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일어났던 사건

<수사파일> 실제 일어났던 사건

G 수희벌레 1 5,229 2021.11.06 13:53

오전 8시 30분경. 인천시 중구 OO동에 사는 A 씨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A 씨가 향한 곳 은 다름 아닌 인천시 중구에 위치한 한 극장이었다. "탁 사 장님! 아직 주무세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극장 3층에 위치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A 씨는 다급하 게 극장 대표 탁중근 씨(가명·74)를 불러댔다. 사무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탁 씨를 찾던 A 씨는 잠시 후 비명을 지르 며 그 자리에서 나자빠지고 말았다. A 씨의 눈에 들어온 것 은 싸늘하게 식어있는 탁 씨의 주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18년 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일명 '애관극장주 살인사 건'이다.

우선 당시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전화도 안 받고…." 이날 오전 8시 가 조금 넘은 시각. A 씨는 수십 분째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 다. A 씨가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애 관극장 대표 탁중근 씨였다. A 씨는 이날 탁 씨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약 속시간이 한참이 지나도록 탁 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탁 씨 는 평소 약속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매사에 철 두철미했던 탁 씨의 성격으로 봐서 그가 약속을 잊어버렸 을 리도 만무했다. 더욱 이상한 점은 이날 따라 탁 씨와 전 화연락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A 씨는 결국 탁 씨가 기거하는 곳으로 직접 찾아갔던 것이다. 다음 은 김 연구관의 얘기.

"발견 당시 탁 씨는 소파 위에 엎어진 채 이불에 덮여 있었 는데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체의 목 주위에 나있던 자국이었다. 탁 씨의 목에는 둔탁한 끈으로 두 번 감긴 흔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탁 씨를 제압하고 목을 조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체에는 이렇다 할 큰 외상이 없었다. 왼쪽 무릎 부분에 주먹 크기의 멍이 들어 있고 피부 가 살짝 벗겨진 것 정도였다. 탁 씨의 사체에서는 심한 구타 의 흔적이라든지 반항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체의 상태로 보아 탁 씨는 사망한지 10시간이 채 넘지 않 은 것으로 추정됐다. 즉 이날 늦은 밤에서 새벽 시간대에 변 을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이날 탁 씨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사팀은 우선 탁 씨에 대한 기초조사에 들어갔다. 특이한 점은 탁 씨가 그 당시 인천지역에서 손꼽히는 갑부였다는 사실이었다. 인천 최대의 개봉관인 애관극장의 소유주였던 탁 씨는 극장 외에도 인천·경기지역에 무려 열 개가 넘는 주 유소와 냉동회사 등을 소유하고 있는 수백억 원대의 재력 가였다.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탁 씨는 뛰어난 사업수완 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고, 나름의 확고한 경 영철학에 입각해 사업을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 서 탁 씨의 갑작스러운 피살소식은 지역주민뿐 아니라 그 를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 그 자체였다.

부검 결과 탁 씨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로 판명됐다. 수 사팀은 탁 씨의 사체가 발견된 사무실이 비교적 깨끗하고 물건을 뒤진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볼 때 적어도 금품을 노 린 단순강도에 의한 범행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가장 유력한 것은 면식범에 의한 범행가능성이었다. 수사 팀이 면식범의 범행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사체에 이렇다 할 큰 외상이나 반항흔이 없었다는 점 이었다. 통상적으로 강도에게 변을 당했을 때 피해자에게 서는 심하게 반항한 흔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추 정 범행시각으로 볼 때 범인은 야밤에 탁 씨의 사무실에 침 입했는데 이는 범인이 탁 씨가 평소 집이 아닌 극장내 사무 실에 혼자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뒷 받침해 주는 근거였다. 단순히 금품갈취를 목적으로 한 침 입이 아니라 애초부터 탁 씨를 타깃으로 한 범행일 가능성 을 높았다는 얘기다. 수사팀은 건장한 체격의 탁 씨를 순식 간에 목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아 범인은 2명 이상의 면식범 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해 나갔다."

수사 과정에서 탁 씨는 극장 인근에 부인, 맏아들 내외와 함 께 살고 있는 집이 따로 있었으나 주로 극장 3층에 마련한 개인 사무실에서 혼자 기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극장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당일 이 극장에서 마지막 영화 상영이 끝난 시각은 밤 9시 10분경이었다. 그리고 이날 마 지막 영화를 본 관람객은 대략 50여 명이었다. 하지만 영화 가 끝난 후 모든 관람객이 극장 밖으로 빠져 나갔고 바로 출 입문이 봉쇄됐다고 한다. 수사팀은 이날 오후 9시 40분께 에도 탁 씨가 극장 안에 있었다는 극장 직원의 말에 따라 폐 관 이후의 출입자를 밝혀내는 작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마 지막 영화상영 이후 극장에 들어왔거나 남아있었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극장에는 또 외부인이 강제로 출입한 흔 적이 발견되지 않아 수사팀의 애를 먹였다. 수사팀은 목격 자를 찾는 전단지 2000장을 배포하는 동시에 탁 씨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병행했다.

