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아이

웃지 않는 아이

G ㅇㅇ 1 1,884 2022.09.03 19:24

그 아이가. 그 아이가. 다시 왔다 웃지 않고 말도 없던 그 아이....

 

 어제. 나이트에서 여자를 만났다며 정신없이 진열장 앞을 서성이고 전화통화만 하는 지배인이 한심하다. 누군 없는 집에서 태어나 2700원 받아가며 열두 시간 꼬박 일하고, 부모 잘 만난 누군. 빈둥거려도 시간당 5000 원을 꼬박 챙겨간다. 나도 편의점 운영하는 삼촌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출입문에 매달린 방울소리에 눈을 떠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에 젖은 꼬마아이가 계산대 앞으로 다가왔다. 계산대 위 모니터 시계는 새벽 4시 14분을 표시하며 깜빡였다. 늦은 시간 꼬마 아이혼자. 편의점에 들어 온 일은 기억에 없었다. 아이는 무엇을 찾는지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만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다.

 
 "뭐 찾는 거 있니 꼬마야?"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천천히 돌릴 뿐 말이 없었다. 잠시 졸다 깨어난 상태에서 꼬마의 행동은 섬뜩했고 눈을 부비고 다시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야? 뭐줄까? 혼자 왔니?"

 
 아이는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같은 행동을 반복이다,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그때 지배인이 자신의 키보다 큰 진열대 뒤에 걸어 나왔다.

 
 "모라고 중얼거려 잠꼬대 하냐? 너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삼춘한테 말 좀 해줘?"

 
 "아니저..꼬마 손님이 와서 뭐 찾는 거 같아서"

 
 "잠꼬대 하지 말고 가게 잘보고 있어 어제 꼬신년 앞에 와 있다니까 잠시 나갔다 올께"

 

 항상 저런 식이다. 빈둥대고 전화하며, 지겨우면 밖으로 나갔다. 건설업체 사장이라는 지배인 아버지가 부러울 뿐. 자신보다 세살이나 많은 사람을 깔보듯 반말하는 지배인은 부럽지 않았다.

 
 편의점 앞 신호등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구경했다. 원을 그리며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옷차림의 남자가 길에 쓰러져 있었다. 불과 몇 분전. 나에게 반말하며 건방지게 굴던 지배인의 옷차림이다. '설마 아니겠지' 사람들 뒤로 다가가 신호등 앞에 쓰러진 남자를 확인했다. 지배인이 확실했다. 묘한 표정의 뜬눈으로 쓰러진 지배인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지배인을 일으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봐야 했지만 지배인의 눈동자가 몸을 경직시켰다. 웅성거리며 서있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편의점 안에서 봤던 아이가 보였다.

 
 지배인은 만취한 운전자에 의해 횡단보도에서 사망을 했다. 다음날부터 시간당 5000원을 받는 지배인으로  일할 수 있었지만 진열장 뒤에서, 죽은 지배인이 나오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 지배인을 잊고 일에 몰두 할 수 있었다. 내 밑으로 시간제 직원이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으로 자신이 맡은 일은 열심히 해나갔다.

 
 지배인의 사건은 기억에서 사라졌고 횡단보도 바닥의 흰색 스프레이도 지나가는 차와 사람에 의해 색을 바래고 있다.

 
 시간제 아르바이트가 하루 쉬겠다며 전화를 했다. 삼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었기에 그러라며 전화를 끊고 앞치마를 목에 둘렀다. 싸구려 줄무늬 정장 위 앞치마가 부담스러웠지만 삼개월전으로 돌아가 물품 진열을 하고 카운터에 앉았다.

 
 손님이 들어와 물건을 카운터로 들고 오면 바코드로 찍고 거스름돈을 내주며 앉아 있으니 무료(無聊)한 시간만 흘렀다. 새벽 2시가 지나자 거리 위는 적막함이 흘렀고 눈꺼풀은 무거워져 갔다.

