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아파트

기묘한 아파트

G 허니레몬 0 3,851 2021.08.21 09:28

중학교 2학년때 우리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며 살았다
전세를 간신히 구하면 다시 나가고 또 구하면 지내다가 다시 나가고..
이런일이 반복되며 이사는 매년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1년을 살고 나갈때가 되자 어머니는 정가보다 이천만원정도 싼 아파트를 기적적으로 구하셨다
거기서 살던 사람들은 힘 하나 없는 표정으로 계약서를 썼다
나이든 여성과 남성이었는데 자식은 이미 분가했는지 집에 없었다



이사를 가고나서 한달정도는 평온하게 보냈다

두명이 이렇게 큰집에 머문다는건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집이 넓었고

주변 문화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남동생이 나에게 찾아왔다


'형. 어제 장염때문에 화장실에 갔는데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어제 밤에 야식으로 치킨을 먹고 한바탕 설사를 하던 녀석이 새삼스레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변기에서 일어나는데 너무 어지럽고.. 눈도 안보이고.. 그리고 자꾸 누가 쳐다보는것 같아'

/'설사를 하면 하늘이 노래지는건 당연한거고, 무서운 생각을 하니까 누가 쳐다보는것 같은거지'

동생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수긍했다.




3주정도 뒤에

나도 한밤중 설사를 했다

몇번 화장실에 들락거리면서 지쳐버렸는데 문득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어지럽고 눈도 안보였다'

동생은 기립성 저혈압이 있다고 치지만, 난 그런게 없으면서도 확실히 지나치게 어지러웠고 기분도 이상했다


이윽고 난 뒤처리를 하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윗층에서부터 나는것 같았는데

흐느끼면서 비명을 지르는것 같았다

윗층 화장실에서 누가 난장판을 피우나 했는데

눈앞의 거울을 보고나서 난 움직일수가 없었다

시야는 흔들리는데 천장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는 점점 커졌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커졌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 문손잡이를 열수도 없었다

그때 난 머리 위에 무언가 압박을 느끼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한참 뒤에 비명소리에 깬 동생이 날 찾았고, 난 병원에서 간단한 진단을 받았다.

의사에게는 내가 겪은 일을 말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에겐 낱낱이 말씀드렸다

난 천장에 뭔가 있다고생각해서 천장에 있는 네모난 판넬을 들어올렸는데

그 구멍 속에서 바람같은것이 빠져나오는 기척을 느꼈다



플래쉬로 안을 비춰보고 나는 경악했다

비닐로 싸여진 옷가지와 만화책, 손거울과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액자까지...

여성용 물품이 가득한것을 보고 우린 바로 이 집의 전 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들은 채 삼십분도 되지 않아 도착했고, 우리가 내어준 물건들을 보며 오열했다

'그 속에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아이고....'

'엄마가 몰라서 미안하다... 미안해...'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수 없었지만, 그들의 내력을 알게되었다

중학생 딸 한명이 트럭사고를 당해서 즉사했는데, 그 이후로 집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것이다.


그 일로 싼값에 집을 넘겼는데 우리가 그 집을 산것이다


그들이 물건들을 챙겨가고 그 집에선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우리는 찝찝함에 다시 이사를 갈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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