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가위에 눌리다

도서관에서 가위에 눌리다

G 민트초코 0 4,119 2021.06.19 01:57

때는 힘들었던 재수시절..

D모광역시에 살고 있던 나는 좆같이도 두번째 수능에 낙방하여 H모 국립 도서관엘 가서 공부중이었다.

점심밥을 사먹고 음식물이 위벽에 들러붙어 포만감을 주던 때 으레 잠이 올 시간이라지만 그 날은 좀 달랐다

갑작스러울만치 닥친 이상한 피로감 갑자기 눈이 불타듯 뜨거워지고 머리 위에 천근을 올려놓은듯한 무게감 목뼈에 붙은 근육들이 과부하라도 걸린듯이 일제히 뚜둑거리며 기울어졌다

누군가에게 강압적으로 당하기라도 하는듯이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공부하던 책상에 엎어지다

머리는 마침 책상에 얹어져있던 왼팔을 배개삼고 아니 배개삼았다기보단 아프도록 눌렀다는 것이 옳겠다

오른손은 부자연스럽게 책상아래로 덜렁거리고 머리는 오른쪽을 향하여 개방형책상의 다른 사람들을 힘겹게 바라보며 누가 나 좀 도와줘요 생각한다

가위구나 문득 생각했다



하긴 그간 생활이 불규칙하긴 했지

그래도 하필 이런식으로 걸릴건 없지 않나 그 때 의식이 문득 흐리멍텅해지는가 싶더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등시 초기의 느낌

촛점이 오른쪽 눈에 맞춰졌다가 왼쪽 눈에 맞춰졌다가 하는 찰나 어느쪽에도 촛점이 제대로 맞지 않아 순간 시야가 흐릿해지듯이 갑작스레 의식의 촛점이 흐릿해졌다 다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옆 자리의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디오영상을 빨리 감는 광경과 꼭 같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옆자리 할아버지의 책넘기는 속도가 장난아니게 빨라졌다

눈알 굴리는 속도가 비정상적인 어느 여자 분도 기억난다

소름이 끼쳐서 아무 생각도 하질 못했다

환상적이면서도 뭔가 기괴한 광경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등뼈를 타고 소름이 되어 흘렀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말 그대로 의식이 나가버렸다.

약간 희안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의식이 나가면 바로 다음장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전에 생각한 것과는 달리 의식이 없는(한시간 남짓 되었을까?), 그 때의 공백의 기억들이 상당히 입체적이고 강렬하게 남아있다

정신이 돌아왔을때 나는 떨고 있었다

등에는 땀에 젖은 메리아스의 질펀한 느낌이  오른쪽눈은 건조한지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고 머리로 누르고 있던 왼팔은 10분 후에야 감각을 되찾았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았던 시간이 11시 반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3시 10분쯤 전이 되어있었다
앞에 앉았던 모르는 형님이 운동수건을 건네며 걱정해준다

'저기 땀을 너무 많이 흘리시는데, 가위걸리셨나봐요? 가윈지 주무시는건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어요'

'아 고맙습니다' 하며 수건을 받아 땀을 훔치는 나.

'저기요 근데, 수능준비생..이신가 봐요?'

'네.. 네 맞아요'

'여기 도서관 많이 안 와봤죠?'
 

사실 그 전까지 도서관은 집 인근의 또다른 H모 국립도서관을 이용했었다

그가 이어서 도서관다운 조용한 목소리로 알려준다
'그 자리가.. 터가 안좋다고 하나? 뭐라고 하나? 하여튼 가위 잘 눌리는 자리라고 사람들이 잘 안 앉는 자리에요.. 그래서 의자도 빼놓았던걸로 아는데 모르셨나봐요 이상하게 다른곳처럼 무슨 사연이 있는것도 아니고 뭐 액운이 낄만한 곳도 아닌데 거기만 앉으면 다들 가위에 눌린다나 사실 의자도 없던 자리에 여분으로 놓여있던 의자를 끌고가 자리잡았던 나였다

그때까지 반년남짓 다니면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가끔씩 그때 생각을 하면서.. 귀신이나 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편인 나도 최소한 뭔가 그 비슷한게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한다.

 

무언가 그런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같은 자리가 '가위의 명소'가 되고  그런 기묘한 가위에 눌릴 수 있는건지 아직도 이렇다할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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