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구멍

G 카이나드 1 4,216 2021.12.23 02:33

오래되고 허름한 3층 건물. 건물 주변엔 오물자국들이 득실거리고, 시멘트 벽들은 갈라져 금방이라도 무너질 추세다.
하지만 나는 그런건물로 왔다. 이곳에서 살고싶은것은 아니지만, 이만한 가격에 집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가난한 자취생인 나에게는 그야말로 안성마춤인 것이다. 삐거덕 거리는 현관문을 밀치고, 집 내부로 들어섰다. 생각보단 깔끔한 내부. 하지만 고약한 곰팡이냄새가 득실거린다.
코를막고 신발을 벗어던진채 방안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곰팡이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내었다. 자그만한 1인용 침대위에 하얀 시트가 점박이무늬 마냥 곰팡이가 피어있다. 당장 내다 버리고싶었지만, 일단은 가져온 짐을 풀기 시작하였다.

 

 

 


1시간여가 지난후, 집안은 더욱 깔끔해져있다. 곰팡이가 피어있던 시트는 집주인 허락도 없이 내다 버렸다. 그러자 곰팡이 냄새는 씻은듯이 사라져있다.
 큼직한 쇼핑백안에서 벽걸이용 옷걸이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못과 망치를 들어 한쪽벽면에 못을 박기시작하였다.


-쿵! 쿵! 쿵!


-콰직! 우수수~


낡아빠진 건물이라서 그런지 못을 박는도중 벽에 주먹만한 구멍이 나버렸다.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 거리며 어찌할바를 모른다.


"이게.. 무슨짓이죠?"


주먹만한 구멍너머 찰랑한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여자가있다. 그녀는 황당한듯 눈을 동그랗게 뜬채 구멍너머 나를 바라보고있다.


"죄..죄송합니다.. 못을 박다가 그만.."


머리를 긁적이며 수도없이 사과를했다. 하지만 좀처럼 그녀는 화가 풀리지 않는모양이다. 씩씩 거리던 그녀는 어디론가 향하더니 까만 천을 들고왔다. 그리고는 나의 말엔 대꾸하나없이 구멍을 까만 천으로 가려버린다. 물론 나의 잘못이지만, 너그럽지못한 그녀의 행동에 어이가없었다.

 

 

 


그이후 한달여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단 한번도 옆집여자를 본적이 없다. 문뜩 그여자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구멍이 뚫려있는 벽면으로 다가가 귀를 대었다. 방음이 좋지 않은 건물이라 작지만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탁! 타닥! 타닥!


"저기요~"


자그마한 소리로 그녀를 불러보았다. 하지만 대답이 없자, 이번엔 좀더 소리높여 그녀를 부른다.


"저기요!!!"


잠시후, 구멍을 가리고있던 까만 천이 걷히고 그녀의 땡그란 눈이 보였다.


"저 부른건가요?"


"네.."


"무슨 일인데요?"


"그냥.. 이웃인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도 하고해서.."


그녀는 가소로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지금 많이 바쁘거든요? 그러니까 신경끄고 사세요."


그녀는 다시 까만천으로 구멍을 가려버린다. 그러자, 왠지모르게 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어 테이프로 붙여놓았던 까만 천을 뜯어버렸다.


"아니, 이웃인데 너무 막대하시는거 아니에요? 구멍을 뚫은것은 잘못했는데요. 제가 사과를 하지않습니까?"


꽤나 엔틱스런 나무의자에 앉아 형사들이 심문을 할때나 쓸법한 수동타자기를 두드리고있던 그녀는 열이오른 얼굴로 구멍쪽으로 다가왔다.


"이게 무슨짓이에요?!! 경찰이라도 불러야지 정신차리겠어요??"


"아~ 거참 진정하시고, 뭐하시는 분이세요?"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지으며, 그녀에게 질문하였다. 더더욱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그녀는 구멍너머 나의 얼굴로 침을 뱉어버렸다.


"앗! 뭐야?!"


"하하하, 저한테 까불면 이렇게 되는거에요. 알겠어요?"


하지만 나는 개의치않은 표정을 지으며 손등으로 그녀의 침을 닦아내었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뭐하시는 분이에요? 히히"


그러자 그녀는 발을 동동굴리며 얄미워했다. 그리고는 이제 나에게 신경 안쓸꺼라는듯이 의자에 앉아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이야~ 멋진 타자기인데요? 그걸로 뭐하는건가요?"


