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자폐증

어둠자폐증

G ㅇㅇ 3 2,229 2022.09.02 14:41

'언니와 형부도 피곤해서 사고가 난것이 아니다 저 괴물같은...'

 언니와 형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의 아들인 형식을 모른 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정신병의 일종인 [어둠자폐증]을 앓고 있었지만 언니와 형부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생전의 언니는 불임판정을 받고 자살시도를 번번히 해왔었다. 형부와의 갈등보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애를 가질 수 없다는 비관으로 하루하루를 죽기위해 사는 듯 힘겹게 지내왔었다.

그런 언니에게 임신은 인생의 전환점이자 다시금 살아가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였다. 첫아들이자 마지막 아들인 형식이 날이 갈수록 발작이 심해졌던 것이다.

발작의 원인을 몰랐던 형부와 언니는 병을 찾아내려고 대학병원에서 동네 한의원까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정신병원에서 형식이의 병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둠자폐증] 어둠이 있는 곳을 보면 심한 발작을 일으키며 심한경우에는 쇼크사까지 가는 국내의학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조차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다. 약이라고는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먹여서 재울 수 있는 진정제와 수면제뿐이었다.

 언니와 형부가 죽던 그날 언니의 마지막 음성이 머릿속에서 귓가로 울려 퍼진다.

 "형식이가 또 발작을 하는데, 여기 병원은 약이 없는 것 같아 내가 거기로 갈께 약 좀 사둬라"

 언니와 형부는 형식의 약을 얻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달려오다 비명횡사한 것이다. 아직까지 교통사고의 원인은 파악이 안됐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형식의 약을 구하려고 나에게 오던 중 형부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난 것 같았다.

 형식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남편과 딸 민지는 거부감을 명확히 드러냈다 한 식탁 에서는 밥도 같이 먹지 않았으며 형식이의 용변을 받아 거실로 가지고 나올 때면 안방으로 들어가 한동안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민지는 이해할 수가 있었으나 남편의 행동에는 내심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언니자식도 따지고 보면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 인 것을...

 형식의 방에는 침대며 책상 심지어는 장난감조차 없다. 방안에는 랜턴 과 후레쉬만 방안을 밝힐 뿐,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다.

처음에는 장난감과 침대도 새로 마련해 주었지만 침대 아래 어두운 곳을 보곤 발작을 해 침대를 치우고, 장난감은 랜턴으로 비추었을 때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발작을 보였기에 모두 치워야했다.

 형식은 오직 랜턴과 후레쉬만 가지고 놀았다. 놀거나 잠잘 때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랜턴을 비추며 밥을 먹었다.

그런 형식의 버릇을 고치려 노력도 해봤지만 랜턴을 손에서 빼거나 랜턴의 불이 꺼지면 형식은 입에 거품을 물고 눈동자를 심하게 흔들며 발작을 해 포기해야만했다.

 그렇게 힘겨운 날들이 반복 되며 반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민지와 남편은 시댁으로 가서 며칠 째 연락도 하지 않고 가끔 집에 들어 올 때는 옷과 필요한 짐들만 챙긴 채 집을 나갔다.

 예전이 너무 그리웠다.

내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면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놀라게 하던 민지와 남편, 민지의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남편이 민지에게 인형을 안사주자 엄마가 최고라며 아빠에게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던 민지, 자신의 아내가 힘들까봐 새벽에 일어나 빨래며 설거지, 청소까지 다해 두었던 남편...

 어느새 눈앞이 아른거리며 뜨거운 눈물이 화장기 없는 얼굴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난 뺨을 흠치고 형식이의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방안은 랜턴과 후레쉬 빛으로 산만하게 눈을 어지럽게 하였다.

형식은 내가 방문을 연 것도 모른 채 랜턴을 자신의 눈앞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형식아 밥 먹어야지"

 "이모? 언제 들어왔어? 나 밥 줘 배고파"

 "형식아 건전지 갈아 끼워야 하니까 손에서 내려놔"

 "싫어!"


 형식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 가족과 떨어져 살아가면서 형식을 키워야하는지, 고아원이나 다른 곳에 입양을 시킬 방법은 없는지, 하지만 언니의 외모를 닮은 형식을 보면 언니가 떠올라 그 생각을 마음속으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형식은 식탁위에 음식물을 흘려가며 밥을 먹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뜰 때 밥그릇을 한동안 찾아가며 밥을 먹었다 형식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워지기 시작했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형식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들짐승처럼 보여 졌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대학시절 즐겨 읽던 시집을 펼쳤다. 시집 속 글씨들이 뿌옇게 보였다

난 눈을 길게 감아 다시 떠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형식을 쳐다보기 싫어 랜턴 빛에 시선을 고정시켜 그런 것 같았다.

 요즈음 눈이 자주 침침하고 뻣뻣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은 나아졌기에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제 부터는 커다란 사물조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난 형식의 방문을 열어 형식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집을 나와 안과에 들렀다.


 "언제부터 그랬죠?"

 "7개월이 조금 안 되는 군요"

 "전에 왼쪽이 2.0 오른쪽이 1.8 이라고 하셨나요?"


 "네"

 
 "지금은 많이 심각 합니다 왼쪽, 오른쪽 모두 마이너스입니다 그리고 눈의 색이 많이 변해 있습니다. 검은색 망막이 회색으로 변해군요"

 가슴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자식도 아닌 형식 이를 돌봐 주면서 얻은 것이라곤 시력감퇴 뿐이라는 사실이 나의 머릿속을 흔들기 시작했다.

 '언니와 형부도 피곤해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다 형식이 저 괴물 같은 놈을 돌봐주다 시력이 상해서...'

