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창고

G 미나세이노리 1 3,418 2021.12.03 19:25

외갓집 서쪽에는 창고 하나가 있었다. 마당으로 쓰기 애매한 공터에 지어놓은 창고였다. 꼭 컨테이너박스처럼 생긴 창고였는데, 외할아버지께서는 그 창고로 꾸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셨다.

그분의 예상이 맞았다. 창고는 한동안 적지 않은 돈을 물어다주었다. 저 너머 옷 공장 사장이 대여한 적도 있었고, 이름 모를 식품 공장 사장이 대여한 적도 있었다. 난 그 사장이 제일 좋았다. 그 사람은 찌그러진 불량품을 공짜로 가져다주기도 했고, 가끔 맥주모양 사탕을 거저 주기도 했다. 어린 내 눈에는 이런 신기한 물건이 한가득 쌓여있는 창고가 마치 보물섬처럼 느껴졌다.



내가 10살이 되었을 무렵, 식품 공장 사장이 나가며 다른 사업가가 창고를 임대했다. 당시 창고를 임대한 사람들은 반드시 할아버지를 뵈러 왔는데, 그때 온 사람은 두 명이었다. 생김새가 닮아있었고 둘 다 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형제 사이이며, 투명한 크리스털 공예품을 파는 사업을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왠지 모를 꺼림칙함을 느끼셨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창고를 내주셨다.

불행하게도 두 형제의 사업은 잘 진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 창고를 관리하던 사람도 사라졌고, 창고는 자물쇠가 걸린 채 몇 주 동안 방치되었다. 창문 너머로 창고를 살피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아무래도 사업이 망한 것 같다며 혀를 차셨다. 지금 생각하면 몹쓸 일이지만 난 그 소식을 반갑게 여겼다. 사업이 망하면 창고 물건도 주인을 잃은 채 방치되는 일이 잦았고, 그렇게 되면 내가 그 공예품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여겨서 그랬다.



창고가 방치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이 창고를 찾아왔다. 굵직한 철근 절단기를 든 사람도 있었다. 설마 창고를 부수러 온 건가 싶어 할아버지와 이모부, 아버지께서 극구 말렸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창고의 자물쇠를 박살내고 안에 있는 물건들을 결딴내놓기 시작했다.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황색 박스 속에서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발로 이리저리 채이다가 터진 상자 속에서 바스러진 공예품이 비어져 나왔다. 차라리 물건을 들고 가면 모르겠는데, 멀쩡한 물건을 부숴대니 나는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시던 할아버지도 보다 못해 한 마디 하셨다.



정확하게는 기억할 수 없지만 ‘이 사람아, 그걸 가져가서 팔아야지 부숴놓으면 무슨 소용이야?’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러자 남자 한 명이 신경질적으로 그걸 누가 사가느냐고 윽박질렀다. 더 이상 보고 있어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지켜보던 가족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되돌아간 뒤, 난 아버지와 함께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투명한 크리스털 안에 울긋불긋한 색의 염료가 들어있었다.

나는 잔해 속에서 귀가 떨어져나간 강아지 공예품 대가리를 주웠다.

그걸 보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멀쩡한 물건을 가져갈 수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게 너무 서글펐다.

그 모습이 딱해보였는지, 아버지께서는 사방을 뒤져 멀쩡한 귀 두 짝과 몸통, 다리 네 짝과 꼬리를 찾아주셨다.

나는 그걸 갈무리해 본드로 붙여 내 방에 가져다 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가 창고를 찾아왔다. 이 모든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한 듯 할아버지를 탓하는 망나니짓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망연자실하게 창고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음날, 할머니께서 창고에서 누가 싸우는 소리가 났다고 말씀하셨다. 꽤 격하게 싸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할아버지께서도 그 소리 때문에 늦게 주무셨다고 하셨다. 그분은 아침 식사도 거르신 채 창고를 둘러보러 가셨는데, 별다른 것은 찾지 못하셨다. 아무래도 두 형제가 싸우고 나간 모양이었다.

어찌되었건 계약 기간이 끝나면 형제 중 한 명이 보증금을 받으러 올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오랫동안 그들을 기다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오지 않았다. 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다른 사업가와 계약을 할 때까지 그들은 코빼기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내 그들에 대해 잊어버렸다. 보증금 자체도 그리 큰돈이 아니었기에 언제든 되돌려줄 수 있었고, 굳이 그들에 대해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할머니께서 식구를 깨워 창고 쪽 창문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씀하셨다. 분명 그 형제의 목소리 같은데 이걸 어쩌냐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놈이 창고 열쇠를 가져가서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며 당장 손전등을 들고 나가셨다. 아버지와 삼촌도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그러나 창고는 굳게 닫혀있었고, 혹시나 싶어 들어가 확인해봤는데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 새벽 할머니를 심하게 나무라셨다. 노망이 들었다는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으셨다. 나는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다시 잠들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노인이 마을 뒷산에서 시신 하나를 발견하고 경찰에 알렸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노인이 발견했다기보다는 개가 찾아낸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개가 주인을 끌고 산책로에서 벗어난 곳까지 갔는데, 유난히 낙엽이 쌓인 곳에서 자꾸 짖어대기에 낙엽을 치워보았더니 이상하게 솟은 땅이 보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악취까지 풍긴 탓에 자식을 데리고 와서 땅을 파보았더니, 시체가 있었단다.

그 시신이 바로 쌍둥이 형제 중 동생의 것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주머니에는 자신의 지갑 말고도 우리 창고의 열쇠가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경찰에게 두 형제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을 하셨고, 그게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범인이 검거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할머니의 예상대로 범인은 형이었다. 살인 자체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었고, 경황이 없어 소지품을 회수할 생각도 없이 뒷산에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건은 끝났지만, 그 누구도 새벽에 할머니께서 들으신 울음소리를 설명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께서는 흉물스러운 일이 벌어진 창고를 영영 닫아버리셨고, 그분이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굳게 닫혀있다. 창고 안을 꾸며 우리 가족이 쓸 수도 있겠지만, 가족 중 감히 그런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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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돋는,형제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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