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 비견에 관한 글

사주팔자 비견에 관한 글

G ㅇㅇ 1 2,908 2022.08.25 13:03

비견이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육친상의 용어입니다.

음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와 같은 오행.

그보다 1차적으로는 나를 의미하고 내 몸, 친구, 형제, 함께 무리를 이루는 집단이 될 테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아래 위로 2,3살 차이 정도는 충분히 카버하기도 하지요.

추상적으로는 의지, 고집, 분투심, 경쟁력이 되기도 하구요.

인간은 시대를 살고 역사를 살기에 비견에 대한 해석도 시대마다 다를 텐데요.

예를 들어 지금보다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성향이 강했던 시대에는 비견의 중요성이 요즘 만큼은 아니었을 겁니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집단의 중론이 중요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환경을 보자면 불과 6,7십년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개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요.

개인보단 가족이, 가족보다는 국가가 우선이었고 개인은 국가와 사회라는 대명제 아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이외에 별 다르게 요구되는 건 없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개화기 이전의 유교 봉건 시대의 잔재도 있었겠지만, 일단 전쟁을 겪고 난 이후의 폐허 위에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표가 분명히 서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지금은 개인의 시대가 되었으니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주체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가족 가운데 좀 쳐지는 인물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가족 내에서 그를 책임져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의지는 한계가 있겠지만 함께 간다, 함께 책임을 져준다는 생각 자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미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요즘에는 네 밥벌이는 네가 해라, 네 인생 왜 내가 책임지냐 등등으로 변했지요. 대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너가 하고 싶은 대로 살되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 정도의 생각이 사회 전반으로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

물론 세대간의 차이라는 게 있어서 지금도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예전의 삶의 양식과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요.

시대의 상황이 집단보다는 개인에 방점을 찍으면서 인간은 뭐랄까 좀 외로워졌습니다.

밥벌이를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홀로서기가 중요해졌으니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은 괜시리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고 걱정거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굳이 의지가 강하지 않아도 남이 시키는 대만 해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만약 지금에 요구되는 인간상, 자기의 주체성을 갖고 능력 있고 자신의 삶을 관철시킬 수 있는 인간이 과거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오히려 저 녀석은 쓸데없이 고집 세다고 주위의 걱정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인간이란 시대 역사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주를 보는 사주쟁이도 그에 따라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오행이라든가 육친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주쟁이는 사주를 보기에 앞서, 인간을 바로 보자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봉건 사회에서는 계급이 중요했지요. 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타고난 가문의 고저가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관을 신성시하게 되는 시각이 생겼을 것이구요.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니 만큼 관보다는 재성이 더 중요해졌지요. 따라서 지금이 관인의 시대라기보다는 식재의 시대라는 건 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따라서 관을 잘 쓰는 사람보다 재를 잘 쓰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잘 나가고 귀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까닭에

오늘날의 사주쟁이는 일간과 재성의 관계를 더 중요시봐야 한다는 의견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견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습니다만 자본주의는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동양, 그 중에서도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역사주의적인 시각이 인간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습니다.

이른 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주의 같은 건데요.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요하고 집단의 결과물들이 하나둘 모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그에 헌신한 인간들은

무슨 왕조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 덕택에 우리의 삶이 있고, 우리의 왕조가 있으며 우리 왕조의 명예의 전당에

그 사람의 이름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단다 같은 거지요.

그러니 우리들도 노력하여 우리 왕조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힘쓰자. 양반들은 이름을 남기고 왕조에 보탬이 되도록 고민하고

일반 중인 계급이나 하천민은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바에 일하며 양반들이 뭔가를 이룰 수 있게 힘을 보태자라는 생각.

이러한 시각이 유교적인 시각이고 이러한 시각으로 예전의 사람들은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 때에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상위의 이념은 역사와 그 역사의 창고를 가능케한 무슨무슨 왕조 같은 게 되겠고요.