"소설씁니다."


"아아아~ 소설가이셨구나~ 멋진 직업이네요."


"작업의 방해가 되니까 그만 사라져 주시겠어요?"


"싫은데요? 히히"

 

 

 


작은 구멍너머 그녀와 나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누구하나 물러남 없이 서로에게 약을 올렸다. 하지만 매번 승리하는것은 나의 쪽이였다.


"아아악!! 얄미워!! 이사를 가던가해야지!!"


그녀는 머리가 산발이 되도록 손으로 쥐어뜯으면 고함을 쳤다. 나는 그녀의 그런모습이 점점 귀엽게만 느껴진다.
얼굴도 저만하면 반반한게 손색이 없을정도이다. 나는 점점 그녀의 톡톡튀는 매력에 빠져들고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졸린눈을 비비며 구멍으로 다가갔다. 손쉽게 천을 뜯어버리고는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도 방금 잠에서 깨어났는지, 초췌한 꼴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모습이 나에게는 이쁘기만하다.
그녀도 어느새 나에게 정이 들었는지, 방긋 미소를 지어준다. 고작 주먹만한 작은 구멍이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기에는 충분한 넓이였나보다.


"그나저나, 성함이 어떻게되세요?"


"이향순이라고 해요."


엔틱한 그녀의 집안풍경과 어울리게 그녀의 이름또한 엔틱하다.


"하하, 구멍이 뚫린지도 벌써 2달이 되어가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멀쩡한 새집에 구멍이나고.. 별일이 다있네요."


새집? 의아했지만, 별스럽지않게 넘겼다.


"그런데, 전부터 물어보고싶었던게 있었어요."


"뭐죠?"


"저런 엔틱가구들은 어디서 구한거죠? 참으로 이쁘네요."


"엔틱? 그게 뭐죠?"


"아아아, 아니에요."


구멍너머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간다.

 

 

 


그녀는 이미 7가지의 작품을 낸 프로 소설가였다. 그런 그녀가 문뜩 궁금해진다. 곧바로 인터넷을 켜고, 그녀의 이름 세글자를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관한 내용들이 페이지에 떴고, 그중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글괘가 있었다.

 

 

 


이름 : 이향순 (소설가)

출생 - 사망 : 1910년 7월 14일 - 1934년 6월 22일 (작품'구멍'이후에 사망.)

유명작 : 보릿고개 , 시작 , 구멍 등외 다수.

 

 

 


"사망? 1934년?"


동명이인일꺼란 생각을 가졌지만, 그녀가 나에게 가르쳐주었던 보릿고개와, 시작이란 작품. 너무나도 생생히 떠올랐다.
그리고 구멍이라는 제목의 작품.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아직 잘 보관되어있는 구멍이라는 제목의 책. 그것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뒤 곧바로 책을 펼쳐들어 정신없이 읽어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쪽 벽면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렸다. 남자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허둥지둥 하였고, 여자는 놀란눈을 동그랗게 뜨며, 구멍너머 남자를 바라본다.]

 

"이게 뭐야...? 도데체 어찌된 일이야..?"

 

[남자는 정신없이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다.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여자는 계속해서 남자를 나무란다.]

 

"이럴리가 없어..! 무언가가 잘못된거야...!"

 

[여자와 남자는 구멍너머 사랑을 주고받는다. 구멍의 크기는 작지만, 그들이 사랑을 나누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으아악!!!"


반정도 읽었을 무렵. 믿을수없는 사실에 몸부림을 쳤다. 구멍이란 제목의 책에 남자주인공이 바로 나다. 믿을수없지만, 내가 겪었던 모든일들이 그책에 담겨져있다.
곧바로 구멍으로 다가간다.
천을 때어버리자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구멍너머 나를 보더니 아름다운 미소를 내비춰 보인다.


"무슨일이세요?"


"혹시.. 지금 쓰고계시는 작품의 제목이 뭐죠...?"


"아, 이거요? 요근래에 쓰기 시작한건데.. '구멍'이라는 작품이에요. 당신과 나의 관한 소설을 적어보고싶어졌거든요."


뜨거운 눈물이 볼을타고 흘러내린다. 그런 나의 모습에 놀란 그녀가 다가온다.


