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일어났던 사건2

<수사파일> 실제 일어났던 사건2

G 수희벌레 1 4,992 2021.11.06 13:54

2000년 4월 28일 자정이 넘은 시각.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의 한 아파트를 지나가던 주민 A 씨는 우연히 길에서 무언 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원래 해가 지면 사람 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인 데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인 적조차 없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아파트 후문 길은 황량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저거 사람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A 씨는 가까이 가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A 씨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A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옷이 벗겨진 채 숨져있는 여성의 변사체 였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8년 전 부녀자 10여 명을 상대로 연쇄적인 강도·엽 기성행각을 벌여 안산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중 국인 산업연수생에 대한 얘기다.

피해자는 안산시 선부동에 살고 있던 회사원 박선영 씨(가 명·24)였다. 조사결과 사건 당일 박 씨는 회사에서 야근을 한 뒤 홀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체의 상태는 끔찍했다. 머리와 안면 부위가 심하게 일그 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옷차림 등으로 보아 20대 여성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체가 발견된 도로는 피가 흥건해 사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었 다. 사체의 경직상태나 혈액의 응고상태 등으로 봐서는 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변을 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즉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범인은 박 씨를 살해한 후 현금 3만 원을 훔쳐간 것으로 드 러났다. 수사팀은 우선 목격자를 찾는 한편 사건 발생 시각 에 아파트 주변을 수상하게 어슬렁거린 사람은 없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목격자는 끝내 나 타나지 않았다. 현장에 남은 단서는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피묻은 돌멩이가 전부였다.

무엇보다 수사팀을 놀라게 만든 것은 범행의 잔혹함이었 다. 조사결과 범인은 커다란 돌덩이로 박 씨의 머리와 안면 부위를 집중적으로 때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피해자 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범인은 나뭇가지를 피해자의 은밀한 곳에 집어넣는 식의 변태적인 성행각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과 사 체를 면밀히 살펴본 수사팀은 범인이 피해자를 위협한 뒤 엽기적인 성추행을 한 후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분석했 다.

만신창이 상태로 널부러져 있는 여성을 본 수사팀원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었다. 도대체 범인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수사팀은 그 일대 거주하는 동일수법의 전과자 및 성범죄 자 등을 상대로 집중적인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수상한 사 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일대에서 또 한건의 끔찍한 사건이 발생 한다. 6월 19일 아침 안산시 원곡동의 한 노상에서 많은 피 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40대 여인이 발견됐다. 원곡동에 거 주하는 주부 서경자 씨(가명·41)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발견된 서 씨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 태였다. 서둘러 응급실로 옮겼지만 상처가 워낙 깊은 데다 가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사건 당일 서 씨는 인근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녀오 던 길이었다. 서 씨가 발견된 장소는 앞서 박선영 씨 사건이 발생했던 선부동 아파트에서 불과 1km도 안되는 곳이었 다. 서 씨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면과 머리 부분이 심하게 손상돼 있었다."

상처 형태로 보아 범행도구는 앞서의 박 씨 사건과 마찬가 지로 돌멩이로 추정됐다. 그리고 범인은 범행 후 서 씨의 지 갑에서 현금 4만 원과 서 씨가 차고 있던 금목걸이를 가져 간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팀이 특히 주목한 것은 서 씨에게 도 엽기적인 성추행 흔적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단순 성 폭행이 아니라 은밀한 부분을 훼손시키는 엽기적인 행각을 했다는 점은 범인의 성향을 특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 기도 했다.

수사팀은 사건 발생 지역이 가깝고, 범행수법이 비슷해 동 일범에 의한 소행으로 추정했다. 수사팀은 서 씨의 진술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 씨는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건 발생 5일 만에 사망하고 말 았다.

수사는 미궁으로 빠졌다. 내로라하는 강력반 형사들이 차 출돼 집중 수사에 들어갔지만 범인의 윤곽은 좀처럼 드러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안산시 신길동의 한 노상에서 또 한 건 의 유사한 사건이 터지고 만다. 6월 25일 새벽 3시 45분경 귀가 중이던 주부 김명자 씨(가명·34)가 낯선 남자에게 강 도를 당한 것이다. 범인은 앞의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돌 덩이로 김 씨의 얼굴을 가격해 쓰러뜨린 뒤 피해자를 변태 적인 방법으로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김 씨가 지니고 있던 현금 20만 원과 10만 원권 수표 석 장을 빼앗 아 달아났다.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김 씨는 사고 직후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한테 발견돼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을 가다 난데없이 변을 당한 터라 김 씨는 범인의 인상착 의를 자세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허름한 옷차림의 20대 남자.' 김 씨가 겨우 기억해낸 범인 의 모습이었다. 수사팀은 김 씨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 추 적에 나섰다. 특히 김 씨 사건은 앞서 발생한 두 사건과 수 법이 유사했기 때문에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수사팀의 추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슷한 사건이 수일 간격으로 계속 발생했다.