범인을 찾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범행동기를 찾는 일이 었다. 범행목적에 따라 용의자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사팀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 탁 씨 주변에서 일어났던 크 고 작은 사건들과 정황 등을 일제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리고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 사를 벌였다.

수사팀은 탁 씨가 내로라하는 재력가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의 재산을 노린 면식범이 야밤에 침입, 탁 씨를 상대로 범 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탁 씨가 극장 경영 외에도 주유소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던 점으로 보아 금전이나 채무, 사업상 원한 및 치정에 의한 범행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했다. 우선 탁 씨의 주변 인물들을 상 대로 조사에 들어간 수사팀은 특히 평소 탁 씨와 사업관계 로 접촉했거나 금전거래를 해온 인물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탐문수사를 벌였다.

탁 씨의 주변 인물들을 일일이 만나고 다니며 수사를 진행 하던 수사팀은 얼마 후 중요한 사실을 파악하기에 이른다. 바로 탁 씨가 최근 새로운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는 사실이 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탁 씨는 지난해 초 인수한 부천시내의 한 관광호텔 건물을 증축하고 있었는데 고령임에도 직접 현장에 나와 공사를 감독하는 등 무척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텔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황이 포착 됐다. 탁 씨는 관광호텔의 전 소유주에게 6억여 원을 빌려 준 후 호텔을 자신의 명의로 가등기한 뒤 양도소송을 거쳐 소유권을 이전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시비가 많았으며 최근까지도 전 소유주와 적잖은 마찰을 빚어왔다 는 것이 주변인들의 진술이었다. 하지만 조사결과 관광호 텔의 전 소유주에게서는 아무 혐의도 드러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수사는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 작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수사팀에게 또 다른 첩보가 입수 됐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호텔 증축과정에서 탁 씨가 공사 관계자 및 사무실 임대업 자들과 갈등을 빚어왔으며 자주 말다툼을 벌여왔다는 새로 운 증언들이 나온 것이다. 주변인들은 공사 관계자들이 탁 씨가 피살되기 수 일 전부터 탁 씨의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 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종종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 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수사팀으로서는 공사를 둘러싼 청 부살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곧 이어 탁 씨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는 인물에 대한 첩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사는 공사에 개입한 여러 하청업자들을 상대로 광범위하 게 진행됐다. 하지만 특별한 혐의가 있는 인물은 좀처럼 드 러나지 않았고 알리바이도 확실했다. 하지만 수사팀의 레 이더에 포착된 젊은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수사과정에서 유 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은 김정식 씨(가명·31)였다. 인 테리어업체 대표인 김 씨는 탁 씨가 증축하는 호텔의 내부 수리 공사를 수주해 맡아오던 인물이었다. 조사 결과 김 씨 는 탁 씨로부터 착수금조로 3000만 원을 받고 공사를 진행 해왔으나 탁 씨가 얼마 전부터 공사 부진을 이유로 일방적 으로 공사를 중단시킨 상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 로서는 탁 씨에게 섭섭한 감정을 품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 다. 수사팀은 주변인들을 통해 김 씨가 공사계약 문제로 탁 씨와 심한 갈등을 빚어왔으며 김 씨 어머니 소유로 된 부동 산 가압류 문제로 잦은 말다툼을 벌여온 것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수사팀이 조사한 결과 탁 씨는 김 씨 어머니 소유로 된 빌라 6가구에 대해 가압류조치를 해 놓은 상태였다.

더구나 김 씨는 사건당일 행적에 대한 알리바이도 명확하 지 않은 상태였다. 범행동기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수사팀 은 즉시 김 씨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얼마 후 김 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는 데 성공했다.

자백 내용은 수사팀의 예상대로였다. 김 씨는 지난해 탁 씨 로부터 호텔 내부수리 공사를 1억 3000만 원에 계약했다. 김 씨는 탁 씨에게서 착수금조로 3000만 원을 건네받고 공 사를 진행했으나 공사가 부진하다는 것을 이유로 탁 씨는 공사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공사 진행을 두고 갈등을 빚던 두 사람은 그 후 사이가 틀어지게 됐고 계약문제로 인 해 잦은 다툼을 벌여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탁 씨는 공사 착수금 3000만 원을 내가 개인적으로 빌려간 것으로 서류를 꾸민 뒤 나도 모르게 내 어머니 소유로 된 빌라 여섯 채를 가압류 했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었다. 공사 진행을 두고 시작된 두 사람의 갈등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김 씨와 탁 씨가 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주변인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김 씨는 경찰에서 "그동안 무려 20여 차례나 탁 씨를 찾아가서 가압류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했 다"고 항변했다. 결국 김 씨는 21일 밤 10시경 탁 씨를 다시 한 번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당장 압류를 해제해 줄 것 을 요청했다. 하지만 탁 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이에 격 분한 김 씨는 탁 씨를 주먹으로 때려 쓰러뜨린 뒤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 김 씨는 탁 씨를 살해한 후 단순 강도살인 사건으 로 위장하기 위해 사무실에 있던 극장 수입금 1200만 원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은 김 씨가 훔친 1200 만원 가운데 쓰고 남은 800만여원을 김씨의 자택 피아노 밑에서 찾아 압수함으로써 수사를 종결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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