"왜그러세요?? 무슨일있어요?"


"지금이.. 혹시 몇년도죠?"


"예? 1934년도잖아요?"


"하..하..하.. 그래요..?"


점점더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얼굴전체가 축축하게 젖어버린다.


"도데체 왜그러세요? 무슨일이신데 이러시냐구요?"


"향순씨.."


"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말.. 잘 들어요.."

 

 

 


그녀에게 모든것을 말하였다. 그녀는 잠깐의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평온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하.. 소설을 쓰다보니까 소설같은 일을 겪어보내요.."


"....."


아무말도 할수없었다. 그녀의 죽음을 안다. 그녀도 이제 자신의 죽음을 안다. 믿을수없지만 현실이다.
그녀는 '구멍'이라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죽어야만하는 운명이였다.


"그래도.. 당신때문에 억울하게 죽진 않겠네요.. 고마워요.."


"흐흐흑..."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의 평온한 표정을 보니 더더욱 슬픔이 밀려왔다. 어찌도 저렇게 평온한것일까?
자신의 죽음을 알게되었는데도 말이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드리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제가 매일 틱틱하게 굴어서 죄송했어요.. 사실 제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당신에게 악감정따윈 하나도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사실은 당신을 사랑하는데.. 구멍너머 당신을 하루라도 보지않으면 미칠것만 같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그녀의 평온한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이것이 운명인가봐요.. 잔인한.. 하지만 어쩔수없는.. 그런 운명인가봐요 우린..."


"아니에요... 우린 분명히 만날수있을꺼에요.. 제발 희망을 버리지마요.. 향순씨.."


"하하... 자그마치 80년이란 세월의 차이에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수있겠나요?"


그녀는 천천히 구멍에서 멀어져만갔다. 저멀리 만날수없는곳으로 떠날것만같은 표정을 지으며.


"정말이지 고마웠어요. 당신덕분에 내생의 최고에 작품을 만들수있을것만 같아요. 그리고 하나만 기억해요... 정말로 사랑했었다는것을.."

 

 

 


그녀가 사라졌다. 구멍너머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그녀는 없다. 운명을 받아드린 그녀는 나를 떠나가버렸다.


"으아아악!!"


나는 미친듯이 문을 박차고 나가, 그녀의 집문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않았다.
포기하지않고 문을 힘껏 발로 차기시작하였다. 점점 찌그러지던 낡은문은, 이내 떨어져나갔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구멍너머로 볼때와는 전혀 다른 신문 쪼가리들만 날아다니는 공간이 펼쳐졌다. 그리고는 절망하였다.
그녀를 만날수가 없다. 이제 더이상 그녀를 볼수없단 생각에 절망하였다.

 

 

 


그이후에도 나는 포기하지않았다. 이미 가능하지않는 일이 내눈앞에서 펼쳐졌다.
구멍을 넘어 시간을 초월한 공간. 그리고 그녀. 그렇기에, 이미 죽은 그녀를 만날수있는 방법이 있지않을까 고민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미친짓일뿐이였다.
산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난다는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죽은사람..? 산사람..?"

 

 

 


그녀를 만날수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 산사람이 죽은 사람을 볼수없다면, 내가 죽은

사람이 되어버리면 되는것이다. 굳은 결심을 하였다. 나를 믿고 기다려준 나의 가족. 그들을 생각하면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야한다. 내가 그녀를 왜이렇게 사랑하게 된것일까?
나의 전부를 포기해서라도 가지고 싶어질정도로. 분명 내자신이 한심하단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야만한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고나서는 제대로된 삶을 살수조차 없을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끝내 낡아빠진 방안엔 목을 매달은 나의 시체가 데롱데롱 달려있었다.

 

 

##

 


창문너머 바람이 불며, 반쯤 펴져있던 책이 수두룩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대망의 마지막장이 펴졌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위해, 목을 매달았다. 하지만 남자의 뜻대로 이뤄지진않았다. 죽음후에 그녀를 만날수있기는 커녕, 모든것이 '無' 그자체였다. 아무것도 존재하지않았다. 그녀도, 인생도, 자신의 인격조차도. 죽음이후에는 모든것이 '無'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여자는 알고있었다.]

 

 

 

 


[모든것은 심술궂은 악마인 그녀가 꾸민짓이였기 때문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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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벽사이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