따라서 신의 뜻 아래에 왕이 있고, 왕 아래 군신이 있으며, 군신 아래, 왕과 군신의 세계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학자 집단이 있고,

학자 집단은 다시 왕의 세계를 본따 가족 관계를 정립하고 가족 안에서는 아버지가 왕의 역할을 맡게 되는 가족상을 이론적으로 정립하지요.

이러한 체계에 대해 자본주의의 체계는 돈이라는 태양이 저 하늘 아래 빛나고 있고 그 아래 모든 인간관계를 평등한 개인으로

재편성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가권을 장악한 아버지가 지금은 돈 벌어오는 아저씨 정도로 그 위치가 강등되었고

왕족 또한 하나의 사람일 뿐이며

장동건과 저 인간의 힘은 비록 그 타고난 외모의 고저가 현격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인간이 되지요.

장동건보다 저 인간의 힘이 돈을 더 벌면 장동건보다 귀한 사람이 되는 게 자본주의 사회인 겁니다.

예전에는 동네 어르신이라면 무조건 존경하는 척이라도 해야 타당했지만 요즘은 나이 먹어도 돈 없고 능력 없으면 그냥 동네 영감이지요.

따라서 저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비견 대 비견의 관계로 전환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경쟁하는 경쟁사회에 우리는 있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머리 깎고 산에 올라가지 않는 한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이 벗어날 수 있는 방도는 없지요.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예전에는 5,6년 정도 앞선 학번이면 도저히 비견으로 볼 수가 없었는데요.

요즘에는 먹어야 할 돈을 앞에 두고는 선배도 후배도 없지요.

직장 상사라 하더라도 부하 직원을 만만히 볼 수가 없어요. 성과가 중요하니까 부하직원이라 하더라도 상사 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게 되면 얼마든지 위치가 뒤바뀔 수가 있거든요.

자본의 시대, 경쟁의 시대 앞에서는 옛날의 고색창연한 선배니 후배니, 누가 더 나이가 많니 하는 시각으로 관과 식상을 나누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거라는 겁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같은 나이 많은 선배라 하더라도 나의 돈벌이를 책임져주고 일자리라도 알아봐줄 수 있는 선배를 관이라 할 것이고

아니면 그냥 비견이고 맞먹을 수 있는 아저씨라는 겁니다.

돈이 안되면 낳아준 부모라 하더라도 버림 받는 무서운 시대입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제 얘기는 받아들이는 분에 따라 분명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류의 것이기도 할 겁니다.

저는 그러나 도덕을 떠나 인간 자체, 인간이 이루는 사회 자체를 보자는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과 맞먹자 이런 얘기도 아니고요.

다만 사주쟁이라면 이러한 현상을 포착하고, 현상에서 변화하는 비식재관인의 관계에 대해 사주 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저는 일간과 재성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에 보태어 일간이 경쟁자와 이루는 관계 역시,

이 세계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해질 것이라는 시각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같은 사주라도 경쟁에서 밀리거나 앞서간다는 느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거지요.

이건 돈을 얼마 버느냐와는 또 다른 차원의 얘깁니다.

비록 먹고 살 만하고 돈이 많아도 같은 무리 안에서 차이가 나고 밀리는 느낌이 들면 알 수 없이 착찹해지는 게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결국 경쟁에서 승리하여 앞서 나가는 관념이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한 인간이 밀고 나갈 수 있는 주체성 뿐만 아니라,

비견과의 관계에 따라 울고 웃고 하는 인간상이라는 것을 절대, 결단코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요. 

Comments

G 2022.08.27 11:44
비견;함께 어깨를 나란히하는,팀 동료 멤버 형제자매 친구 편.
겁재;서로 차지하고 쟁취하고자하는,경쟁자 라이벌 상대.
겁재의 관계보다 비견의 관계가 되면,서로 상부상조 협력협조하면서 친목을 유지하고 좋은 사이 필요하고 반가운 사이가 되겠죠.(이 역시도 균형과 조화 즉,중용의 문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