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의자

흔들의자

G ㅇㅇ 1 2,356 2022.09.03 19:19

고려장이 부활하기만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의 마찰소리, 알 수없는 중얼거림, 곁에 붙을 때, 숨쉬기 거북한 고린 냄새만은 아니었다. 시험기간, 예민해진 가영이. 이제 막 초등학교의 재미 붙인 가민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더 이상 방관하지 않으리.


 아홉 살. 남보다 일 년 늦게 들어간 학교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마을에서 형, 하며 같이 뛰놀던 동생들이 학교에서 '야' 로 시작하고, 동네서 '야' 로 불리던 친구들은 자신들의 무리에 나란 존재를 외면했다. 그런 학교생활이 중단 된 것은 할머니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삼남매를 키우려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았던 할머니가 무슨 사연으로 큰집에서 작은집인 이곳으로 오셨다.


 학교 가지 않는 날이면 아빠의 불호령과 매를 맞아야 했고, 엄마의 잔소리와 다독거림이 무섭고 지겨웠다. 아들 학교는 꼭 보내겠다며 할머니 방을 두드리던 아빠, 엄마는 몇 일채 못가 포기를 했다. 할머니는 든든한 구세주이자 친구였다.

 
 할머니와 집 앞 공터에서 놀다 병든 고양이를 발견했다. 내가 다가서자 주둥이를 실룩이며 경계를 했지만 할머니의 노련함 앞에 꼬랑지를 내리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부모님 몰래 집으로 들여놓고 목욕을 시켜 할머니 방에 숨겼지만 고양이의 울음까지 숨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빠는 내가 잠든 사이면 고양이를 갖다 버렸고 아침이면 사라진 고양이를 다시 찾아  오기를 수십 번. 끈질긴 고집에 아빠는 혀를 내둘렀고 키우기를 허락했으나 고양이는 수일 내 죽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서 그런 고집을 부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듬해 국민 학교에 편입했다.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견뎌 갈 즈음 할머니가 흔들의자를 사오셨다. 흔들의자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재미나게 해주고, 의자에 태워 흔들거리며 웃음을 짓게 해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은 국민 학교 4학년 수업시간 담임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의 전달을 받아 나를 귀가 시켰다.

 
 나이든 노인의 죽음은, 집안의 큰문제가 아닌 듯, 사촌형들과 나가 놀라는 아빠의 말은 당시에 납득하기 어려웠으나 아들에게 시체를 보여주지 않기 위했음을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삼일장이 지나, 엄마는 흔들의자를 제외한 나머지 유품을 소각 시켰다.

 
 세월이 흘러 스무 두 살의 나이에 대학합격의 기쁜 소식과, 군대영장이란 나쁜 소식을 동시에 들어야 했다. 남보다 2년 늦게 시작해 많은 손해를 겪은 난,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선택했다. 군대만큼은 뒤쳐지기 싫었다.

 
 군대 제대 후, 지금의 착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엄마를 닮은 예쁜 가영이와, 눈 코 입 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가민이를 낳아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한통의 전화였다. 행여 자식들에게 피해주지 않을까 염려하며, 치매 걸린 남편을 혼자 힘으로 병수발 받던 어머니가,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그 자리에서 즉사하셨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도 모른 채 온갖 욕설과, 짜증을 내며 어머니를 찾으셨다. 힘겹게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노인요양원에 아버지를 입원 시키려니, 한 달에 백 팔십 만원 이라는 거금을 지출 해야만 했다. 머릿속은 10년 후로 앞서나가, 약 2억이라는 거금으로 부풀어 졌다.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즐겨 입는 옷들과 평소에 좋아하시던 흔들의자만 집으로 가져왔다.

 
 마음 좋은 아내는 한마디 불평 않고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었으며, 착하디착한 아이들도 할아버지의 방문을 싫은 내색 않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병은 악화 돼 손자들도 못 알아보시고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마구 던졌다. 흔들의자에 앉아 계실 때를 제외 하고는 애들이 들어서는 안 될 심한 욕까지 서슴없이 내뱉으셨다.

 
 흔들의자에 앉혀 둘 수만도 없었다. 워낙 낡을 의자인지라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귀속을 후벼 팠고, 흔들거릴 때, 떨어지는 나무 부스러기가 바람에 날려 이곳저곳을 어지럽혔다. 머릿속은 온통 사악함으로 가득 찼고 인내심도 한계에 다 달았다.


