 구석에 붙어있는 액정은 여전히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Mangler ▶ 이게 바로 내 방식이야. 온 세상이 빨갛게 물들었을 때의 아름다움. 그것을 보게 해주는거지

Comments

G 2022.09.05 06:53
악성,채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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