 난 돌아가는 길에 침침한 눈을 비비적거리며 어렵게 집을 들어갔다.

형식이 놈은 여전히 랜턴을 가지고 놀며 자신의 방 가운데서 뒹굴 거리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는 내방으로 들어갔다. 문 닫는 소리에 놀랐는지 형식은 방에서 나와 내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이모 안에 있어? 이모? 방에 있는 거야?"

랜턴을 자신의 눈에 비치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형식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순간 적으로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문 쪽으로 던졌다.

 "으악"

 스킨 병이 형식의 이마를 명중 했는지 형식은 이마를 만지며 문 앞에서 쓰러 진거 같았다. 순간 난 너무 놀라 형식에게 달려갔다.

형식이를 안고 가까이서 보니 이마에서 피가 흘러 얼굴과 몸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형식 이를 부둥켜안았다.


 "미안해 형식아 미안해 이모가 잘못 했어 정말 미안해"

 "이모...왜 그래 갑자기 나 머리 아파"

 "그래 이모가 잘못 했어... 다신 안 그럴게 이모가 실수 한 거야"

 
 다행히도 형식은 정신을 차렸고 이마를 만지며 일어나 랜턴을 주었다. 랜턴 빛에 반사된 형식의 얼굴은 측은했다.

옷소매를 끌어내려 이마를 닦아주다 형식의 눈을 보자 나도 모르게 형식을 밀어버렸다. 형식의 눈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고 눈의 초점도 없었다.

 형식의 눈 역시 빛을 많이 쬐여서 변해버린 것이다.


 "형식아 너 사실대로 말해 이모가 보여 안보여?"

 "이모... 왜 그래 난 아무것도 보기 싫어 그냥 하얀 것만 보고 싶어"

 "너 사실대로 말 안하면 이모 화낸다. 빨리 말하지 못해"

 "몰라 아무것도 안보여 밥 먹을 때도 밥그릇이 안 보인다 말이야"

 
 형식이 밥을 먹을 때마다 자신의 그릇을 찾아 헤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형식을 다시 품으로 끌어안고는 울기만 했다.


 '이 불쌍한 아이를 이렇게 버려둘 수는 없어. 내가 눈이 멀어진다 해도 ...'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민지의 장래도 생각해 달라며 이혼을 하자고 어렵게 말을 꺼냈고, 짐을 싸두라고 부탁했다. 전화 수화기를 한동안 들고 있었다.

문 밖을 보니 형식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랜턴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까지도 측은 하고 불쌍해 보였던 형식의 모습이 다시 들짐승처럼 보였다.

침대에 일어나 형식을 자신의 방안에 가둬 두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나질 않았다.

 난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형식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쉬게 했다.

바닥에 떨어진 피들은 이미 굳어버렸는지 걸레로 잘 닦이질 않았다. 눈앞의 모든 것들이 뿌옇게만 보여 갑갑해졌다.

 침대에 다시 눕자 형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모 나 밥 줘 배고파"

 
 일어나지 않았다. 형식이의 칭얼거림 속에서 잠에 들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이 부셔 잠에서 깨어났다.

형식은 내침대위로 올라와 랜턴 한개 로는 자신의 눈을 또 다른 한개 로는 나의 눈을 비추고 있었다.

형식을 밀치고 소리를 질렀다. 형식은 내 모습이 재미있던지 다시 랜턴을 비추었다.

 난 주방으로 기어 나갔다. 흐릿해진 눈 때문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손의 감각을 더듬어 칼을 찾았고 형식이가 있는 방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하지만 형식 이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거실로 기어 나와 손을 더듬어 형식을 찾기 시작했다. 눈을 비벼댔지만 눈은 여전히 뿌옇게만 보였다.

 형식이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이리저리 나를 피해 다녔다. 마치 '숨박꼭질' 놀이를 하자는듯

 
 "이모 배고파 나 밥줘"

 "너 어디야 빨리 이리 안와?"

 
 형식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귀의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때 현관 쪽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난 현관 쪽으로 재빨리 기어가 형식의 등을 칼로 내리 꽂았다.

형식은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한 채 현관 신발장에서 쓰러졌다. 칼이 손에서 떨어지질 않았으며, 두려움도 없었다.

다만 흐릿해진 눈에 피가 튀어 앞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난, 손을 더듬어 형식의 머리를 찾아내 눈쪽을 마구 찔렀다.

수없는 반복끝에 칼끝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성을 찾았을때 이미 형식의 목은 난도질 끝에 목이 잘려 칼끝에 박혀있었다.

 난 다시 힘겹게 몸을 끌어 방을 찾아 들어갔다.

침대위로 올라가 남편과 민지를 떠올리며 죽기위해 칼을 목 위에 올려놓았다. 눈물이 흘렀다.

죽은 언니와 형부, 그리고 불쌍하게 죽은 형식까지 떠올리며 칼을 쥔 손에 힘을 가했다.

 그때 휴대폰에서 신성우의 "서시" 가 방안을 울렸다. 남편의 전화였다. 남편은 저 노래를 부르며 나를 항상 즐겁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내목은 칼로 인해 반쯤 잘려나가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손을 휘저어 핸드폰을 잡았다.

 
 "나야 지금 민지 집에 왔지? 민지 옷만 싸서 내려 보내"

 
 남편의 목소리와 함께 불빛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이모 밥 안줘?"

Comments

G 2022.09.03 11:26
이 무슨,기괴스런..
G ㅇㅇ 2022.09.03 19:21
평가 감사드립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G ㅇㅇ 2022.09.03 19:21
안녕하세요. 공포글 작가 지망생입니다.
벌써 비추천이 하나 찍혔네요.

혹시 비평할 것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좀 더 정확하고 간결하게 묘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