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

비녀

G 미나세이노리 1 3,451 2021.12.03 19:22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기 전에 하나의 이야기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정확한 명칭은 없지만 ‘사람 속여 제사상을 받는 귀신’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이야기는 보통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탈것을 타고 가던 사람이 특정한 사람을 치게 되고, 그가 죽었다 생각해 몸뚱이를 어딘가에 숨겨놓는다. 여러 장소가 있지만 가장 많이 보고된 사례는 우물이다.

그렇게 뺑소니를 친 사람은 불안에 떨며 날을 지새우다가 결국 곯아떨어지게 되는데, 꿈에서 치인 사람이 나타나 ‘네가 날 죽였으니 매년 제사상을 차리라’고 명령한다. 세 번 부정하다가 마지막에 끝내 제사상을 차리는 경우도 있고, 꿈을 꾸자마자 바로 제사상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차린 제사상은 하루 만에 모두 쉬어버리거나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그는 예전에 사람을 치었던 장소를 지나가게 된다. 별 탈 없이 지나가려던 그때, 거짓말처럼 치였던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너 때문에 내가 정말 죽을 뻔했다’며 일갈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이의 귓가에는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굳이 이 이야기소를 소개한 이유는 이것이 지금부터 소개할 이야기와 기묘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강원도 원주의 경로당에서 자료 수집을 마친 뒤, 노인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비록 학술적으로는 쓰임이 없지만 취미삼아 수집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익숙한 괴담뿐이었지만, 마지막에 나온 이야기 하나가 상당히 섬뜩한 탓에 여기에 풀어보고자 한다.

노인은 실제로 그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조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쯤, 조부의 여동생은 그 먼 경성까지 시집을 갔다. 부공장장에게 사실상 팔려간 것이나 다름없어 편지나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었고,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어쩌다 겨우 만나 이야기를 해도 초췌한 표정으로 눈물을 찍어낼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조부는 이러다가 큰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고, 그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녀는 시집 간지 3년 만에 주검이 되어 경성에 묻혔다. 사망 원인은 폐병이었다는데 가족 모두 그렇게 건강하던 애가 그럴 리가 없다며 통곡했다. 부공장장은 가족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아내를 근처 묘지에 묻어버렸다. 말도 안 되지만 그 시절에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놈들이 선심 쓰듯 돌려준 유품은 단출하기 짝이 없었다. 한복 몇 벌과 비녀 한 개, 소박한 장신구가 전부였다. 양이 많으면 눈 딱 감고 불살라버렸겠지만 너무 적은 것이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결국 가족 모두 유품을 태우지 않고 간직하기로 결정했다. 하루빨리 그녀를 마을 뒷산에 옮겨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중 한 사람이 비녀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을 보자마자 다른 가족들을 불렀지만, 뒤늦게 확인한 비녀에는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았다. 처음 일이 벌어졌을 때에는 가족 모두 그저 착각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때부터 가족들은 시간 날 때마다 설마설마하며 비녀를 한 번씩 살펴보았다. 몇 달 뒤, 이번에는 조부가 자신의 눈으로 비녀 끝이 붉게 물든 것을 확인하고 말았다. 조부 역시 다급히 다른 사람을 불렀지만 묻어있던 피는 귀신같이 사라져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가족 모두가 비녀를 불길하게 여겼다. 그러나 차마 비녀를 처분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원혼이 정말 비녀에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우한 누이를 달래주는 제사는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제사상이라고 해봐야 쌀밥에 조기 구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그것 말고는 달리 올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후로 비녀에 피가 묻어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지만, 가족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위패 앞에 비녀를 놓아두었다고 한다.

집안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묘한 일이 벌어졌다. 제사상을 준비한 며느리가 마지막 정리를 하고 주방을 나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게걸스럽게 씹는 소리와 삼키는 소리도 들려 그녀는 재빨리 주방으로 뛰어가 안을 살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철없는 자식들이 음식을 몰래 집어먹는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음식도 멀쩡히 남아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집안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조부는 음식 먹는 소리가 정확히 어땠느냐 물었다. 그녀는 꼭 남자아이가 음식을 아귀아귀 집어먹을 때 나는 소리 같았다고 대답했다.

제사를 지낸 다음 날, 조부는 괴이한 꿈을 꿨다.

주방에서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려 살며시 안을 살폈더니, 웬 본 적도 없는 산적 같은 남자가 음식을 씹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보고 있다는 것이 들키면 화를 당할 것만 같아 소리 없이 자리를 나섰다. 분명 방에서 멀어졌는데도 쩝쩝대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날, 조부는 가족과 상의도 하지 않고 비녀를 절에 맡겼다. 당시 사람 중에서는 드물게도 무당을 믿지 않아 의지할 곳이 절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스님은 비녀를 천으로 감싸 어딘가에 묻어두었는데, 그 위치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조부가 그 이유를 물으니 애초에 잡귀가 깃든 물건이 확실하다면 묻은 곳은 왜 묻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 한마디에 조부는 비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렇게 비녀를 절에 보낸 이후로 제사를 지낼 때마다 벌어지던 괴이한 일은 자취를 감췄다. 비녀가 붉게 물들었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없었고, 주방에서 나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삽이라도 들고 절 근처를 파보고 싶었다. 그러나 절 자체도 멀리 있었고 그 근처를 다 파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금세 마음을 접었다.

이야기를 끝맺으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을 풀어보고자 한다. 비녀에 정말 누이가 아니라 잡귀가 깃들어있었다면 대체 어떤 경위로 깃든 것이고, 언제 깃들었단 말인가? 또한 폐병의 징조도 보이지 않았던 누이가 몇 년 만에 폐병으로 죽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의문은 산더미인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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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가득한 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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