 고려장이 부활하기만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의 마찰소리, 알 수 없는 중얼거림, 곁에 붙을 때 , 숨쉬기 거북한 고린 냄새만은 아니었다. 시험기간 예민해진 가영이.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재미 붙인 가민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더 이상 방관하지 않으리.

 
 고린 냄새가 차안을 돌아다녔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4개의 창을 모두 내려놓고 싶었다. 뒤에 앉아 계신 아버지는 머리칼을 잡았다, 펴시며  운전을 방해했다. 두 시간을 차안에서 고린 냄새와 아버지의 괴롭힘을 견뎌 도착한곳은 평소에 가족들과 주말마다 즐겨오던 깊은 산속의 계곡이었다.

 
 차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기에 차 뒤 문을 열고, 아버지의 팔을 댕겨 어깨에 걸쳤다. 입술이 떨리며 눈물이 흘렀다. 차갑게 내리는 빗살은 아버지의 한복을 적셔 앙상하게 남은 뼈마디를 비쳤고 듬성듬성 얼마 없는 머리칼은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말과 다른 행동으로 아버지와 난, 산 정상을 다가섰다. 오르는 동안 흐르는 눈물이 이곳에 내린 비의 양보다 많았는지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계곡물은 내린 비에 불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쳤고, 작은 폭포는 자신의 키보다 큰, 물을 내리며 찢어질듯 소리를 냈다.

 
 추위에 '바들바들' 떠시는 아버지를 계곡 가까이 다가서게 했다. 등 뒤로 다가가 폭포사이로 밀치려 했지만 손이 떨어지질 않았다. 지난 세월의 아버지가 하나 둘 떠오른다.

 
 약주한잔 드신 날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부르짖으며 이유 없이 매질을 하셨던 아버지. 학교성적이 좋지 않아 포기 하려 할 때, 옆에서 다독 거려주신 아버지. 병든 고양이를 주서와 갔다버리면 다시 주어왔던 날, 이해 해주시던 아버지. 아버지.아버지.아버지.

 
 '아버지 이 불효막심한 놈을 용서 하지 마세요.'

 
 아버지의 등이 손에서 떨어졌다. 계곡 사이사이 바위에 몸을 부딪치며 떠내려가는 아버지.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생각조차 나질 않는다. 시속 180KM 이상 속력을 밟은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소주로 가슴을 달래며 잠자리로 향했다.

 
 다음날. 아이들과 아내는 아버지가 사라졌다며 어수선 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내에게 고백 하려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제의 괴로움은 점차 잊혀 갔고 배고픔을 달래려 주방을 나서다, 거실 모퉁이에 자리 잡은 흔들의자를 보았다. 계곡 바위를 부딪쳐 가며 몸부림치던 아버지가 떠올라 밥맛이 사라져 방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주방에 갔다 다시 돌아온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산악회 모임을 가려고 등산복을 찾고 있었다. 침대에 몸을 던지며 아내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로가?"

 
 "응 오늘은 우리 자주 가던 산 알지? 애들하고 가던데"


 "뭐!"

 
 갑자기 커진 목소리에 아내는 당황했던지 등산복을 갈아입다 말고 눈을 깜박였다.

 
 "가지마. 어제 비와서 계곡물이 많이 불어 있을 거야"


 "아혀 참 언제는 그렇다고 안 갔어? 그리고 그  산은 많이 당겨봐서 잘 알어"

 
 "가지 말라믄 가지마!"

 
 아내는 내말을 무시한 채 기분상한 표정을 보이고 입던 옷을 마저 입었다. 아내가 나가지 못하게 잡아야 했으나 만약 시체라도 발견되면 더욱 의심 받을 것 같았다. "쾅" 하고 현관문이 닫히면서 아내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밖을 나갔다. 피곤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삐그덕.삐그덕]

 
 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귓속을 파고들던 소리였다. 잘못들은 소리려니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삐그덕.삐그덕]

 
 심장이 터질듯이 콩닥 거렸고, 코 밖으로 나오는 거침 숨소리가 귓가로 들렸다. 이불을 발로 걷어차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거실 밖 베란다의 창문이 열려있었다.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락날락 거리며 흔들의자가 흔들렸고, 흔들리면서 ‘삐그덕‘ 거렸다.


