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 그곳에선

그 자리 그곳에선

G ㅇㅇ 1 1,929 2022.09.02 14:42

미니스커트가 짧을수록 경제가 불황이라지만 반팔 티셔츠가 땀에 젖어 등줄기에 붙어 끈적거리는 이 더위에 경제 불황이란, 좀 배웠다고 떠들고 다니는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쓰레기 같은 장사속 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남자인 나도 체면불구 하고 입을 기회만 준다면 지금이라도 속옷을 벗어 던지고 입고 싶다.



하지만 이런 나의 행동이 무색하게 느끼게 해주는 청년이 여기에 있다. 다른 이들이 반팔티를 입고, 그것도 더워 어깨까지 소매를 걸치며 일을 하는 동안 그 청년만큼은 긴소매에, 멋을 내기 위함이 아닌 낡고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는 청년...


그 청년이 나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던 것은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각박한 삶에 지쳐 서로의 이름커녕 얼굴도 모른 채 지내며 가벼운 농담이나 눈인사도 받기 힘든 때였다.



두 달 전 그날 유난히 말없고 조용하던 그 청년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입에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져 심한 경련을 일으킬 때 누구 한사람 그에게 다가 가지 못한 채 웅성거릴 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난 아무 일 아닌 듯 그 청년에게 다가가 바람이 부는 창가에 끌고가 입에 젖은 물수건을 물려주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청년은 의식을 찾았고 주위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은채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사람들은 청년과 나를 번갈아 보며 수군거렸지만 난 동생이 간질을 앓고 있는 터라 그리 크게 동요 되지 않았다. 청년역시 나를 한번 쳐다만 봤을 뿐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공장안은 하나의 거대한 전기밥통 속 같았다.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작업을 할 만큼 더운 곳이 여름이 다가오자 숨쉬기조차 거북 할 정도로 답답하고 뜨거웠다. 공장장은 아직은 에어컨 돌리기엔 너무 이르다면서 직원들에게 이해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건 부탁이 아니었다. 하나의 제재였다.

사람들은 공장장의 제재에 마지못해 단 한마디 못하며 무더위와 하루하루를 싸워나갔다 하지만 유독 그 청년만큼은 아직도 긴소매의 옷을 입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난 조심스레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저 날씨가 꽤 더워지죠...공장장은 에어컨 돌릴 생각도 하지 않고 이거완전 찜질방이 따로 없네요. 하하"

"....."

"안 더우신 가여 아직까지 긴팔티를 입으시면 더우실 텐데..."

"....네"


그는 아주 짧은 대답만을 남긴 채 화장실로 도망가다시피 그 자릴 피했다. 머쓱해진  나 역시 그 자릴 피해 내 자리로 돌아와 일할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야근이 있는 날은 시간이 더욱 늦게 가는 것만 같았다.

오늘 야근하는 사람은 나와 그 청년, 그리고 이름 모를 아줌마였다. 오후7시가 지나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퇴근을 하고 우리 셋은 여전히 공장에 남아 기계를 돌렸다. 안 그래도 썰렁한 공장안은 사람들이 모두 퇴근을 하자 더욱더 적막감이 흘러내렸다. 그저 시끄러운 기계소리만 공장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몇 시간을 일하니 조금 출출하기 시작했다. 난 집에서 싸온 빵 한 봉지를 꺼내 먹으려던 순간 아줌마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이야!!!!!!저리가!!!!!!!!"

내가 아줌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을 때 그 광경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욱 소스라쳤다. 청년은 눈알을 뒤집어 깐채 흰자만을 남겨두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침착 하려고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간질 증세랑은 뭔가 틀렸다. 더욱 심하게 발작하고 중얼거림 뭔가 귀신이라도 쓰인 사람 같았다. 난 들고 있던 빵을 그의 입에 물리고 다시 그를 창가로 끌고 갔다 그는 심하게 반항했다. 그의 반항 끝에 오른팔안쪽에 상처를 입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를 땅바닥에 팽개치고 아픈 팔을 감싸 잡았다.

그는 그렇게 바닥에서 빵을 물고는 의식을 잃었다. 땅에 쓰러져 있던 그가 안쓰러워 보였던 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의자에 앉히려는 순간 그의 팔뚝 안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그의 양손 안쪽에는 자살을 시도 한 듯 칼자국과 수술자국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청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아직까지 청년이 무서운지 구석에 숨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도 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려는데 힘도 빠지고 배도 너무 고파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다. 정수기 앞에 간 나는 말없이 냉수만 몇 잔을 들이켰다.

다음날 출근하려고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했다. 어젯밤에 그 청년과의 몸싸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번 더 결석하는 날에는 사표를 쓰라던 공장장의 말을 떠올리며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공장에 나갔다.



난 습관적으로 그 청년의 자리를 보았다. 청년은 보이질 않았다. 어제일로 인해 창피해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양쪽 팔에 상처가 신경이 쓰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무슨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점심시간, 다들 각자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 힘없이 먹기 시작 하려던 차에 공장장이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곤 사라졌다.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저 애석하게도...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이군이 자살을 했다 더군요 여러분들도 아셔야 할 것 같기에.."

공장장이 내던진 한마디에 또다시 공장안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다들 밥맛을 잃었는지 숟가락을 휘젓고만 있었다. 난 그 청년 팔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자살을 택한 이유는 정확히는 몰라도 그가 어제 일로 자살을 한 것 같아 나 역시 숟가락을 휘저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 청년의 일은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공장안은 예전의 따분한 기운만 감돌고 있었다.


"저 김씨 미안하지만 오늘 경비직원이 안 나와서 그런데 하루만 초소에서 일해주면 안될까?"

"제가여? 전 초소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잘모.."

"아니야 알고모르고가 뭐있나 그냥 가만히 앉아서 카메라감시와 주차장 감시 만하면 될 뿐인걸"

"...아네"

공장장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평소 경비들은 뭐하면서 월급을 받아 가는지가 궁금했기에 시원찮은 대답을 남겼다.

초소에 앉아 느긋이 담배를 하나 꺼내 피곤 감시카메라의 모니터를 주시했다. 모니터에는 공장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보였다. 은근히 흥미로웠지만 저안에서 나 역시 저렇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테이프의 내용이 지겨워지자 난 순찰을 돌기위해 초소 키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한 달간의 테이프 기록을 볼 수 있었다.한 달 간의 테이프 역시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공장안에서의 따분한 하루하루가 지나갈 뿐이었다.

그때...

나의 모습 뒤로 이군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빵을 꺼내 먹으려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군이 자살한 날인 것만 같았다. 난 입을 굳게 다 문채 그 광경을 보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그 자리에서 뛰어나왔다.


테이프가 돌아가면서 이군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군주위에는 수많은 물체가 이군에게 달라붙었다. 이군은 이 물체들을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고 그 물체들은 하나의 형성이 이루어졌는데 그 물체는 또 다른 이군의 모습 이었다. 칼로 온몸이 난자해진 이군의 모습...이군은 그 또 다른 이군과 싸우기 시작했고, 내가 달려가 이군에게 빵을 입에 쳐 넣고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자 또 다른 이군이 나의 팔을 물었다. 그러자 이군은 날 때어내려 밀쳤고 난 그것도 모른 채 이군을 땅바닥에 팽개친 것이다.

뭔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그때 다친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팔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자리 그곳에서

Comments

G 2022.09.03 11:13
미스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