김 씨가 변을 당한 후 안산 일대에서는 두 달 동안 부녀자들 강도·성추행 사건이 무려 7건이나 일어났다. 사건은 선부동 과 원곡동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는데 피해자들은 범 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하나같이 비슷한 진술을 했다. 범행 수법으로 보나 피해자들이 진술로 그린 몽타주로 보나 범 인은 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수사팀은 피가 말랐다. 안산 일대 아파트 단지에서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비상 반상회가 열렸고 '늦은 밤엔 홀로 외 출하는 것을 삼가라'는 방송이 연일 계속됐다. 주민들의 불 안감도 극에 달했다.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에서는 걱정스 레 사건 얘기를 하곤 했다. 아울러 'OO동에 사는 누가 또 당 했다더라' '이번엔 만삭의 임산부도 당했다더라'는 식의 흉 흉한 유언비어도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찰 수사에 대한 주민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도대체 얼굴 없는 범인은 누구일까.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달했을 즈음 수사팀은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 게 된다. 6월 25일 변을 당한 김 씨의 수표가 중요한 단서가 됐다. 범인이 가져간 김 씨의 수표가 안산 일대에서 사용된 정황을 포착한 것. 수표 추적에 들어간 수사팀은 7월 10일 밤 9시 30분경 그 수표를 사용한 사람을 검거하는 데 성공 했다. 놀랍게도 범인은 중국인 청년이었다.

왕리웨이(24).

불과 두 달여 동안 2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살인마의 이름이었다.

조사결과 왕 씨는 늦은 시간 홀로 귀가하는 부녀자들만 골 라 뒤따라가다 범행을 저질렀는데, 범행 때마다 피해자들 의 옷을 벗기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엽기적인 성폭행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족인 왕리웨이는 1999년 9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후 전남 목포시에 있는 한 방직 공장에서 근무하다 그해 11월 초순경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 는 경기도 안산으로 올라왔다. 이유는 "일이 힘들어서"였 다. 이후 왕리웨이는 막노동판이나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 면서 싸구려 월세방과 고시원을 전전해왔다.

사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안산 지역 경찰에게는 외 국인에 의한 범행은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왕 씨의 범행은 이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단순 강도·강간 사 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왕리웨이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다음은 김 연구관 의 얘기.

"왕리웨이는 생활비를 마련하고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 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10여 차례의 범행 으로 그가 손에 쥔 돈은 100여 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왕 씨 를 조사하던 수사팀은 그가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 라는 점에 주목했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평소 발기부전증 으로 인해 원만한 성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여성 과의 정상적인 성관계가 불가능했던 그는 지나가는 여성들 을 상대로 몹쓸 행각을 벌인 것이었다. 그는 또 여체를 보거 나 상대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성적 만족과 흥분 을 느끼는 성도착증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왕리웨이 가 피해자들에게 엽기적인 성행각을 벌였던 것은 이 때문 이었다."

강도살인 등으로 구속기소된 왕 씨에게 2000년 12월 8일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백춘기)는 "개인의 탐욕과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무고한 부녀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잔혹하게 짓밟음으로써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가하고 사회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심 각한 위험을 초래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왕 씨는 우울증 등을 이유로 즉각 항소했지만 2001년 6월 12일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5부(이종찬 부장판사)는 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중형의 원심이 유 지되는 것은 외국인 범죄자에게는 다소 이례적인 판결이었 다.

"범행동기 및 방법이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열 하고 잔인하다. 피고인은 정신병 등으로 사리판단 능력이 없는 가운데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지만 정신감정기록 등에 따르면 우울증세가 사리판단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의 의견이었 다.

왕 씨는 2001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을 확정받고 7년 째 수감 중이다.

Comments

중국 현지였다면,실제 사형집행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