 의자 손잡이를 잡고 질질 끌어 현관 밖으로 나갔다. 쓰레기더미 옆에다 던져 버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삐그덕.삐그덕]


 귀로는 안 들리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서랍을 뒤져 진정제를 찾아 입에 넣고 신경질적으로 씹어댔다. 씹는 동안은 ‘삐그덕’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눈꺼풀이 내려오면서 잠에 들었다.

 


 언제 왔는지 아내는 전화통화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애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다시 학원에 가는지 방문 사이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 밖을 나갔다. 빈속에 진통제를 씹어 먹고 잤더니 속이 메슥거렸다. 아내는 통화를 마친 후 반상회를 한다며 서둘러 나갔다. 머리가 어지럽고 기운 찾기 힘들었다.


 [삐그덕.삐그덕]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지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머릿속이 아니다. 귓가에서 맴도는 소리였다. 설마. 가슴을 조이며 조심스럽게 거실로 걸어갔다. 긴장한 탓에 눈은 반사적으로 감겨졌고 눈이 떠지자. 그 자리 그곳에서 흔들의자는 ‘삐그덕’ 거렸다. 아내에게 당장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뭐 하는 거야! 내가 버리고 뭐 하러 가지고 들어와"


 "무슨 소리에요 뜬금없이? 당신 오늘 왜 그렇게 짜증내고 화를 내요?"

 
 "의자 모하러 가지고 들어 왔냐고"


 "무슨 의자요? 당신 왜 그래요? 아버님 사라진게 나때문이에요? 제가 뭐 아버지 한테 서운하게 한거 있어요?"

 
 울먹이며 말하는 아내에게 미안함이 생겨 전화를 끊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삐그덕.삐그덕]


 저 소리 듣기도 싫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도 않고 있다. 현관을 열어 고정시켜놓고 힘을 다해 의자를 들어 올렸다. 계단을 내려가 쓰레기 더미로 깊은 곳으로 던졌다. 집에 들어와서도 한참동안 ‘삐그덕’ 소리가 들려왔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주려 나가던 난 문을 열고 경악을 했다. 가민이가 흔들의자를 힘겹게 집안으로 들여 놓으려 하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야?"

 
 "아빠...이거 버려져 있길래..."

 
 "아빠가 버린 거야 뭐 하러 주서와 ! 아까도 너가 주서 온거야?"

 
 "응...난 그냥 할아버지 오시면 필요 하실거 같아서.."


 "아빠 말 잘 들어 할아버지 먼 곳에 가셨으니까 이제 안 오셔 그러니까 이 의자 버려 알았지?"

 

 가민이가 의자를 버리고 집에 돌아와 방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에서는 소리가 지워지질 않고 있었다. 문득 예전에 고양이를 몇 번이고 주서오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삐그덕’ 소리가 지워지질 않는다.

 

 [삐그덕.삐그덕]

 
 누구 고집을 닮았는지 가민이는 내가 잠든 사이 의자를 주서다 놓았다. 갖다버려도 다시 들고 올 것 같은 느낌에 의자를 망치로 부셨다. 부서진 나무를 주서 현관 앞마당에 던져 불을 붙였다. 불에 타오르는 순간에도 '삐그덕' 소리는 더욱 커져 가고 있었다.

 
 귀를 막고 있어도. 노래를 틀어도. 소리를 질러도. 머릿속은 ‘삐그덕’ 거린다.

 


 흔들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가민이가 여자를 데리고 왔다. 결혼할 상대라며 나에게 말해주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가민이는 날 아빠라 부르지 않는다. 아버지라 부르며 나의 이상한 행동에 가끔 짜증을 낸다. 바지에 똥을 쌌는지 물컹거렸다. 정신병원에서도 포기한 날 끝까지 지켜주는 아내가 있어 고맙기만 하다.


 가민이는 차에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향한다. 내 몸에서 고린내가 났던지 코를 킁킁 거리며 4개의 창을 모두 열어 놓는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전하는 가민이의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차가 멈춘 곳이 낯설지 않다.

Comments

G 2022.09.0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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