 
 쇠 방울 소리가 무겁게 쳐진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기지개를 폈다. 뻣뻣한 고개를 풀기위해 목을 위, 아래, 좌, 우 로 돌리는 순간 내 눈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삼 개월 전의 아이랑 마주쳤다. 오른쪽으로 향한 고개를 제자리로 움직일 수 없었다. 묘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지배인의 눈빛과 아이의 눈빛이 교차하며 뒤통수 뒤로 전율이 흘렀고 출입문에 매달린 방울은 시끄럽게 가게 안을 울렸다.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진열장 뒤에서 죽은 지배인이 훔쳐보고 있다는 두려움에 눈을 옮기지 못했다. 아이는 천천히 몸을 돌려 편의점 밖으로 나가 무섭게 질주하는 차 사이를 통과했다. 도로 중안 선에 멈춘 아이는 다시 천천히 몸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머리털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아이의 시선을 외면했다. 진열장 뒤에서 살려달라며 지배인이 울부짖는 것 같았고 고개를 돌리면 당장이라도 내 앞으로 다가와 몸을 흔들 것 같았다.

 
 눈을 감아도 아이와 지배인의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가락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모든 신경을 손가락에 집중했지만 경직된 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은 땀방울이 뺨을 흘러 턱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전화벨소리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화벨에 귀가 반응하면서 경직된 몸이 풀렸다. 손을 조금씩 움직여 전화기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다. 긴장이 풀린 것은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을 때였다.

 
 "형님 피곤하시죠? 지금 군대친구와 편의점 앞 횡단보도에 있어요. 친구랑 잠시 들려도 괜찮죠?"

 
 고개를 돌리자 신호등의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아르바이트 학생이 군복 입은 친구와 뛰기 시작했다. 중앙선 황색 선을 밟고 서있는 꼬마는 나를 향해 고개를 가로 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학생과 군복의 친구가 중앙선에 다가 섰을 때 경적을 울리며 화물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텅~

 
 두 사람은 화물차에 몸을 튕기며 공중에 몸을 실었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나와 눈을 마주쳤다. 수화기로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머리가 일그러져 피를 토해내고 머릿속 내용물을 끄집어낸 순간까지도 휴대 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차를 멈춰 내린 사람들과 횡단보도에서 서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원을 이루며 모이기 시작했다. 비명소리와 차의 경적 소리 사이에서, 편의점 수화기에서 들었던 신음소리가 섞이며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시간이 지나.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머릿속으로 파고든 소리를 끄집어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카운터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려 구급차에 실리는 두 사람을 보고 있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가 고개를 가로 지며 사라져갔다. 진열장 뒤에서는 죽은 지배인이 몸부림 치고 있는듯했다.

 

 경찰은 목격했던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해달라며 멍한 표정의 나를 흔들었다. 날이 언제 밝았는지 모르겠다. 경찰의 반복되는 질문에 정신을 차렸을지도...


 사장의 전화였다. 다른 직원 구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조카가 죽고, 자신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가 죽어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사장은 편의점이 우선인 듯 했다.

 
 교통조사과 형사라며 명함을 내민 사내는 CCTV를 보여주길 부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테이프를 돌려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서 기지개를 펴고 목운동을 하는 내가 보였지만 아이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니 뭘 보셧길래 목운동 하다말고 한동안 서 있었나요?"

 
형사의 말은 집중할 수 없었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입을 벌려 공기를 거칠게 들이마시고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저 민홉니다. 죄송합니다만 이젠 더 일을 못하겠어요"

 
 사장은 더 하라고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사장이 오면 난 이곳을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경찰과 형사들이 밖으로 나가고 사장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만 더해달라는 사장의 부탁을 거절한 채 앞치마를 풀었다. 월급은 필요 없다고 말하며 짐을 챙기는 도중...

 
 띵그르르

 
 아이가 들어왔다. 사장은 아이가 보이지 않는지 카운터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빨고 있었다. 아이가 조금씩 나에게 다가 오고 있었다. 뒷걸음치며 팔을 휘둘렀고, 뒤도 보지 않고,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목젖까지 거침 숨이 올라 왔다. 뒤를 돌아보자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상채를 숙여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다리 사이로 아이의 모습이 거꾸로 보였다. 아이는 나에게 얼굴을 내밀며 눈앞에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몸서리치며 고개를 들었다.

 

 빠아아아~앙 끼이이이이익~

 
 택시는 전조등(前照燈)을 위아래로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몸이 택시에 밀려  공중으로 떠올랐다. 눈앞으로 죽은 지배인과 아르바이트 학생과, 군복 입은 친구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바닥이 차가웠지만 머리에서 흐르는 따뜻한 액체가 몸을 휘감으며 녹이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눈알을 힘겹게 굴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둘러막았다.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천천히 다가온다...

 

 표정 없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눈앞으로....

Comments

G 2022.09.04 07:12
횡단보도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